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가르
카슈가르에서는 좋은 기억 밖에 없다. 투르판에서 카슈가르까지 오는데 서른 시간이나 걸려서 온 보람이 있다. 기대도 많이 했었고 그만큼 가치도 있었다. 투루판도 다른 중국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에 인상 깊었었는데 카슈가르는 역시 국경 마을에다 신장 자치구의 가장 구석에 있다 보니 정말 이국적이다.
일단 분위기가 중동과 비슷하게 건물이나 도시 색깔 자체가 황토색이다. 사람들 생김새도 동양인보다는 투루크 민족 계열인 위구르인이 대부분이다. 중국어도 안 통하는 곳이 더 많았고 간판이나 글씨도 아라빅이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하니 다들 미소 짓고 있었던 기억밖에 없다.
우리 숙소는 시장 안에 있었다. Old Town 게스트하우스는 뭔가 낡은 분위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지금까지 갔던 어떤 게스트하우스보다 더 많은 서양인들이 있다. 아마 대부분 중국 국경을 건너 키르기즈스탄으로 가기 위해서 일 것이다.
카슈가르에 온 날과 다음날은 푹 쉬고 싶었다. 긴 기차여행이 피곤하기도 했고 이런 멋진 분위기의 도시에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에서 좀 쉬다 맥주나 한잔 할까 하고 로비에 갔는데 나보고 혹시 넬리냐고 물어본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어떤 중국 손님이 맡기고 갔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뭘까 하고 보니 투루판에 놔두고 온 내 폰이다. 역시 여행자들은 믿어도 된다. 내가 같은 상황이었어도 폰을 찾아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넬리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래도 거지 같은 레게 머리하고 얼굴 새카맣게 탄 동양인 보면 전해주라고 했겠지.
배가 고파 시장을 지나 로컬 사람들이 밥 먹을 듯한 곳에서 양꼬치를 먹었다. 투루판에서 항상 먹던 양꼬치가 너무 맛있었던 탓인지 그렇게 감동은 받지 않았다.
오늘은 원래 타슈쿠르칸을 갈 생각이었지만 그냥 푹 쉬기로 했다. 둔황에서 만난 톰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친구들이 타슈쿠르간에 텐트를 가지고 가서 지금 며칠째 계속 캠핑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좋대. 밤에는 별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근데 거기 가는 버스가 하루에 한 대 있는데다 올 때도 되게 애매할 거야. 아마 히치하이킹을 해서 가야할걸?”
그러기엔 이 도시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좀 피곤했다. 그리고 키르기즈스탄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조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풍경 사진을 본 나로써는 안 가도 될 거 같았다.
수진누나가 키르기즈스탄으로 가자고 계속 설득했고 나도 솔깃했다. 그렇게 숙소에 앉아 있는데 일본인 남자 여행자 두 명을 만났다. 한명은 아키. 한명은 요시. 둘 다 따로 여행하다 여기서 만났지만 각자 다른 코스로 세계 일주 중이라고 한다. 공통점은 둘 다 키르기즈스탄으로 넘어갈 거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나도 동행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키르기즈스탄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토르가 패스 다른 하나는 이슈케르탐 패스다. 누나는 토르가 패스로 간다고 하는데 교통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이슈케르탐 패스보다 훨씬 비쌌다. 그대신 가는 동안의 풍경이 너무 멋지다고 한다. 나는 가격이 싼 이슈케르탐으로 가기로 했다.
중국에 오기 전 키르기즈스탄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게 여행인 것 같다. 계획대로 되는 여행은 절대 없다. 만나는 사람이 곧 길로 이어진다. 아키와 요시 이 두 사람은 엄청난 여행 고수였다. 아키는 러시아 블로디보스톡에서 시작해 몽골과 중국을 거쳐 지금 여기서 날 만나기 전까지 60개국을 여행한 여행자다. 요시 형님은 더 대단하다. 지금까지 총 160개국을 여행했단다. 여행정보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정보가 많았다. 키르기즈스탄은 벌써 두 번째란다. 나름 여행 좀 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작아지는 순간이다.
갑자기 새로운 동행자가 생겼다. 같은 숙소의 다른 여행자들과 아키, 요시 수진 누나와 함께 야시장으로 가봤다. 세계 어느 나라로 가든 야시장은 활기찬 것 같다. 규모가 큰 건 아니었지만 이국적인 풍경에 이국적인 음식들. 뭘 먹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같이 간 동행자들은 다 합해 열 명. 각자 먹고 싶은 것도 다를 것이고 친한 사람들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 흩어져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돼지고기 덮밥 비슷한 것과 어묵꼬치, 돈까스 같은 것과 또 볶음밥을 다 나눠가면서 먹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또 맥주 한잔. 별로 한 것도 없고 사진도 몇 장 안 찍었지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