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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걸어서 친구와의 재회

by nelly park


새벽 5시에 기도노래 소리 때문에 깼다. 캠핑한 곳이 모스크에서 별로 안 먼가보다. 아직 밖은 추워서 침낭속에서 좀 더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해가 뜨기 시작해서 밖으로 나갔다. 어젯밤 오랜만에 혼자 캠핑해서 조금 예민했나보다. 바람소리에 깨고 여우가 우는 소리에도 깼다. 그래도 꽤나 잘 잤다.



어제 늦은 점심만 먹고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팠다. 오랜만에 식량을 쓸때다. 그동안 무겁게 들고 다니기만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느라 쓰질 못해서 얼른 해치워야지하고 생각만 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소가스에 버너를 연결하고 팬에 물을 붓고 파스타 팩을 올려서 데웠다. 물이 끓고 팩이 뜨거우니 숟가락으로 끄트머리만 잡아 올리려다 냄비째로 끓는 물이 발에 쏟아졌다. 너무 뜨거워서 양말을 먼저 벗어 던지고 발에 차가운 생수를 부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따끔거린다. 그래도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텐트를 정리했다. 양말을 다시 신는데 발이 조금 따가웠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도 걸어야 한다.




오늘은 해안을 따라서 걷는데 큰 돌이 많은 코스다. 돌 위를 조심조심 옮겨 다녀야 해서 걷기가 너무 힘든데다 오늘부터는 아침부터 해가 쨍쨍해서 땀이 미친듯이 흐르는데 물이 얼마 없다. 아까 요리하면서 물을 썼고 그나마 조금 남은 물도 화상입은 발에 부어버렸다. 오늘따라 4키로 떨어져 있다는 카페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걷다가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러시아 여행자를 만났다. 리키안웨이의 최종 목적지 안탈리아 (Antalya)에서 여기 카스까지 오는데 18일이 걸렸다고 한다. 나는 페티예에서 여기까지 6일차라고 했다.


“6일차라고? 진짜?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열흘은 더 걸릴텐데? 차 타고 이동한거야?”


너무 놀란 표정이다. 차로 40키로 정도 점프하긴 했다. 이 러시아 여행자의 거대한 가방크기를 보니 꽤나 천천히 이동했을 듯하다. 20키로가 훨씬 넘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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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던 카페가 나왔고 너무 목이 말라서 콜라와 맥주를 동시에 사서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다 옆테이블에 독일 여행자 마빈과 이야기하게 되었다. 마빈은 길을 나선지 2년반 정도 되었다고 한다.



“독일 정치 시스템은 망했어. 그래서 독일을 떠나서 살 나라를 찾고 있어. 독일은 지금 온갖 난민을 다 받아들여서 범죄율도 증가하고 내가 낸 세금으로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어.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에 너무 집착해서 핵발전소를 다 없애고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어. 독일이 없애면 뭐해 주변나라들이 다 핵발전소를 가동시키고 있어서 거기서 에너지를 수입해. 어이가 없어. 매일 바람이 불어서 풍력발전소를 매일 가동할 수도 없고 맨날 해가 떠서 매일 태양열 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자나.”


“우리 나라는 지금 국민들이 대통령을 탄핵시켜서 대통령이 없어”


라고 했더니 놀라기도 하면서 부러워한다.


(내가 터키를 여행할 때는 5월 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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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걷기 힘든 돌길은 계속되었다. 너무 덥다. 이제 배가 고프다. 아침 내내 길을 안내해주던 바둑이도 이제 어디 갔는지 없다. 걸은지 다섯시간만에 식당이 나온다. 호텔에서 하는 고급스러운 식당이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이 정도는 오늘 고생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치킨 스테이크와 샐러드와 빵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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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걸었다. 두 시간 정도 걷다 또 카페가 나와 콜라 한잔 마시며 쉬고 또 한시간 걷다 마을이 나와서 물을 보충했다. 조금 무겁더라도 물이 없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체험했다. 벌써 여덟시간을 걸었다.


그저께 헤어지기 전 오늘 보와 미쉘과 만나기로 한 캠핑 스팟이 있었다. 지도에다 표시하고 혹시나 그들과 못 만날까봐 두번이나 체크했다. 지칠대로 지치고 어깨도 발도 아프지만 이들과 재회하기 위해 열심히 걸어서 6시쯤 지도에 표시한 곳에 도착했다. 도착한 캠핑 스팟에 이들은 없다. 아직 오지 않았나. 그런데 막상 와보니 스팟이 별로다. 뷰도 없고 돌도 많고 여기서 진짜 자야하나 싶을 정도다. 아침에 젖은 채로 넣은 텐트를 빼서 펴서 말려놓고 혹시나 더 좋은 스팟이 있을까 싶어서 짐은 다 놔두고 밑으로 걸었 봤다. 밑으로 가보니 작은 돌멩이로 NELLY↖ 이렇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더 내려가서 바다근처 스팟으로 갔나보다. 다시 가방을 가지러 서둘러 올라갔다. 이미 24키로를 걸은 후라 너무 힘들지만 다시 걷기로 했다. 이들이 있는 장소는 여기서 2키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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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악물고 걸었다. 이들이 있는 곳까지는 내리막길이었지만 돌이 너무 많은 길이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천천히 가면 해가 질 것 같다. 그래서 쉬지 않고 걸었다. 드디어 물이 보이고 “보!!!” 하고 외쳤다. 그들이 응답한다.


“여기야!!”


드디어 만났다. 7시 10분쯤이다. 슬슬 어두워지려고 한다. 열한시간을 걸었다.


얼른 텐트를 쳤다. 그래도 이들과 다시 만났고 물 바로 옆인 정말 멋진 스팟이다.


“넬리 너가 걸음이 빠른거 아는데 아직까지 안와서 걷다가 여자 만나서 어디로 샌 줄 알았어”


미쉘이 말한다. 그리고 보가 케밥을 내민다.


“너 배고플 것 같아서 포장해왔어”


길고 길었던 하루가 보상받는 기분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지금까지 여기 온 게 아까워서 텐트로 바로 들어가기 싫었다. 멍하게 서서 별을 구경하다 9시가 좀 넘어서 텐트로 들어가서 완전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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