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맨정신
커피를 끊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나처럼 습관적으로 커피를 찾는 사람이라면 하루, 아니 반나절만 카페인이 끊겨도 금세 사고 회로가 둔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할 일이 잔뜩 쌓인 오후라든지, 꼼짝 않고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피의 유혹을 견뎌내 보기로 했습니다. 무려 한 달 동안 말입니다. 평소 커피는 중독성이 강하다든지, 많이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막상 커피를 끊었을 때 내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커피를 한 달간 끊어본, 다분히 생생하고도 인간적인 후기입니다.
우선 커피 끊기를 시도하면 며칠 내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납니다. 카페인 없이 각성 상태를 유지하려는 오랜 관성과, 카페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몸의 저항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갖가지 금단증상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심한 두통, 무기력증, 그리고 형언하기 힘든 어색함 같은 것들 말입니다.
나는 평소에도 그리 활기찬 인간은 아니기에 무기력함은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통은 예외였습니다. 두통은 상당히 불편하고 새삼스러웠습니다. 어떤 느낌이냐하면, 마치 머리를 꽉 조이는 헤드기어를 쓴 채로 스물네 시간을 생활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두통은 아마도 이미 카페인에 최적화된 뇌와 몸의 생리적 균형을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려 놓는 통과의례였을 것입니다. 물론 나는 현대 신경과학이나 약리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만, 카페인이 현대인의 뇌에서 꽤나 힘 좀 쓰는 녀석이라는 점만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두통은 일주일 정도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고, 나의 타이레놀 복용 기간도 그쯤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통을 해결한 유일한 방법은 약이 아니라 깊은 잠뿐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어색함의 경우, 이것을 금단증상이라 부르기엔 조금 어색한 구석이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우선 지난 10년간 나는 거의 같은 루틴 속에서 살았습니다. 알람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첫 번째 일과는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오토 드리퍼에 물을 채우고 커피를 갈고, 종이 커피 필터를 차곡차곡 접는 일이지요. 졸린 눈을 비비며 기계의 버튼을 '딸깍' 하고 누르면, 푸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커피 향기가 진동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커피 대신 보리차 한 잔을 어색하게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화면 속 야무진 할 일 목록에는 마친 일의 체크 표시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일들의 빈칸이 빼곡했습니다. 하지만 '디카페인 상태의 나'로 모니터를 멍하니 응시하려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커피 머신의 부글거리는 소리가 잦아들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키보드 옆에 따끈한 커피 머그 대신 놓인 차가운 보리찻잔이 영 낯설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카페인을 충전하고, "좋아, 시작이야"라며 시동이 걸리는 것이 지난 10년간의 자연스러운 시퀀스였습니다. 몸 안의 세포들도 어색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어색함이 계속되니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그냥 한 잔 마실까' 하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현대인이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 이런 잠깐의 순간 때문일 것입니다.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익숙한 커피로 손을 뻗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굳이 견뎌보기로 했습니다. 두통은 타이레놀로, 무기력증과 어색함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고, 어색하게 보리차를 마시는 인간으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디카페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입에서 커피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커피가 좋아서 그 맛과 향을 즐겼던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습니다. 참고로, 보리차는 어색했지만 훌륭한 어시스트였습니다. 훌륭한 B급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마시고 싶다는 욕구보다, 마시지 않았을 때 닥쳐올 상태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낸 건강하지 못한 루틴이었던 것 같습니다.
커피가 선사하는 각성이 무서운 이유는, 카페인이 떨어진 상태의 나를 매력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디카페인 상태의 나는 멍하고, 생산성도 떨어지며, 금세 피곤해집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건 원래 따분하고 피곤한 일입니다. 나는 그 당연한 피로를 들키지 않으려 커피에 의존해왔는지도 모릅니다. 고갈된 에너지를 깊은 잠과 적절한 운동으로 채우는 정직한 방법 대신, 카페인이 빌려준 가짜 활력으로 버티는 법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탓이겠지요.
직장 동료의 "커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살려고 마시죠, 하하"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지만,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고백에 가까웠습니다. 더 무서운 점은 상대방도 그 말에 너무나 쉽게 공감하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커피를 끊고 싶어진 건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나의 활력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단지 카페인으로부터 빌린 가짜였단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말이죠.
원래부터 내가 눈을 뜨자마자 느끼고 싶었던 활력은 따로 있었습니다. 몸이 본능적으로 원해왔던 것들—이를테면 신선한 과일의 과즙이나 강가의 젖은 공기, 혹은 방금 막 깎은 잔디 냄새—말입니다. 내 몸은 언제나 그런 것들을 원해왔지만, 늘 커피가 그 앞자리를 가로채곤 했습니다. 때로는 아침의 첫 물 한 잔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먼저였습니다. 이런 생활이 너무 오래 반복되다 보니, 다른 감각을 탐닉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중독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커피처럼 그다지 해롭지 않아 보이는 것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무뎌졌던 나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경이로움입니다. 하루를 마칠 무렵엔 이전보다 훨씬 깊은 피로가 몰려오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졸음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밤 나를 괴롭히던 총천연색의 꿈들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깊은 잠 속으로 침잠하게 된 것이죠.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보리차나 탄산수가 담긴 컵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여전히 아침의 시작은 조금 느리고, 오후의 집중력은 예전처럼 날카롭지 않은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언제 피곤한지, 언제 쉬어야 좋을지 정확히 압니다. 카페인에 가려져 있던 내 몸의 정직한 신호들이 잘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조금은 멍하고 서툴더라도 오롯이 맨정신인 나 자신과 마주 앉아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권해보고 싶습니다. 일상의 많은 감각에 무뎌졌다면, 커피를 한 번 끊어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