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전공은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
나는 대학 시절 경영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전략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고등학생들이 전공을 고민할 때 '나는 졸업 이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며 전공을 선택하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당시에는 문과와 이과가 확실하게 나뉘었고, 문과였던 나는 인문/사회과학/상경계의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커리어 패스가 가장 넓은 것 같은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경영학과를 졸업하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다른 학과에 비해 훨씬 넓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마케팅 직무로 취업하든, CPA 공부를 해서 회계사가 되든, 경영학은 어떻게든 내 진로에 도움을 주지만 인문/사회과학 전공은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후회'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학과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선택에 '후회'라는 말이 달라붙으면 돌이킬 수 없는 느낌을 주어 좌절감과 우울함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나에게 경영학과를 선택한 것은 인생에서 다소 '아쉬운' 선택이다. 당시에 경영학과에 다니는 사람들 혹은 졸업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콜드메일을 넣어서 어떤 것들을 배우는지, 실제로 사회에 나왔을 때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면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종종 든다.
그럼 내가 왜 경영학과를 선택한 것에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첫 번째 이유는 경영학은 애매하게 비실용적이고 비학문적이기 때문이다. 경영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기업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마케팅, 생산관리, 조직관리, 재무 등을 가르치기 위해 태어난 학문이다. 즉, 학문의 탄생 목적 자체가 기업의 운영 및 성장에 도움을 주겠다는 실용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장소는 학문적인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교수님들은(한국 대학은 특히 더 심하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는 받았지만, 현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현업에서 실무로 이루어지는 것과 교수님들의 강의에는 괴리감이 있고, 현업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를 들면, 경영학과 교수님 중에서 회계 강의를 할 때 인건비를 '변동비'로 구분한다고 가르치는 분이 있었다. 인건비가 변동비라면 인원 감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틀린 말이다. 하지만 그 교수님은 미국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고, 한국에서 현업 경험이 전혀 없으셨기에 강의에서 줄곧 회계는 변동비라고 가르치셨다.
두 번째 이유는 경영학적 지식을 얻을 대체재는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 시절 경영전락학회(이하 '경영학회')를 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경영학회에서 정말 훌륭한 세션을 접하고 현업에 있는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스킬을 습득할 수 있었다. PE 입장에서 투자 제안서를 쓰는 세션, 자동차 대기업의 중장기 전략을 제안하는 세션 등 매주 수많은 내부 세션을 진행했고, 결과물에 대해 현업에 있는 선배님들께 신랄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학부생으로서 내가 접근하는 방식과 현업에서 접근하는 방식의 괴리감을 줄여나갈 수 있었다. 많은 대학교에는 이처럼 훌륭한 세션을 진행하고 알럼나이와 네트워크가 있는 경영학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런 학회는 전공 상관없이 학회원들을 선발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경영학회에서 배운 지식과 스킬들이 내 현재 경영적인 역량의 8할은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경영학 수업에서 배운 것은 크게 없다.
또한, 인턴을 통해서도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다. 인턴을 통해서 내가 어떤 직무랑 맞는지, 잘 맞지 않는지 뿐만 아니라 현업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수업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나라 IT 대기업에서 마케팅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유저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제품의 특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 그리고 이것이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 어떻게 반영되는지 체험해 보면서 의사결정 과정을 생생히 알 수 있었다. 마케팅 수업에서 백날 배우는 것보다 이처럼 한번 부딪혀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만약 이렇게 학회, 인턴을 구하기 어렵다면, 직접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물건을 판다던지, 작은 브랜드를 친구들과 프로젝트성으로 열어보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실무적인 지식은 유튜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즉, 굳이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면서 배울 수 있는 대체재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대학이라는 기관은 나에게 실용적인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보다는 본질적으로 내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계속해서 변한다. 특히, 경영의 분야는 계속해서 트렌드가 변하면서 대학에서 열심히 배운 지식이 금방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2학년 때 마케팅 수업을 들을 때 광고는 에이전시 회사에서 제작하고 TV, 신문, 그리고 몇몇 영향력이 높은 포탈에 광고하는 것이 여전히 주요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네트워크 광고를 통해 타깃 광고를 하는 것이 훨씬 보편화되었다. 그 변화가 불과 2~3년 만에 일어난 것으로 기억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 빠르게 바뀔 것인데, 경영학은 미안한 말이지만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연구하고 쫓아가는 것이기에 항상 늦을 수밖에 없다. 나는 오히려 사회과학, 인문학 공부를 통해서 텍스트를 읽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흔적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본질적인 스킬이다. 세상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문과 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실용적인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문과 친구들이 전공을 고민할 때 '진로를 살릴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물론 만약 역사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등 특정 학위에서 석/박사 학위가 필요한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해당 전공으로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사기업 취업, 방송계, 회계사, 로스쿨 등 학부 때 전공이 뚜렷하게 중요하지 않은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전공을 졸업해야 취업에 더 유리할까?'가 아니라 차라리 '나는 대학 4년 동안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실제로 사회과학, 특히 정치외교학에 관심이 많아서 정치외교학 수업을 많이 수강했고, 복수전공을 신청하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교환학생 때문에 학점 인정이 곤란해져 복수전공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정치외교학과를 갔을 것 같다. 진로의 측면에서 나는 여전히 전략컨설팅이라는 영역을 준비했을 것 같지만, 대학 때 공부하는 분야와 진로는 별개로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 하에서는 입학 전부터 전공을 정해야 하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다. 고등학생 때는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제한적인데, 그 제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 중 하나를 내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바꿀 수 없으니 인문/사회과학/상경 계열을 고민하는 친구들은 학문의 실용성보다는 내가 그 학문을 본질적으로 재밌어하고 4년 동안 공부해 볼 가치가 있을지도 한 번쯤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