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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Sep 08. 2021

다윈의 일상 2

다윈

그렇게 금요일과 토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3시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세상이다. 작은 도시라 불이 켜져 있는 곳도 없고 거리에 사람은 더더욱 없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뿐이다. 


그나마 가장 밝은 큰 도로로 걸어가지만 거리에 사람은 없다. 거리에 차도 없다. 꽤 무섭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집에 불은 꺼져있고 나를 제외한 11명의 룸메이트들은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최대한 살금살금 옷을 벗고 빨리 샤워를 한다. 방문을 최대한 소리 안 나게 열고 들어가면 3명의 룸메이트들은 새근새근 숨소리만 내며 자고 있다. 발끝을 세워 까치발로 들어가서 문을 조용히 닫고 이불 소리도 안 나게 스르륵 들어가서 눕는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는 순간 다음날이다.


잠귀가 밝은 편이지만 아침에 다들 출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듣고 곯아떨어져서 실컷 잔다. 10시 좀 넘어서 일어나면 그날 휴무인 친구들 빼고는 다들 일을 가고 집은 조용하다. 그러면 대충 빵이나 라면으로 때우거나 한번씩 누나들이 아침을 차려놓고 간 걸 먹고 멍하게 거실에 앉아 있다. 밤낮이 바뀌는 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더 걸리려나 보다.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도 더 늘려줘서 피곤한가 보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일출을 봤다. 여섯 시도 안돼서 일어났다. 분명 나중에 피곤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침을 보고 싶어서 억지로 나와 거실에 앉았다. 역시 남들 다 일어나 거실에 북적북적 하는 거 보다 혼자 조용히 있으니 너무 좋다. 밤에 늦게 일 끝나고 집에 들어와 혼자 밤에 거실에 있는 그것이랑은 다른 것 같다.


그저께 폰이 또 고장났다. 올해 들어 세 번째다. 주방에서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습기가 스며 들어 간 거 같다. 내가 폰을 험하게 다룬 거도 있겠지. 어차피 소니 폰이 너무 안 좋아서 그전에 쓰던 HTC 폰을 다시 사려고 했었다.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돈을 번 만큼 그만큼 쓸 일도 항상 생기는 것 같다. 이래서 여기서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담달엔 어머니께 생활비도 보내 드려야 하는데 큰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래도 내 친구들이 페이스북으로 채팅을 걸어줘서 기분 좋다. 브라이언, 마이코, 메리. 미국, 일본, 모로코 친구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친구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다.


나는 항상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지만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 이상하다. 다 욕심이겠지. 그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지 하면서 받기만 하는 것 같다. 

요즘 새삼 느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건 쉽지만 친구를 잃는 거는 더 쉽다. 지금 있는 친구들을 유지하는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 더 잘 해야지.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로 오는 한국사람들한테 꼭 어느 정도 영어를 공부하고 오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한국 20대가 가장 많이 선호하는 호주와 캐나다에 둘 다 있어봤지만 캐나다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전혀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이다. 4년동안 캐나다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인종차별을 느껴본적도 주위에서 들어본적도 없었다.) 호주는 좀 다른 것 같다. 내가 영어를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한적이 있다. 


그리고 불합리한 일에 ‘여기는 호주니까’ 혹은 ‘나는 영어를 못하니까’ 하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엄연히 호주에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로 와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는데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급여라던지 동양인이니까 아니면 영어를 못하니까 받는 대우를 참지 않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더.


호주에 와서 영어를 유창하게 할 만큼 배우고 돈도 많이 벌고 여행도 많이 해야지 하는 이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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