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무엇인가? 사례로 증명해 낸 책
퓰리처상(The Pulitzer Prizes)은 미국 내에서 독보적인 영예를 상징합니다. 흔히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지만, 미국 내 언론, 문학, 음악 분야를 아울러 수여합니다. 퓰리처상은 공공의 이해를 증진한다는 목표를 공유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현상과 테마에 대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메시지에 주는 훈장과 같은 상입니다. 참고로, 음악 분야에서는 2018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드레이크의 저승사자)가 힙합 뮤지션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론 부문에 대한 퓰리처 가이드라인은 모든 출품작이 '가장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 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공공성, 정확성, 그리고 윤리적인 자료 확보 과정입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 인권, 사회적 갈등과 같은 문제를 얼마나 날카롭고 깊이 있게 조명했는지가 핵심입니다.
100년 넘게 그 명성과 신뢰성을 유지하고 있는 퓰리처상은, 특히 언론인과 문예가들에게 단순한 문장력을 넘어선 직업의식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퓰리처상이라는 거대한 성취 뒤에는, 끈질긴 탐사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핵심 가치를 구체적인 문장으로 벼려내는 정교한 글쓰기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장을 다듬고 강력한 서사 구조를 구현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가 있습니다. 바로 편집자입니다.
저자 잭 하트(Jack Hart)는 미국 오레곤주의 최대 일간지인 《오레고니언(The Oregonian)》에서 26년간 편집국장으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뉴스룸의 일선에서 퓰리처상 최종 후보 및 수상작으로 선정된 여러 기사들을 직접 편집하며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선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체계화하였습니다.
그는 2001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톰 홀먼 주니어(Tom Hallman Jr.)를 비롯해 수많은 기자들을 길러낸 편집자들의 편집자, 글쓰기 코치로 통합니다.
저자가《오레고니언(The Oregonian)》지에서 여러 해를 함께한 기자, 톰 홀먼 주니어(Tom Hallman Jr.)는 2001년 '가면 뒤의 소년(The Boy Behind the Mask)'로 퓰리처상 특집보도(Feature Writing)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당시 저자는 이 특집 보도 기사를 전문적으로 다듬고 코칭하며 데스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https://press.uchicago.edu/books/hart/Hallman1.html
퓰리처상 수상 내역: "The Pulizter Winner: Tom Hallman Jr. of The Oregonian, Portland"
총 4부작으로 구성된 이 특집 보도는 선천적으로 희귀 림프관 기형을 지니고 태어난 14세 소년 샘 라이트너(Sam Lightn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삶을 간절히 원했던 소년인 샘이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수술을 견뎌내는 치열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수술 중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코마 상태에 빠지는 비극적 순간도 있었으나, 샘은 극적으로 깨어납니다.
이 4부작의 기사가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기사와는 달리 14세 소년이라는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일상에서부터 수술실의 긴장감, 샘이 코마 상태에 빠지고 가족들이 심리적으로 붕괴되는 절망, 그리고 다시 희망의 순간까지 일련의 에피소드를 순차적으로 배치하였다는 것입니다. 논점을 서론에 배치하고 본론에서 근거를 말한 뒤, 결론에선 다시 서론으로 순환하는 일반적인 구조와는 달리, 독자가 주인공의 운명을 궁금해하며 끝까지 읽게 만드는 소설과 같은 흡입력을 구현한 것입니다.
이를 좀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4부작의 마지막 파트 "I am Sam, Sam I am" 중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제4부의 수술 직후 중환자실 장면)
The surgery had been the most difficult operation of the lead surgeon's career and one that had tested the entire team's resolve. Sam's anatomy was abnormal, the malformation just a jumble of tissue, blood vessels and nerves. Because X-rays don't show soft tissue, the nerves lay concealed in the surrounding mass. Damaging a key nerve would have paralyzed the left side of Sam's face. If that had happened, Sam would have lost the ability to blink his eye, to crinkle his forehead or to smile.
이번 수술은 주치의의 경력 중 가장 어려운 수술이었으며 팀 전체의 결단력을 시험한 작전이었습니다. 샘의 해부학적 구조는 비정상적이었고, 기형 조직은 조직과 혈관, 신경이 뒤섞인 덤불 같았습니다. 엑스레이에는 연조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신경들은 주변 덩어리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주요 신경 하나만 건드려도 샘의 왼쪽 얼굴은 마비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샘은 눈을 깜빡이거나 이마를 찌푸리거나 미소를 지을 능력을 잃게 될 터였습니다.
우선 첫 번째 문단에서 기자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 수술이 얼마나 위험했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주요 신경 하나만 건드려도 얼굴은 마비될 것이고, 샘은 미소 지을 능력을 잃게 될 터였다"라는 대목이 복선이 됩니다. 이 대목에서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은 소년의 '미소'를 수술의 성공 여부와 그의 미래를 판가름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로 삼게 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단에서는 현장의 감각을 극도로 절제하며 묘사합니다.
