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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글남 Aug 07. 2019

2등이 1등 되는 법

벗은 게 아니라 보는 게 잘못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여느 때와 같이 무더위를 날리자는 명분을 가지고 공포를 주제로 한 예능, 영화, 웹툰 등이 나타난다. 그리고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듯한 스토리가 있는데.. 바로, 2등에게 살해당한 1등이라는 이야기다.

 2등인 학생은 언제나 자신보다 앞서며, 밤을 새고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1등을 보며 좌절감을 느낀다. 그런 1등을 제치는 방법은 죽이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계획을 실행하고 1등이 되지만 죄책감에서 기인한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며 결국에는 자살을 한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

어김없이 떠지요~

 이것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해보도록 하자. 등수를 올리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좀 전에 아주 훌륭한 사례를 보았다. 자신보다 앞선 사람을 등수 산출 집단에서 빼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더 확장시켜서 우리반 성적이 오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마찬가지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유급시키거나, 전학, 자퇴, 혹은 시험을 보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이번에는학교가 아닌 다른 영역, 의료 분야로도 생각을 넓혀보자. 국가에서 의사들에게 심장병 수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심장병 성공률을 국비지원 지표에 넣었다면, 이때 의사들은 능력을 키워서 성공률을 높일까, 상태가 심각한 환자를 피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난이도의 환자만 받아서 지표를 만족시킬까?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지표들은 설득과 평가의 근거로 쓰인다. 그리고 표본을 통한 조사로 정리된 통계 자료들은 더할나위 없는 최고의 자료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유용한가는 조금, 많이, 다른, 문제이다.


 심장병 성공률, 학교별 성적, 운동선수의 평가 지표 등 한 가지로 나타내는 수치들은 종종 주객이 전도되어 수치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사라진 전통이랄까. 이렇게 어긋난 초점은 설계를 잘못한 건물처럼 삐그덕 거리다가 결국, 금이 간다. 이후, 제때 보수 공사에 착수하지 않으면 쿵. 무너진다.

유명한 경영학 경구에 "수치화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수치화하고자 하는 대상이 정말 관리하고자 하는 대상과 일치하는지는 분명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벌거벗은 통계학> 103 page-

 그래서 명확한 지표의 설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지표는 없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지, 혹은 역사상 누가 가장 훌륭한 선수인지는 득점, 개인기, 팀플레이, 활약한 경기의 중요도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가고 한입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김밥이지만, 당근과 오이가 껍질을 포함하여 들어간다면 '아스코르비나아제'라는 성분에 의해 비타민C가 파괴됨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와도 유사하다. 그럼에도 우린 계속 김밥을 먹는다. 왜냐고? 너무 간편하니까. 런데 이 간편함 뒤에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반영하는 정확도는 일부 포기한다는 것이 전제됨을 알아야 한다.

당근과 오이는 껍질을 벗기고 먹는걸로

 다시 1등이 된 2등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이번엔 남량특집이 아닌 다큐다. 잠을 많이 자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2등은 그 말을 들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3개월 뒤에 치뤄진 모의고사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잠을 8시간 이상 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잘' 살펴보아야 한다. 1등이 된 이유가 단순히 잠을 많이 자서인지, 잠을 많이 자서 주의력은 상승됐지만 절대적 시간의 양은 부족해졌기 때문에 '데일리리포트'를 쓰며 1시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하는 '의식적 노력'을 해서인지, <완벽한 공부법>을 읽고 작업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위해 '아웃풋식 공부'를 시작해서인지 말이다. 어떤 사건이 특정 결과의 원인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 여부를 명확하게 따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수치와 지표의 불완전성을 인지하여 명확한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통계학>이라는 제목처럼 통계학은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울 것은 없었고, 단지 우리의 의도와 판단력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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