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작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3번으로 출간
파일 정보: ePUB (18.52MB)
20세기에 가장 널리 읽힌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이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3번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부처의 아명입니다만 작품 속 주인공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종종 나는 좋았던 책의 구절을 나열하느라 노트 지면을 모두 소비하곤 합니다. 필사를 하면 누군가의 사유가 내 것이 될 거라 믿었던 날들로부터 생겨난 버릇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를 읽으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챕터를 마칠 때쯤, 나는 삶의 여러 단계를 거치며 성찰하고 나아가는 타인의 서사를 엿보았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인공 싯다르타가 사문에서 출발하여 사업가, 노름꾼, 뱃사공, 아버지가 되었다가 떠돌이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그가 도달한 진리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싯다르타의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마치고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선명하게 깨달은 점은 한 가지였습니다. 나는 삶의 매 챕터를 일간지를 넘기듯 아무렇게나 지나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의 삶 역시 싯다르타 못지않게 많은 경험과 변화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감각과 무수히 많은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와 같이 몸과 마음을 다해 사색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색(思索)이란 단순히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잠깐 고민하는 수준을 넘어, 어떠한 대상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그 이치를 따지고 본질을 찾아가는 정신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한자 풀이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집니다.
• 사(思): 마음(心) 위에 밭(田, 뇌를 상징)이 있는 형상으로, 머리와 마음을 다해 생각함
• 색(索): 새끼줄을 꼬거나() 집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糸) 모습으로, 실마리를 찾아 깊이 파고듬
즉,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단순한 입력 과정이 아닌, 스스로의 의식을 도구로 삼아 질문을 던지고 논리적, 철학적, 때로는 은유적으로 파고들어 답을 찾아가는 몰입의 시간인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삶 자체를 사색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독서란-특히 요즘 같이 외부로부터 자극이 많은 시대에는-교양 있는 사색의 도구로 취급받곤 합니다. 하지만 독서 역시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에 불과하며, 읽거나 베껴 쓰는 것 만으로는 사색할 대상이 저절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사색의 결과와 나의 내면의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 생겨나는 것은 질문입니다. 폭력을 다룬 작품을 이해하면 아프고, 사랑을 다룬 작품을 이해하면 설레는 감정을 느낍니다. 독서를 멈추고, 타이핑이나 필사를 멈추고, “이 감정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질문을 음미하는 것으로부터 나만의 사색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가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에 견주어 보았을 때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나만의 진리에 도달해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싯다르타가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서 온 세상을 들었던 것과 같이, 우리는 ‘싯다르타’의 텍스트 안에서 ‘각자의 질문’을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이 선사하는 힘이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