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두고 벨은 누르지 말아 주세요

레디메이드(ready-made) 쾌락

by 욘킴


오늘도 현관문 앞에 놓인 비닐봉지를 뜯어 한 끼 식사를 차렸습니다. 한 달째, 나의 식탁은 문 앞으로 배달된 레디메이드(ready-made) 쾌락들로 채워지는 중입니다.


흰쌀밥, 스팸과 묵은지를 넣고 졸인 새빨간 김치찜, 리뷰 이벤트로 추가한 반숙 계란 프라이, 얼음을 가득 채운 제로 콜라와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세팅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놓은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보기 좋은 각도로 기대 놓습니다.


아마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루틴이겠지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는 와중에 패널들이 웃고 떠드는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 애씁니다.


숨이 찰 정도로 배가 불러올 무렵, 젓가락질이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식탁 위엔 아직 음식이 잔뜩 남아 있었지만, 보기만 해도 물릴 정도로 실컷 먹은 상태였습니다. 식곤증이 몰려옵니다.


나는 일회용 만족의 잔해들을 구석으로 밀어 두고 소파 위로 몸을 던집니다. 입 안에 짠기가, 뱃속에는 기름과 탄산이 뒤엉켜 출렁거렸습니다. 배가 더부룩하니 앞으로 두세 시간 정도는 꼼짝없이 소화에만 몰두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기분도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분명 먹을 땐 좋았는데 말입니다. 결국 꼬박 하루를 소화불량으로 보낸 뒤, 이튿날은 쫄쫄 굶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업자득이었습니다.


강제 디톡스를 하는 동안 사찰 음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연이어 보았습니다. 갑자기? 가끔은 나조차도 스스로의 의식이 흐름이 잘 이해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나름대로 발견한 패턴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나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반대편 극단에 놓인 상태를 찾아보는 버릇입니다. 숨 막히는 도시의 삶이 싫을 땐 산속 오지에서 사는 일명 '자연인'의 삶을, 뭐든 과하게 충족된 상태가 싫을 땐 항상 약간의 결핍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탐닉해 보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두부, 콩고기, 제철 나물과 버섯으로 만드는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요리 과정이 이어집니다. 그중에서도 국수를 만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표고버섯을 진하게 우려낸 채수에 소면을 담그고, 가볍게 익힌 애호박과 당근,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조금 올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영락없는 잔치국수 비주얼에, '승소(僧笑)'라 일컫는 메뉴입니다.


사찰에서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부르는 이유는 글자 그대로 '스님(僧)을 미소(笑) 짓게 하는 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엄격한 절제와 소박한 식단을 유지해야 하는 수행자들에게도 국수는 기다려지는 별미이자 즐거움이라는 인간적인 면모가 담긴 명칭입니다.


사찰 음식은 기본적으로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홍거)와 육류를 금지합니다. 여기서부터ㅡ이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즐기는ㅡ나의 식단과는 분명한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육식을 금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교리적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오신채는? 마늘이 빠진 파스타라든지, 파기름으로 맛을 내지 않은 볶음밥은 도무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상상하기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식사는 나의 레디메이드 진수성찬보다 더 근사해 보입니다. 그릇을 싹싹 닦아 발우공양을 하고, 차곡차곡 식기를 정돈하는 눈빛에는 밀도 높은 만족감이 담겨 있달까요. 만족의 크기는 결핍이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쩌면 결핍과 만족은 서로를 밀어내는 극단이 아니라 서로 순환하는 에너지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선택한 온갖 종류의 즉각적인 만족은 기다림과 결핍의 과정을 생략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만족은 소화되지 못한 채 내면에 쌓이고, 몸의 더부룩함을 넘어 정신적인 허무로 번지곤 했습니다. 반면 결핍을 견딘 후 마주하는 최소한의 것은 감각의 예민한 회복을 돕습니다. 외부의 자극을 삼가며 일군 내면의 평화로움, 국수 한 그릇만으로 웃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핍을 즐거움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관점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루를 쫄쫄 굶고 나니 배가 홀쭉해졌습니다. 이젠 사찰 음식 다큐멘터리의 음식들이 식욕을 자극하는 지경이 되어 더 이상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허기짐보다 먼저 찾아든 것은 이제야 좀 살겠다 싶은 편안한 가벼움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가벼운 허기 속에서 나는 배달 앱을 뒤적일 때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즉각적인 포만감이 앗아갔던 감각들이 돌아오자, 컵에 담긴 맹물조차 달고 창밖의 빗소리도 쾌적하게 들려왔습니다.


결핍은 세상의 사소한 기쁨을 담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빈 그릇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 허기를 가짜 만족으로 메우기보다는 기분 좋은 결핍을 기꺼이 선택하며 살아갈 다짐을 해 봅니다. 당분간 나는 문 앞의 비닐봉지 대신 기분 좋은 허기 속에 느리게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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