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이스탄불로
방콕에서 3일, 파타야에서 3일 있으며 맛있는 것 먹고 마시며 푹 쉬었다. 열흘동안 홍콩을 걸으며 생긴 양쪽 팔과 오른쪽 발등에 생긴 화상도 많이 나았다. 양발바닥에 생긴 물집도 없어져서 이제 걷기에 수월하다. 터키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파타야에서 다시 방콕으로 왔다. 이틀 연속으로 현성이 커플과 만나 카오산에서 새벽 2시까지 놀았다. 아침 8시 40분 비행기라 5시에 숙소 앞으로 택시 예약을 해 놨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택시를 타야 해서 놀까말까 망설였지만 카오산에 가서 잠깐만 놀자는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딱 12시까지만 있다가 간다는 게 놀다 보니 2시가 좀 넘어서 헤어졌다.
4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두시간쯤 눈 부쳤나. 갑자기 누군가 침대 커튼을 열고 나를 깨운다.
“5시에 택시 예약했죠?”
잠결에 그렇다고 하고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다. 너무 피곤해서 알람을 못 듣고 잤나 보다. 5시 15분쯤 잠도 술도 덜 깬 상태로 짐을 들고 후다닥 로비로 내려갔다. 다행히 어제 나가기 전 짐을 다 싸놓고 잤다. 나를 깨우러 와 준 로비의 직원분에게도 택시 기사님 한테도 미안하다고 하고 택시에 짐을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토록 좋아하고 자주 오던 태국을 떠나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안 든다. 아직은 깜깜한 방콕의 아침을 창밖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콕이 그리우려나. 이 정도면 되었다.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니 공항 통유리창 밖으로 커다란 해가 눈부시게 떠오른다. 해가 이렇게 크고 예뻤었나.
입국심사를 하고 게이트 앞에서 좀 기다리다 카타르 도하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섯 시간 비행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세 시간쯤 지나니 기내식을 고르라며 잠을 깨운다. 피곤해도 먹을 건 먹고 폰을 보니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 카타르 항공이 괜히 1등 항공사가 아니다. 그렇게 폰을 보다 자다 깨다 하며 도하 공항에 도착했다.
12년 전 도하를 떠나고 정말 오랜만이다. 비행대기 시간이 세 시간 반 정도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게 아쉽다. 내가 살던 집은 잘 있겠지. 많이 변했을까 생각하며 지루한 대기 시간을 채우고 다시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번엔 다섯시간 예정이다. 이제 잠도 안오는데 와이파이도 안 된다. 비행기 종류에 따라 다른가 보다. 멍하게 앉아 있다가 나오는 기내식을 먹고 살짝 졸다하며 드디어 이스탄불 공항에 6시 40분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온다. 40분쯤 기다렸다가 7시 반쯤 짐을 찾아 나왔다. 이게 끝이 아니다. 8시 반에 달라만 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얼른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왔고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달라만 행 비행기는 사비하 괵첸 공항에서 출발해요. 여기는 이스탄불 공항이에요”
“거기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음. 여기서 85키로 정도 떨어져 있으니까 지금 비행기 타기는 어렵겠네요.”
오늘은 달라만에 머물려고 달라만 공항 근처에 숙소를 예약해 놨었다. 그렇게 비행기표와 숙소값을 한번에 날렸다.
도하공항에서 대기할 때 mobimatter라는 사이트에서 esim을 샀었다. 터키 포함해서 모든 유럽에서 쓸 수 있는 esim이라고 했었다. 이제 꼼짝없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다운로드가 안된다. 스무시간 동안 이동을 해서 너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와이파이를 찾아 공항을 헤메다 키오스크를 발견하고 인터넷에 연결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이스탄불에서 하루 자야겠다. 이스탄불에 머물 생각이 전혀 없었어서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폰으로 숙소를 알아보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다른 사람과 함께 자야하는 도미토리에 자기 싫었다. 방에 자쿠지와 킹 사이즈 베드가 있고 8만원이 좀 넘는 그랜드 아마다 호텔에 예약했다. 공항을 떠나면 인터넷이 안돼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도 없었다. 얼마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일단 택시를 탔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꽤 멀었다. 가는 동안 미터기에 숫자가 미친듯이 올라간다.
젊은 택시 기사가 스모킹 오케이? 하길래 오케이라고 하니까 나도 하나 준다. 창문을 내리고 차가운 이스탄불의 밤공기를 느끼며 연기를 내뿜었다. 숙소에 도착하니까 2300리라가 나왔다. 86000원 정도다. 날린 비행기값에 숙소값에 택시비에 새로 잡은 숙소까지 두시간 정도만에 30만원이 날라갔다.
체크인을 하고 자쿠지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와 몸을 담궜다. 아무생각 하지말자하고 스스로 되내이고 한참을 있다가 나왔다.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허기가 진다. 밖으로 나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보고 뭐로 만들어진지는 모르겠지만 맛있어 보이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골라 시켰다. 양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허기져서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슈퍼마켓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와서 숙소에서 마시고 잤다.
터키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