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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이제 다시 혼자 걷기

by nelly park


기절한 채로 정말 푸욱 잤다. 오늘도 해가 뜨기 직전에 일어났다. 새소리와 물고기 숨을 쉬려 물속에서 뛰어올라 첨벙 하는 소리만 들린다. 물 옆이라 텐트가 아주 축축하다.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한참동안 이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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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와 미쉘은 피곤했는지 잠자리가 편했는지 7시 반쯤이나 되어서 일어난다. 텐트안에서 짐을 싸고 있는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 준비됐는데 준비됐어요?”


8시가 조금 넘었다.


“우리가 피곤해서 늦게 일어났어요. 금방 갈게요”


미쉘이 말한다.


캠프사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숙박 겸 식당하는 곳이 있는데 어제 미쉘이 들렀다가 8시에 아침을 먹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단다. 아침가격은 12유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보와 나는 그냥 안 먹는다고 취소하라고 했지만 그러면 너무 미안하다고 미쉘은 그냥 36유로 내고 안 먹더라도 돈은 줘야한다고 한다. 보와 내가 짐 정리하고 텐트를 말리는 동안 미쉘이 먼저 가서 밥을 먹고 왔다. 주인 아저씨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음식 준비해 놨는데 다 식었다고 몇번이나 화를 냈다고 한다. 미쉘은 지역 경제를 살리려고 도와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너무 억울하다고 눈물을 보인다. 보가 묻는다.


“돈은 냈어?”


“응”


돈을 안 냈으면 우리는 그냥 안 먹었을텐데 어쩔 수 없다. 대충 정리하고 보와 내가 아침을 먹으러 가니 미쉘에게 돈을 받아서 기분 좋은 건지 남자들이라 뭐라고 못하는건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고 아침을 내어온다. 12유로짜리 아침 식사치고는 부실했지만 돈을 냈으니 어쩔수 없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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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나섰다. 6키로 정도만 가면 마을이 있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미라(Myra) 유적지를 구경할 계획이다. 어제의 피로가 안 풀린 채로 걷는 돌길 6키로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햇살도 너무 뜨겁다. 어제와 비슷한 길을 또 걷고 있으니 이제 리키안웨이를 그만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뎀레 (Demre)에서 피니케 (Finike)로 가는 길이 리키안웨이에서 제일 힘들다고 한다. 하루에 획득고도가 1400미터라고 한다. 이 더위에 절대 안될 것 같다. 이제 올림포스 (Olympos)만 보고 그만 걷고 리키안웨이의 최종목적지인 안탈리아 (Antalya)까지는 그냥 버스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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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던 6키로가 지나고 예쁜 항구 마을이 나타났다. 슈퍼를 보자마자 목이 너무 말라 스프라이트 1리터짜리와 맥주 한 캔을 사서 슈퍼 앞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서 밥을 먹고 이동할까 하다 앞에 택시가 있길래 택시를 타고 바로 미라 유적지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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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뎀레로 가서 나는 거기서 묵고 이들은 버스로 카쉬 (Kas) 까지 돌아가기로 했다. 이들은 나보다 여행 일정이 짧아서 카쉬부터는 차를 빌려 로드 트립을 며칠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런다. 이제 진짜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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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유적지는 티켓이 13유로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한시간쯤 구경하고 올 때 타고 온 택시 기사가 기다리고 있어 다시 택시를 타고 뎀레로 같이 돌아왔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푸짐한 케밥과 순무주스 같은 걸 도전해봤는데 너무 시고 매웠다. 웬만하면 주문한 건 다 먹는데 주스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 반 정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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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이들을 배웅하고 맥주 두 캔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6만 5천원짜리 방에 거실에 베란다까지 있는 엄청 큰 방을 얻었다. 이틀 연속 캠핑을 한 후라 얼른 씻고 빨래를 해서 널고 맥주를 마시며 쉬었다. 충전기가 고장 났는지 작동이 안 되지만 오늘은 절대 밖에 나갈 생각이 없다. 내일 아침에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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