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에서 카슈가르로
낮 한 시 오십오 분 기차라 느긋한 아침을 보냈다. 어제 먹었던 위구르 죽집에 다시 갔지만 문을 닫아서 첫날 갔던 반미엔 가게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짐을 싸고 정 많이 들었던 투루판 White camel 호스텔에서 나와 101번 버스를 타고 시장 앞에 내려 버스티켓을 사서 바로 투루판 기차역행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중간쯤 와서 폰을 호스텔에 놔두고 온 걸 알았다. 앞으로 서른 시간 동안 기차를 탈 걸 알아서 최대한 폰을 충전한다는 게 화근이었다. 수진누나 폰으로 호스텔에 전화했다.
“혹시 지금 택시타고 투루판 기차역으로 폰 가지고 와 주실 수 있어요? 왕복 택시비랑 수고비 사례비 다 드릴께요”
호스텔 주인 야야는 난처해 하며
“택시타고 가져가는 건 곤란하고 내일 카슈가르로 가는 손님이 있으니 폰이랑 충전기랑 맡겨 보낼게요. 도착해서 머무는 호스텔 이름 알려주세요”
어쩔 수 없었다. 야야와 그 이름 모를 여행자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도 폰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 찝찝할 것 같다.
기차를 탔다. 난 3층 침대 중 가장 위층이었다. 기차가 싼 이유가 있었다. 에어컨도 없고 3층은 간신히 들어가서 몸만 딱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침대에서는 어차피 잠만 잘 테니.
밤이 되기 전의 1층 침대는 공동 공간이다. 다같이 쪼로록 앉아서 멍하게 있기도 하고 얘기도 나눈다. 중국어를 조금만 공부해왔다면 이번 여행이 훨씬 재미 있었을 거 같다. 수진 누나는 중국에서 몇 달 살아서 간단한 중국어가 통했다. 우리는 열차 전체에 유일한 외국인이기도 하고 내 특이한 외모에 다들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말은 걸지 않았지만 마실 거리나 과일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쎼쎼’ 한마디에 중국어로 대화가 시작된다. 아쉽지만 나는 몇 마디 주고받다 한계가 와서 창가자리에 간이 의자에 앉아 멍하게 있는 걸 택했다.
역시 신장의 기차 밖 풍경은 멋있었다. 처음엔 투루판에서 본 듯한 흙으로 된 산들이 나왔다.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토산이다. 그냥 넋을 잃고 봤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니 푸른 초원이 나온다. 말들이 뛰어 놀고 있고 하늘은 그저 파랗다.
밤 열 시가 넘으니 허기진다. 허기를 이기기 위해 3층 침대로 그냥 올라가 눈을 부치기로 했다. 좁았지만 생각보다는 꽤 편했다. 한번도 안 깨고 푹 자고 눈을 뜨니 아침이다. 아침의 기차 밖 풍경은 또 달랐다. 끝도 없는 황무지가 펼쳐진다. 카타르 도하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나간 풍경과 비슷하다. 아침부터 기차 안 온도가 올라가 창문을 여니 푹푹 찌는 뜨거운 바람과 모래까지도 들어온다. 옆 칸 사람들이 더운데 창문을 다들 닫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중간중간에 오는 음식 카트에서 컵라면으로 밥을 때웠다. 재미있는 소설책도 읽었다. 말은 전혀 안 통하지만 옆 칸의 아저씨들과 맥주 한잔하고 옆옆칸의 위구르 족 꼬마와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한번씩 화장실 창문에 기대서 담배도 피웠다. 칸 칸마다 설치되어 있는 작은 선풍기는 우리 칸만 작동을 잘 안 해서 물 세수를 엄청 했다. 더운 열기 때문에 얼굴에 있는 물기는 30초면 마른다.
밤 일곱 시 사십 분! 드디어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서른 시간! 올해의 최장기간 이동 기록이다.
카슈가르에 내리니 투루판은 상대도 안될 만큼 이국적이었다. 중국이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이 위구르족과 회족이고 우리와 닮은 한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 모양도 카타르에서 본 그 황토색 집들이 더 많다.
버스를 타고 지도에 표시된 곳에 내려 좀 걸어서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는 시장 안에 있었다. 점점 더 신비로운 풍경에 압도된다. 사람들 외모도 다르지만 남자는 흰 모자 그리고 여자들은 모두 스카프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깨끗이 샤워를 하고 저녁으로 숙소앞에서 양꼬치를 먹고 조그만 의자에 앉아 위구르 아저씨가 주는 스완나이 요거트를 먹었다.
역시 카슈가르 기대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