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와 연애를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간만에 서울에 오셨다. 가을걷이 끝내고 오신다더니 이 일 저 일 하느라 봄에나 오겠다 하셨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으시다 하여 부랴부랴 동생이 모셔왔다. 여러 검사들로 한달여를 서울서 보내고 토요일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청량리엘 갔다. 보청기도 수리하고 아버지 곁에 붙어서 숨쉴 틈도 없는 어머니를 잠시나마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집을 나서서 큰길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서울 와서 이렇게 바람도 쐬고 길거리도 걸어봐야 왔다고 하재" 하신다. 바람이 좀 쌀쌀했지만 상쾌한 기분이 든 건 그때문인지도.
지하철에서 어머니는 자리 양보를 받았다. 내 마음에는 그냥 엄마지만 남들이 보면 80 먹은 할머니다. 청량리서 보청기 수리가 2시간 정도 걸린대서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을 한바퀴 돌았다. 내 운동화를 사러 갔는데 입구부터 도시 어느 아낙네보다 적극적으로 훈수를 두신다. 색깔, 재질, 디자인... 우리 어머니가 이랬나 싶어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서울에 더 계셨으면 싶었지만 농사일도 있고 집에 할머니도 계셔서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다 기어이 동생을 닥달해 시골로 내려가셨다. 한달 내내 붙어 있다 떨어지니 하루가 멀다 하고 연애하듯 서로 전화를 한다. 액정에 뜨는 내 이름을 보고 "우리 미애" 하며 반가이 휴대폰을 귀에 대시는 목소리를 듣노라면 나도 괜히 좋다.
내려가신 지 한달쯤 되었나... 큰감기를 앓았던 어머니는 서울서 있다 시골에 내려가니 몸에 힘이 안 들어가 한동안 혼이 났단다. 할일은 쌓였는데, 노동에 길들었던 몸을 잠시 편하게 내버려뒀더니 몸이 꾀가 나서 원상태로 돌어가는 게 쉽지가 않다는 말이다. 몸을 살살 달래주려니 끝이 없을 것 같아 마음 독하게 먹고 팍팍 굴렸더니 이제야 힘이 난다며 자랑을 하시는 어머니. 이게 자랑할 건가 싶으면서도 걱정도 되고, 그래. 그러니까 우리 엄마지 싶었다.
오늘은 전화를 걸자 어머니가 초반부터 실실 웃으며 소식을 전한다. 면에서 주는 효부상을 받기로 했단다. 백세 할머니를 모신지 60년이 되었고 거동이 조금 불평한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밤잠을 지새운 적도 많다. 그러면서도 농사짓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니 이장이 큰상 하나 받게 해준다고 빈말처럼 하더니, 추천을 했는지 면사무소에서찾아와 어버이날을 맞아 효부상에 선정되었다고 전해주었다고 한다.
아마 일생의 첫 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어머니 목소리가 뿌듯하다. 102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고 계신 할머니 덕도 있는 듯하지만, 죽네 사네 하면서도 묵묵히 책임을 다한 그 인생이니 보상해줘도 될 거 같다.
"옷이 다 컴컴하다. 입고 갈 옷이 마땅찮다." 하신다.
딸들도 돈을 모아 그 인생을 잠깐이라도 화사해 보이도록 보상해 주기로 했다....
나는 80세 어머니가 어느 때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