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킴독서록: 로드워크(스티븐 킹)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잔인한 진실

by 욘킴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악당이 없는 소설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1]'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로드워크(Roadwork)』는 킹의 초창기 작품들 중에서도 현실적인 심리 스릴러 소설입니다.


산업용 세탁 공장의 관리자인 바튼 조지 도스는 새로 건설될 고속도로 부지에 자신의 집과 직장이 포함되어 삶의 터전이 철거될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주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고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아내와의 불화를 겪는 와중에, 집과 직장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확장 사업이란 압박이 그를 조여옵니다. 이 소설은 총 3부에 걸쳐 주인공 바튼이 피할 수 없는 변화와 상실에 저항하며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무서운 점은 명백한 악당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앗아간 것은 뇌에 호두알만 하게 자리 잡은 종양이었고, 그가 해고된 이유는 회사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익과 그의 가치관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그를 떠난 것은 배우자로서 서로의 삶을 더 이상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삶의 터전이 철거될 위기에 놓인 것 역시 단지 국가적 발전을 위한 사업의 일환이었을 뿐입니다.

만일 잔혹한 살인범이 그의 가족을 해쳤거나,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거나, 혹은 회사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했거나 국가가 정당한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바튼의 저항을 훨씬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튼의 세계에는 외부의 거대한 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들이 겹쳐 한 인간을 무너뜨렸을 뿐입니다.

그의 심경과 소설의 분위기를 잘 담은 독백 2개를 발췌하였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삶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삶이란 그저 지옥으로 가기 전의 준비 장소에 불과한 것인가"






소설 속 독특한 장치, 텔레비전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소설에는 독특한 장치가 등장합니다. "제니스(Zenith)"라는 이름의 텔레비전입니다. 소설 속 회상 장면에서 젊은 바튼과 아내 매리는 궂은일을 하고, 유리병을 모아 팔며 부부의 첫 TV를 장만합니다. 제니스 크로마컬러(Zenith Chromacolor)는 실제로 197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가전제품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ebay.com/itm/358388198236


당시 바튼에게 TV란, 단순한 가전제품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부부의 공동 목표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무너지고, 직장을 잃고, 집 마저 철거될 위기에 놓인 바튼에게 이 TV는 그가 잃어버린 행복을 상기시키는 고통스러운 유물이 됩니다. 그는 종종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냉소적이고 혐오 섞인 폭언을 내뱉습니다. TV는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표출되는 창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2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약에 취해 TV를 부숩니다.


또한 소설의 시작과 끝은 미디어(TV 뉴스)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튼이 도로 확장 사업에 반대하며 처음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곳은 길거리 인터뷰였습니다. 에필로그에서도 TV 뉴스를 통해 그의 집이 조명됩니다. 바트의 마지막 저항은 결국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쇼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비참한 사연과 고통은 대중에게 TV 화면 속 사건으로 소비될 뿐임을 보여줍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잔인한 진실입니다. 아무도 악의를 품지 않았음에도 한 인간의 세계가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일상이 얼마나 연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서늘하게 일깨워줍니다. 도로(Road)가 완성되고 나면 그 위를 달리는 누구도 바튼이라는 한 남자의 비명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도 함께 말입니다.


에필로그까지 총 459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작은 균열에서 시작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치밀한 구조의 전개에 스티븐 킹 특유의 디테일한 표현력이 더해져 흡입력이 강한 작품입니다. 일상적인 풍경에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란이 적나라하게 대치되고,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현실 왜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여 오는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1] 리처드 바크먼(Richard Bachman): 1985년에 사망한 리처드 바크만은 20세기 미국 최고의 심리 스릴러 작가이다. 그는 심리, 공포, SF물 등에서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심층적인 문제들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정밀히 묘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리처드 바크만은 스티븐 킹이 만들어낸 완전히 가공의 인물이다. 의심을 품은 한 독자의 탐문으로 이 이름이 스티븐 킹의 필명임이 밝혀진 사건은 유명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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