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 Aug 01. 2019

발가락이 닮았다

 나는 두 번째 발가락이 유난히도 길다. 자로 재어보니 엄지발가락과의 차이가 대략 1.3cm쯤 된다. 여성들이 즐겨 신는 앞 코가 뾰족한 하이힐 속에 내 발은 맞춤처럼 쏙 들어간다. 반대로 앞 코가 둥근 단화나 운동화를 신으면 내 두 번째 발가락은 여지없이 달팽이 등처럼 말려져 들어간다. 덕분에 두 번째 발가락은 마디마다 두꺼운 굳은살로 뒤덮여있다.


 못생긴 발 때문에 난 늘 샌들 신기를 두려워했다. 여름에도 늘 앞이 막힌 신발을 신고, 두 번째 발가락이 신발 속에서 항상 짓눌리다 보니 유독 두 번째 발가락에만 발톱 무좀이 가시질 않았다. 나의 언니는 내 발가락을 볼 때마다 손가락 욕이 자꾸만 떠오른다고 했다. "빠큐 발가락"이라고 놀리다가도 언젠가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혹시 두 번째 발가락만 뼈마디가 하나 더 있는 건 아닌지 X-ray를 찍어보라고까지 하였다. 확인 차 부러 병원을 찾은 건 아니지만, 우연히 발등을 다쳐 X-ray를 찍어보니 마디가 하나 더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두 번째 발가락 뼈가 조금 더 길 뿐이더라. 나처럼 생긴 발을 Morton foot이라고 하고, 생각보다 드물지도 않지만 나는 그네들 보다도 조금은 더 길다는 것을 인정한다.


쌍둥이를 임신하고 둘 다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난 제발 우리 딸들이 아빠를 닮기를 바랐다. 외모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남편을 닮았으면 했다. 나보다 훨씬 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성실하고, 온화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생긴 건 결코 아니지만 나보다는 조금 더 큰 눈, 훨씬 높은 코, 내가 부러워하는 도톰한 입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다. 무언가 닮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보다 꼭 하나만은 제발 닮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내 못생긴 발가락이다.


하지만 결론은 늘 뻔하지 않은가?

그러하다. 닮아버렸다. 바로 그것을....  

그나마 둘 다는 아니고 그중 한 녀석만 닮은 걸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낳고 보니 쌍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얼굴이 완벽히 달랐다. 첫째는 남편과 나를 두루 닮은 듯한데, 둘째는 정말 남편을 도장 찍듯 딱 찍어놓은 것처럼 똑같았다. 얼굴, 피부, 체형 모두 내 지분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그야말로 남편 판박이인데 어찌 발가락만은 내 걸 잘라다 붙여놓은 듯 똑같으냐. 이제 엄마처럼 예쁜 샌들도 못 신고, 발가락 때문에 놀림도 받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짠했다. 그래도 발가락 빼고는 거의 99% 싱크로율로 제 아빠를 닮았으니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기로 했다.  


하지만 실로 망했다.

제 아빠를 99% 닮고, 1%로도 채 되지 않는 발가락 하나만 날 닮았을 뿐인데...

하는 짓(?)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나다.

유전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피곤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 같은 성격은 우리 가정에 하나면 됐지, 나보다 더 강력한 녀석이 우리 집에 나타났다.

아기 가지기 전에 남편이 "자기 같은 딸 하나 낳아서 둘이 아웅다웅하는 거 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라고 했었는데, 실로 현실이 되었다. 다만 나는 정말 재밌지가 않다.


우리 둘째는 타고난 기질이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이다.


물을 마시다 물방울이 하나라도 옷에 묻으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짜증을 내며 옷을 갈아입혀 달라 징징댄다. 아침마다 옷 3~4벌씩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은 기본, 어린이집 다녀와서도 옷장을 뒤적이며 또 입고 싶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새 옷을 몇 번이고 끄집어내고 뒤섞어 놓는 건 그나마 참아줄 수 있다. 한번 본인 좋아하는 옷에 꽂히면, 며칠이고 똑같은 옷만 입으려고 한다. 옷가지 하나 빠는 것도 허락이 없으면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공주님이다.


