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에 기대어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기후 온난화로 인한 식량 위기 시대에 농사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2. 농사에 있어 인공지능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어제가 음력 8월 20일로 추분(秋分)이었습니다. 추석 이후 추분 전까지 찌는 듯한 더위와 습한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더니 지난 주말 거짓말처럼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며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무 자르듯 나누어 버렸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우주 대자연의 질서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天之道(천지도) 하늘의 도는
不言而善應(불언이선응)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며
不召而自來(불소이자래)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고
繟然而善謀(천연이선모) 느슨한 것 같아도 잘 다룬다오
天網恢恢(천망회회)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
疏而不失(소이불실) 엉성한 듯 하나 때를 놓치는 일이 없다오
원주 생활협동조합의 창시자이자 생명 사상가인 장일순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라고 하였고 지구별 여행을 다녀간 우리 시대의 영성가 틱낫한 스님은 ‘모래 한 줌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라고도 하였습니다.
두 분이 하신 말씀을 펼쳐보면 나락 한 알, 모래 한 줌은 비바람 불고 천둥번개는 춤을 추며, 새는 지저귀고 물고기는 뜀박질하며, 양과 소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나무와 꽃은 어깨 춤추며, 시냇물은 지치지 않고 바다에 이르러 다시 구름이 되며, 땅속과 바다의 미생물들은 우주 만물의 먹이가 되어줌으로써 생겨났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결국, 나락 한 알, 모래 한 줌은 생명 가진 것[유정물(有情物)]과 생명을 비워 둔 것[무정물(無情物)]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며 무한한 순환의 고리를 이룰 때 얻을 수 있고 빛을 발함을 알게 됩니다.
하물며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딛고 선 우주 만물의 대행자인 인간의 역할이 중요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요.
여기 여러 생명의 수고로 얻은 생명 한 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선현의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중추(仲秋)를 넘어 겨울로 나아가고 있는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乾塊化碧畦(건괴화벽휴) 마른 흙덩이가 푸른 밭두둑으로 변했으니
費盡幾牛力(비진기우력) 몇 마리의 소가 힘을 다한 것인가
針芒到黃穗(침망도황혜) 바늘 같던 싹이 누런 이삭 될 때까지
勞却萬人役(노각만인역) 수많은 사람들 힘써 일했네
幸免水旱災(행면수한재) 요행히 가뭄과 홍수를 면해야
萬一儻收得(만일당수득) 만에 하나 제대로 수확하겠지
見兹稼穡艱(견자가색난) 이렇듯 농사일이 어려우니
一粒何忍食(일립하인식) 쌀 한 톨인들 어찌 함부로 먹으랴
凡以祿代耕(범인녹대경) 농사짓는 대신 국록을 먹는 사람들아
要當勖乃職(요당욱내직) 마땅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지라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쌀 한 톨을 바라보며[동문외관가(東門外觀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