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일
이제 며칠 후면 밤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 대신 낮의 길이가 생동하기 시작하는 동지(冬至)입니다. 겨울의 후반부이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시련이 닥쳐와도 단단한 땅에서 새싹은 나고 언 강물은 조금씩 녹기 마련입니다.
학기 말이라 아이들 시험에 성적 처리, 학교생활기록부 정리 등을 하느라 글쓰기에 소원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요 며칠 출퇴근 길에 하얗고 큰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자니 음양이 조화를 이룬 것 같아 마음까지 밝아져 옴을 느낍니다.
차가운 바람을 쐬며 내년 한 해 살림살이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꾸려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무언가 일을 벌이고 그 벌인 일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면서도 잘되지 않을까 늘 불안불안해하고 조마조마해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인가 봅니다.
이런 때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산과 계곡을 거닐며 마음의 먼지와 세상에 찌든 때를 벗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사물과 사람에 적당히 거리를 두며 내 마음에 보기 좋은 것들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바쁜 가운데 평안함을 잃지 않으시길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을 위해 기원합니다.
徜徉於山林泉石之間(상양어산림천석지간) 산과 계곡을 하릴없이 걷다 보면
而塵心漸息(이진심점식) 마음에 쌓인 먼지 차츰 사라지고
夷猶於詩書圖書之內(이유어시서도화지내) 시서화 속에서 마음 비우니
而俗氣漸消(이속기점소) 세상 찌든 때 한 겹씩 벗겨지네
故君子(고군자)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은
雖不玩物喪志(고군자수불완물상지) 사물에 마음과 뜻 잃지 않고
亦常借境調心(이상차경조심) 마음에 좋은 것 담으며 편히 산다네
- 홍응명(洪應明, 1573~1619), <걷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