본인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불을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자기 이불의 까슬까슬 시원한 감촉을 좋아하는데, 남들이 만지거나 혹은 무의식 중에 깔고 있거나 하면 대성통곡을 하면서 " 내 이불 깔지 마... 엉엉엉" " 엄마 내 이불이 따뜻해졌어... 엉엉엉..." " 엄마 내 이불 다시 시원하게 해 줘.. 엉엉엉.... " 한다. 내가 만져보면 똑같이 시원하고 까슬거리기만 하는데, 도대체 뭐가 따뜻해졌다는 거냐... 나는 허둥지둥 이불을 펼쳐주고 한두 번 털어주며 "자 이제 다시 시원해졌다"한다. 털어주는 시늉 한번 해줬다고 따뜻해졌다는 이불이 다시 시원해졌다는 것도 웃기지만, 우리 예민하신 공주마마는 그제야 울음을 그친다.  


한 번은 놀이하다가 말하는 게 너무나 귀여워서 그야말로 빵 터져서 웃은 적이 있는데, 잘 놀던 녀석이 갑자기 정색하며 "웃지 마!!!!!"라고 버럭 소리치는 것이다. 내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자 본인이 되레 울음을 터뜨리며 "웃지 말라고... 엉엉엉" 한다...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 살면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웃는 엄마에게 버럭 화를 내는 아이라니...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갑자기 크게 웃어서 놀라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이유를 듣고 보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그 순간에는 엄마지만 황당하다...


이 정도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예측 불가한(?) 아이 축에도 못 낀다고, 우리 집에는 이보다 더 한 무시무시한 녀석이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엄마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건 어떤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엄마인 나를 막 째려보면서, 발로 한번 차고는 돌아눕고는 흐느끼다가 다시 식식거리며 나를 밀쳤다. 그야말로 자다가 웬 날벼락이냐... 정말로 내 딸이지만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가, 너무 늦지 않게 검사라도 받아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들어보니 이유는 더 황당했다... 꿈에서 엄마가 자기를 혼자 놔두고 어디를 갔다고 한다. 이제 하다 하다 꿈속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매일매일이 언제 어떤 포인트에서 짜증과 울음 폭탄을 터뜨릴지 모르는 살얼음판에, 매일매일이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대응하느라 지난한 실랑이에, 매 순간마다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느라 늘 소리 없는 전쟁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버거운데,

나를 더 숨 막히게 하는 건...

사실...

정말...

하는 짓이...

의식의 흐름이...

본인의 논리가...

나와 똑같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실로 재앙이다...


이쯤 되면 고해성사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나도 자타공인...

예민하거나 까다롭지 아니한 건 아니라고 말을 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내가 어느 포인트에서 어떤 이유로 삐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으니, 우리끼리만의 약속으로 혹시라도 삐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수신호를 보내달라던 남편...

혹시 지금이 바로 그 "삐질태세"의 순간인 거냐고 가끔씩 확인하는 남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등 훽 돌려 돌아눕고 밀쳐내니 황당해하다가, 그 이유는 '꿈에 오빠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만 눈치 없이(?) 빵 터져버린 남편...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냐며, 친히 '꿈 삐짐'이라는 작명까지 선사한 남편...

외출할 땐, 나는 차에 가서 기다리겠으니 '천천히 준비하고 내려오라'며 슬그머니 주차장으로 사라지는 남편...

다행스럽게도 호수같이 잔잔하고 넓은 마음을 가진 남편을 만나, 우리 부부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왔는데...

남편은 이토록 신기하고 생경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은 일상들과 느낌을 나와 함께 공유하기를 바랐던 걸까... 남편의 꿈은 왜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생각난다.

주인공 M은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로 성병에 걸려 생식능력을 잃었다. 그 사실을 속이고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임신을 했다. 어쩌면 자신의 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는 있으나 검사를 받아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있었던 어느 날, 마치 대발견이라도 한 듯 의사를 찾아와 "나와 발가락이 닮았다"며 희희낙락해한다. 의사는 그 태도가 눈물겨워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라고 덕담을 해주고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 의사의 판단은 너무 섣불렀다고 생각한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둘의 친자 관계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조소가 깔려있었겠지만...

주인공 M이 아들을 좀 더 키워보았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았을까?

도저히 내 친자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은 상황들을 마주하지는 않았을까?

고작 "발가락"일 뿐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아직까지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지지 않은 어마어마한 유전 정보가 집약되어 있는 곳은 아닌 걸까?


 












 



작가의 이전글 자발적 경단녀 캐나다로 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