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쉘의 엄청난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쯤이다. 많이 피곤했나보다. 미쉘은 이 나이쯤 되면 잠을 못 잔자고 항상 말했었는데 다행이다. 어제도 많이 걸어서 피곤해서 잠은 깼지만 포근한 침대에 더 누워있고 싶어서 한참을 더 누워있다 7시쯤 되어서 다들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도 일어났다. 어제 열심히 해서 널어놓은 빨래가 하나도 안 말랐다. 방에 에어컨을 히터모드로 해놓고 다 같이 밖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다가 방에 널어놓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오늘도 부페식 아침이다. 역시 좋은 호텔 답게 뭔가 고급스럽다. 터키식 커피와 함께 맛있게 먹어치우고 덜마른 양말들과 속옷들을 가방 밖에 걸고 길을 나섰다.
파란 하늘의 터키는 정말 눈부시다. 오늘은 산행보다는 바다를 보며 도로를 걸었다. 산으로 걸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 셋의 의견은 같았다. 굳이? 힘들게 산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걸은지 한 시간도 안되서 저 멀리 뾰족하게 솟은 반도가 보인다. 저기서 캠핑하면 좋겠다고 입맛만 다시며 계속 걸었다.
좀 더 걷다 갈림길이 나왔고 오른쪽으로 꺾어야 오늘의 목적지인 키닉 (Kinik)이 나오지만 보가 그냥 계속 걸어가면 어차피 만날 거라며 계속 걷자고 해서 걸었다가 결국 길을 잃었다.
어쩌다 민가로 걸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꼬마가 손짓하며 옆의 나무다리를 건너오란다. 거기가 길이구나 하며 걸어갔는데 대가족이 우리를 마중 나와있다. 의자를 가져오며 차이티를 한잔하고 가란다. 노노하며 괜찮다고 했지만 말이 안 통한다. 결국 앉아서 한잔하고 가기로 했다. 말이 정말 하나도 안 통해서 번역앱으로 대화했는데 아저씨는 시리아인이고 전쟁 때문에 여기 피난와서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식이 10명 있었는데 둘은 시리아에서 죽고 둘은 다 커서 이스탄불에 있다고 한다. 안타까움을 표하니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며 받아들인단다.
무슬림에게 손님은 신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온 것을 아주 기뻐하며 오늘 여기서 머물고 가도 된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한 시간 넘게 번역앱으로 대화하고 맛있는 차이를 대접받고 나서야 다시 일어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모하메드 아저씨가족 집을 나와서 아저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걸었다. 예쁜 꽃들과 밭이 많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항상 그랬듯이 강아지가 우리를 발견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안내해준다.
길가에 하수도에는 거북이가 산다. 처음에는 큰 돌인가 싶었다. 움직이는 것을 보고 거북이구나 했다.
미쉘이 슬슬 힘들어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레툰 (Letoon) 유적지로 갔다. 3유로를 내고 표를 사고 음료수를 마시며 좀 쉬며 동네 강아지들과 놀았다. 다시 힘을 내서 유적지를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으로 이어진 꽃길을 걷는데 여기도 거북이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 같이 걷던 강아지들은 항상 거북이와 같이 살고 있다는 듯 신경도 안쓰고 지나친다.
어제 만난 카페 친구가 키닉에서 카스까지는 걷지 말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라고 했었다. 버스 출발은 4시 15분. 출발까지 45분쯤 시간이 남아서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다. 터키식 요거트 아이란까지 먹었는데 한 사람당 40리라다. 지금까지 관광객용 돈을 냈나보다. 지금까지 케밥은 보통 100리라 정도 했었다. 맛도 기가 막히고 주인 아저씨의 미소따뜻하다.
버스를 타고 미쉘과 보는 칼칸에서 내렸다. 이들은 호스텔을 이미 예약해서 캔슬할 수가 없단다. 나는 3일 연속 호스텔에 묵고 또 묵기 싫어서 카스까지 가서 좀 더 걷다 나오는 어딘가에서 캠핑하기로 했다. 카스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여기서 하루 묵으며 도시를 둘러봐도 되지만 자연에서 캠핑이 하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물과 맥주를 사고 콜라 한캔을 사 마시며 걸었다.
지도에 나온 캠프 사이트까지 가려다 텐트치기 좋은 곳을 발견해서 텐트를 쳤다. 7시쯤이다. 오랜만에 혼자다.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