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 Mar 30.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01일


 春君用意剪成花(춘군용의전성화) 때맞춰 봄이 꽃 피우니

 其奈狂風擺落何(기내광풍파낙하) 센 바람 심술궃게 꽃잎 떨구네

 風是春風春不制(풍시춘풍춘부제) 봄은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忍敎紅錦委泥沙(인교홍금위니사) 붉은 비단으로 진흙 감싸주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지는 꽃 아쉬워하며[석화(惜花)]>          


 돌아서니 삼월의 끝자락입니다. 하루하루를 성찰하지 못하고 시간에 등 떠밀려 가는 것 같아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곳 진해는 ‘군항제’라는 전국 단위의 행사를 치러내느라 여념이 없으나 이런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도 모른 척하시는 건지 조물주는 시샘하듯 여름 태풍에 버금가는 비바람을 밤과 낮으로 풀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시냇가의 물은 생기를 띠고 있으나 길가의 벚꽃은 핀 것 같기도 하고 안 핀 것 같기도 한 어정쩡한 상태로 낙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 사이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벚나무만이 온전히 자신을 보존하여 만개한 분홍빛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필듯하다 잎을 떨궈버리고 조용히 즐기고 싶은 길손에게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년의 화사한 벚꽃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요. 비바람이 그치니 미세먼지가 뒤따릅니다.


  벌과 나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창 잘못되었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홍빛을 띤 벚나무, 초록빛을 띤 벚나무를 보며 자연의 조화와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잠깐이었습니다.     


 비 맞아 나무줄기가 더 검어 보이니 상대적으로 벚꽃이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마치 어미가 제 몸과 얼굴을 검게 칠해 자식을 더 빛나게 보이게 하려는 것 같아 경외심이 절로 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식의 센 바람[광풍(狂風, 허물)]조차 붉은 비단[홍금(紅錦, 크나큰 사랑)]으로 덮어주려는 것이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