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에 온 지 한달이 되어간다. 시간 참 빨리 간다. 이놈의 더위는 적응하려고 하면 점점 더 더워진다. 어제는 체감온도 45도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더 더워지겠지. 여기에는 은행원이고 회사원이고 거리에서 긴바지를 입은 사람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긴바지를 입으면 바보다. 더워서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
일하고 쉬고 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무기력 해지는 거 같고 바보가 되는 거 같기도 해서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귀찮고 밖은 덥고 하지만 큰맘 먹고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등록을 하고 나니 수건이랑 운동화가 꼭 있어야 한단다. 운동화는 일하는데 놔두고 왔는데. 이왕 마음 먹은거 땀 뻘뻘 흘리면서 운동화를 가지고 운동 갔다. 오랜만에 하는 거도 있고 너무 걸어 다니면서 힘을 다 뺐는지 무게가 안 들린다. 집에 와서 푹 쉬고 일을 갔다. 그리고 3일 후로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금요일 밤에만 바에서 일을 했었다. 식당일을 10시 넘어서 마감하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11시부터 바 마감 2시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바가 너무 바쁜지 토요일 밤도 바에서 일을 했다. 식당에서 6시부터 일하고 바로 새벽까지 일하는 금토는 죽음이다.
바텐더 쪽에는 자리가 없어 Glassy라는 일을 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다 마신 잔(glass)이나 빈 병을 돌아다니면서 치우는 일이다. 한 번 바를 주욱 돌고 나오면 잔이 싱크대에 쌓인다. 그러면 소형 식기세척기에 잔을 씻고 다시 나가서 잔을 수거 해오는 식이었다. 밤에 일해서 피곤해도 바에서 나오는 신나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얼거리고 손님들이랑 얘기도 하니 힘든줄 모르겠다.
어제는 비가 왔다. 그래서 손님이 적어서 피곤하다기 보다는 지루했다. 한 두시간 있다가 담배 하나 피고 있는데 메니져가 빨리 오란다. 보여줄게 있다고. 화장실로 가봤더니 누가 물 내리는데 토해놨다. 물이 넘쳐흘러 홍수가 났다.
땀 뻘뻘 흘리며 20분 동안 열심히 치웠다. 그리고 좀 있으니 2시가 되어 끝났다. 원래 11시에 시작하기 전에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 먹고 시작하는데 지갑을 깜빡하고 안들고 와서 한 12시간을 쫄딱 굶은 거 같다.
일 끝나니 몸은 피곤하고 배는 고프고 비는 오고. 문득 생각한다.
‘난 도대체 뭘 위해서 이걸하고 있는거지’
그래도 일 끝나고 나면 바에서 일한 사람들끼리 테이블에 앉아서 한잔한다. 매일 끝나고 나면 프리드링크 두 개다. 뭘 마셔도 상관없다. 나는 한국에서 자주 마시던 것을 항상 마셨다.
‘보드카토닉’
서양 친구들은 아니 다윈이라는 이 작은 도시의 사람들은 칵테일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것 같다. 마셔봤자 럼이나 위스키에 콜라를 섞어 마신다. 아니면 대부분 맥주를 마신다.
“앱솔루드 보드카 배맛에다가 토닉워터 섞어서 줘”
처음에 바텐더 하는 친한 벨기에 친구 킬리안에게 말했더니 그렇게 마시는 사람 처음 봤단다. 어리둥절해 하며 일단은 만들어 달라는대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들 맛을 보더니 며칠 후부터는 다 나랑 똑 같은 것을 마신다. 밤에 열심히 일하고 마시는 보드카 토닉 두잔은 피로를 싹 씻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는 아직 강남 스타일의 인기가 한창이다. 호주에서도 다른 도시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인 다윈에서는 한국인을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일주일에 두 세 명 볼까 말까다. 밤에는 이 다윈에서 가장 핫한 클럽으로 변하는 여기에서도 강남스타일이 나오는 때가 가장 달아오르는 순간이다.
이 넓은 바에서 강남 스타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고 노랫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빈잔을 치우면서 강남 스타일을 따라부르고 있으면 다들 물어본다.
“Are you Korean?”
그래서 그렇다고 하면
“We love PSY!”
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나를 신기해 하며 다들 좋아해 준다. 어느 날 메니저가 말한다.
“넬리. 강남 스타일 나오면 하던 일 그만하고 스테이지 올라가서 춤 춰도 돼”
그렇게 나는 강남 스타일 댄서가 되었다. 덕분에 집에서 유투브를 보며 강남 스타일 춤을 연습해서 더 잘 추게 되서 팁을 듬뿍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