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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적인 성우 씨 Nov 17. 2019

당신이어서 다행입니다

내 첫 사수에 대하여


"책 한 권 읽고 저자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책 쓰는 자아만 만났을지도 모른다."


엄지혜 작가님의 [태도의 말들]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서점에 서서 신간 코너의 책들을 집어 읽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첫  보자마자 이 책을 구입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글을 보면 글쓴이의 민낯을 볼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글을 보면 글을 쓴 사람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낱낱이 그 사람의 면면이 보인다고.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현명하고 훌륭하며 존경받아 마땅한 글을 쓴 이들이 글과는 전혀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너무나 자주 목격해왔다. 아름다운 시나, 합리적 사유나, 지혜로운 설득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작품과 비슷하긴 커녕, 때때로 얼마나 추하고 생각 없이 남에게 해끼치길 주저 않고 사는지까지도 명백하게 목격해왔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과는 정반대 되는 글도 얼마나 그럴듯하게 쓰고 진정성 있게 포장하 작가들이 많은지 역시 숱하게 봐왔다.


책 한 권 읽고 그 저자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 책을 쓴 자아'만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인터뷰어의 직관이, 인터뷰이의 삶에 대한 통찰이 [태도의 말들]이란 책을 한 번에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성찰도, 세상을 꿰뚫는 통찰도, 그래서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도 '격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나의 사부가 그렇다.


내겐 다 늙어 만난 사부님이 있다.     

그녀를 사부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해부터였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그리고 대학 4년을 거치면서, 진심으로 스승이라 부를만한 선생님은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했다.

이렇듯 나는 사람을 가리고, 버르장머리가 없으며, 제 멋대로였다.      


이런 내가 가족과 많은 친구들의 우려 속에서 참으로 천방지축으로, 어리바리하게,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 해, 나는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그 사회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까지 내가 당연시했던 모든 것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제대로 사는 법과, 제대로 생각하는 법과,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난 그녀를 통해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그토록 오만하고 편협했던 내게 그 당시 유행하던 말로 '열린 사고'를 가능하게 해 준 그녀는, 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겸손함조차 잃지 않았다.          


내 나이 스물다섯에 만난 스물여덟의 사부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매몰되어 오류에 갇히지 않으려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었다. 자신도 약자였으면서 어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후배에겐 든든한 세계가 되어 주었고, 작은 선택도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한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내가 되기 때문임을 몸소 보여주어 알게 했다. 그녀는 내색 없이 기다릴 줄도, 웃으면서 인내할 줄도 알았고, 끝없이 반복되는 모순의 사회에서 시끄럽지 않게 해결점을 찾았다.  




IMF가 끝나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경영의 유연함을 위해서'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원의 비율이 급속히 늘어갔다. 그렇게 입사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현격히 다른 임금을 받았고, 복지 혜택 역시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정규직들이 명절이면 받는 특별 상여금 대신 비정규직은 스팸이나 참치 선물세트를 받기도 했다. 다 같이 어우러져 일하던 옆 책상에 누구는 상여금 내역이 적힌 명세서를 받았고, 누구는 퍼렇고 커다란 선물세트를 받았을 때, 늘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생각을 나누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처음엔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던 우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제에 무뎌졌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땐 반감을 갖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삼삼오오 모여, 우리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예상하여 끝도 없이 나열하기도 했다. 뉴스에서나 듣던 '밥그릇 지키기'란 말은 현실에서도 무엇보다 우선되는 문제였다. 


나 역시 정규직의 이기심이었는지 비정규직 처우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때 자신과 상관없는 소수의 편에서 애를 쓰는 사부에게 나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물었었다. 사부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회와 구조의 문제이며, 책임져야 할 사회와 기업이 빠진 동료끼리의 대립은 바른 방향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점점 다수가 되어가고 있는 무분별한 비정규직 양산은 제도적 대안 없이 계속되면 안 되는 거라고. 지금 소외당하고 외면받는 내 옆의 동료는 멀리 보면 내 동생이,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는 사부를 보며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늘 소수의 편에 서는 사람이었기에, 그때도 나는 같은 맥락 이해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렇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때 사부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 비정규직 문제가 여전히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이슈가 되어있는 것에 놀라울 이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두려움이 있는 사회에서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가진 신념이 있다 해도 그걸 고스란히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사부는 자신의 의지 앞에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었. 무엇보다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전에, '스스로 걸어 보여주는' 사람, 그게 나의 사부였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 목소리 한번 크게 내는 걸 본 적 없는데, 그녀는 어떻게 그 많은 지혜를 논리를 품격을 갖게 된 걸까.      


그녀와 일하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본 사람 물론 나만이 아니다. 그들 모두 그녀를 따르고 좋아하지만, 때로 그녀에게 반하곤 하지만, 그녀에게 사부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뿐이다. 누구보다 먼저 그녀를 알아보고, 그녀를 나만의 사부로 선점하였다.


'정글'이라 비유되는 금융업종에서, 그 대단한 학벌과 대단한 집안의, 각양각색의 사람들 사이에서 지낸 10년 동안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바로 나뿐인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알아보고 찾아내기란
'기적' 같은 일임을 알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때때로,

그녀가 나의 사부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녀를 사부라고 부른다.

나는 아마 내가 사는 그 끝날까지 그녀를 그렇게 부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반만큼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반만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나는 여전히 그녀의 반만큼도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하나님은 공평하신 게 분명하다.

나 같은 인간에겐 다 늙어서도 이런 스승을 주시고,

많은 걸 가진 그녀에겐 가르쳐도 가르쳐도 따라오지 못하는 나 같은 제자를 주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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