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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Feb 02. 2019

5. 새가 찾아오다


봄이 오자마자 작은 새 한 마리가 우리집 우체통에 집을 짓더니, 어느새 알을 낳았다. 참새보다 더 작은 새였다. 엄마가 콩새인 것 같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불렀는데 사실 아무도 정확히는 몰랐다. 못 해도 사흘에 한 번은 우편물이 왔을텐데 언제 여기를 발견해서 그새 집을 지었는지 참 부지런한 콩새였다. 상황을 모르는 우체부 아저씨가 벌컥 문을 열면 어미 콩새가 놀라 기절할까봐, 새가 알을 품고 있으니 우체통을 열지 말고 편지는 바닥에 놓아달라는 쪽지를 급히 붙였다. 아기새들은 금방 태어났다.


혹시라도 아기새에게 손을 대면 사람 냄새가 나서 어미가 더 이상 돌보지 않거나 아예 버리고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 어미새가 없을 때 몇 번 아기들을 빼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마치 엄마에게 미리 안전교육이라도 받은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있는 게 너무 귀여웠다. 우리 여기 없어요, 우리는 새가 아니에요, 하면서 죽은듯 가만히 있다가, 어미가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나게 짹짹대며 입을 벌렸다.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어미새가 아기새들에게 나는 법도 가르치고 사냥하는 법도 알려주고 그러던데, 우리집 콩새는 작은만큼 얼마나 빠른지 도대체 들어가고 나가는 모습을 포착할 수가 없었다. 어미는 어느새 보면 들어와 있고 또 금방 사라져 있곤 했다. 혹시 약하게 태어난 놈 하나를 버리고 가면 어쩌지, 평생 우체통에 살면 어떡하지, 아기새들이 날다가 바닥에 떨어지면 어떻게 다리를 치료해 주지, 별 걱정이 많았는데, 콩새가족은 다 같이 후다닥 우리 집을 잘 떠났다. 우체통에 남아있는 빈 둥지를 보고 괜히 우리 가족만 서운해 했다. 감사인사를 전하러 다음 해에 다시 날아오는 일은 당연히 없었지만 나중에 우리 딸들에게는 약간의 동화적 요소를 가미해서 얘기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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