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이롱오 (Shui Long O)에서 골든힐로드 (Golden Hill)
어제 도시에서 자서 아침에 더 서둘러야 했다. 5시쯤 일어나서 거울을 봤다. 얼굴이 퉁퉁 부어서 엉망이다. 아직 피로가 회복이 안되었는지 엉덩이도 허벅지도 쑤시다. 그래도 가야 한다. 얼른 짐을 챙겨 나와서 24시간 하는 맥도날드로 갔다. 오늘 많이 걸어야 하니 든든하게 먹어 둬야 한다. 맥머핀 세트에 해쉬브라운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었다. 다 먹고 세븐일레븐으로 가서 조그만 병에 든 럼주와 보드카를 하나씩 샀다. 삼각김밥 몇 개랑 샌드위치도 샀다. 이건 오늘과 내일까지 식량이다.
아직 해가 안 떴다. 구글 지도를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나이트 버스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요금을 내려고 카드를 찍었는데 충전해 놓은 옥토퍼스 카드에 있는 돈을 다 썼다. 다행히 신용카드로 결제가 되어서 자리에 앉았다. 사십 분쯤 가다 내려서 이십 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어제 후퇴했던 슈이롱오까지는 한시간 반이 걸렸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어제 그 자판기에서 콜라를 하나 빼먹으려는 데 옥토퍼스 카드로만 결제가 된다. 당황해서 허둥지둥하고 있으니 트레일 러닝을 하러 온 홍콩 아저씨가 콜라를 사 주셨다. 돈은 안 줘도 된다고 하셨지만 드렸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교환하자고 하시고 다음에 꼭 만나자고 하시고 쿨하게 뛰어서 가버렸다.
평소보다 한 시간쯤 늦게 트레킹을 시작했다. 오늘은 28키로나 되는 거리를 뾰족뾰족한 산을 넘어 가야 한다. 정말 걷고 또 걸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식당이 금방 나타날 것 같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나오지 않는다. 슬슬 배가 고프다.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 동안의 피로가 쌓였나 보다. 걷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그래도 쉬지 않고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걸은 지 여섯 시간 만에 식당이 나왔다. 컵라면과 간단한 음료수만 팔지만 그게 어디인가. 문제는 현금만 받는다는 거였다. 전재산 50달러 남았다. 그 중에 35달러를 냈다. 소중한 점심이다. 콜라는 마시지 않고 아껴뒀다가 나중에 술에 섞어 마시기로 했다.
배를 채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까보다 한결 수월하다.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피곤한데 돈도 없으니 멘탈이 흔들린다. 꽉 잡아야 한다. 좀 걷다 보니 원숭이가 나온다.
정말 홍콩 트레일은 친환경적이다. 예정되어 있던 캠프사이트까지는 도저히 못 가겠다. 26키로 지점쯤 한적한 곳에 가방을 내려놓고 텐트를 쳤다. 콜라에 럼주를 섞어 맛있게 한잔했다. 두 발바닥을 보니 물집에 이제 피멍이 들었다. 이 상태로 26키로를 걸었으니 힘들 만도 하다.
내일은 홍콩에서 가장 높은 타이모샨 (Tai Mo Shan)으로 간다. 다행히 내일은 15키로 정도다. 힘내서 걸어봐야지. 오늘은 일찍 기절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