She remembers the Lighters standing by the bed, looking at their son. A line from a ventilator -- the machine was still breathing for Sam -- was hooked into his tracheotomy, the hole in his throat that bypassed the tissue mass. The hole would remain until Sam completed all his surgeries.
말러는 침대 곁에 서서 아들을 바라보고 있던 라이트너 부부의 모습을 기억한다.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줄 하나가 — 기계는 여전히 샘을 대신해 숨을 쉬어주고 있었다 — 그의 기관 절개 부위에 끼워져 있었다. 조직 덩어리를 우회하기 위해 목에 뚫어놓은 그 구멍은, 샘이 모든 수술을 마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었다
이 묘사는 독자를 적막한 병실 안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샘이 누워 있는 병상으로 다가갑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기사는 샘이 단번에 웃는 장면을 조명하지 않습니다.
Can you make him smile? asked Marler. I need to see if he can smile.
"샘을 웃게 해 줄 수 있나요?" 말러가 물었습니다.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중략)
Sam, Debbie Lighter said, I need you to smile for me.
"샘, " 데비 라이트너가 말했습니다. "엄마를 위해 한 번 웃어줄래?"
There was no response, and Debbie Lightner tried again. Sam, she said, smile.
반응이 없자 데비가 다시 말했습니다. "샘, 웃어봐."
샘의 엄마 데비 라이트너는 두 번, 세 번 샘을 부릅니다. "반응이 없자 데비가 다시 말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독자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샘의 입술이 움직이는 순간을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전달합니다.
Then, slowly, the outer edge of his mouth began to curl. And Sam Lightner smiled.
천천히, 입술 바깥쪽 끝이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샘 라이트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톰 홀먼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샘이 웃기까지의 정적, 인공호흡기 소리,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를 독자들의 눈앞에 보여줍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 스토리 텔링의 기술을 적용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이야기 속 인물들과 함께 샘의 미소를 기다리게 만듭니다.
이런 서사적 구현은 당시 미국 포틀랜드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희귀병 소년'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다룬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글의 기술적 구조를 이용해 어린 소년의 존엄성과 용기, 감동이라는 보편적 테마로 치환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이야기는 훗날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잭하트는 그의 또다른 저서 Storycraft 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편지와 이메일, 전화가 폭주했다. 그토록 뜨겁고 열광적인 반응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가면 뒤의 소년'은 우리가 만들어낸 내러티브 논픽션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 독자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게 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나는 독자들이 보내온 후기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무엇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글을 쓰고 편집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들은 어떻게 쓰는가'를 주제로 좋은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12단계로 나누어 세밀하게 코칭합니다.
책은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글을 쉽게 시작하고 끝맺는 법"에서는 아이디어 수집부터 계획, 글의 구조 설계까지 체계적인 집필을 위한 전략적 기술을 전수합니다. 이어지는 2부: "문장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법"에서는 생동감, 간결함, 명확성과 문체와 같이 흡입력을 구현하는 실전적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글에는 크게 두 가지 범주가 있다고 말합니다. 형태와 기능의 관점에서 모든 글은 기본적으로 리포트(report)이거나 스토리(story)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면 리포트 형식을, 경험의 재현이 목적이라면 스토리 형식을 택하겠지만, 저자는 장르를 불문하고 각 파트에서 제시하는 12단계의 글쓰기 기술을 포괄적으로 체화하기를 권합니다.
(본문 중 발췌)
"문학적인 논픽션을 쓰는 작가와 스토리식 기사를 쓰는 기자가 그렇듯 소설가가 글을 쓰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95p)"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글쓰기의 본질은 영감이 아닌 체계적인 기술의 총합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톰 홀먼의 기사에서 희귀병 소년의 삶을 포착하기 위해 동원된 정교한 서사 설계와 세밀한 관찰의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좋은 글은 단번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소재와 아이디어라는 초석 위에 구조와 기술을 하나씩 쌓아 올린 결과물인 것입니다.
본문 중 발췌
"훌륭한 글쓰기는 흑마술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이 정말 있다면, 그것은 한 번에 한 단계씩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글쓰기 과정에서는 아이디어 단계에 적정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아이디어는 뒤따르는 모든 것의 초석이다. 분명한 목적을 정해두지 않으면 자료 수집을 어떻게 할지, 수집된 자료를 어떻게 정리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잘 정리된 아이디어는 글쓰기에 흔히 수반되는 고통을 완화하는 진통제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글쓰기의 기술보다 앞서는 것은 과정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세운 테마가 독자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필에 임해야 한다고요.
퓰리처상 문장수업이 전하는 기술을 체화한다면, 생각은 단단해지고 글은 생명력을 얻게 되리란 믿음이 생깁니다. 잭 하트의 지도를 따라 걷는 이 여정 끝에, 저 또한 정직한 글쓰기 기술을 연마하여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하며, 책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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