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 (Olympos)
넓고 쾌적한 숙소에서의 하룻밤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고 싶은 만큼 푹 자려고 했지만 몸 시계가 아침 일찍 기상으로 맞춰져 있나보다. 6시가 좀 넘어서 눈이 떠졌다. 사실 5시부터 도시에 울려 퍼지는 기도 노래소리 때문에 더 일찍 깼지만 포근한 이불에 더 누워있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서 도시를 구경했다. 어제 해서 널어놓은 빨래가 하나도 안 말랐다. 첫날 이스탄불의 호텔에서 가져온 네스카페 스틱으로 커피한잔 타 먹으며 8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폰 가게 중에서 제일 빨리 문 여는 집이 8시다. 보조배터리와 폰 둘 다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오늘도 캠핑을 하려면 어느 정도 충전이 되어야 한다.
8시가 되기 조금 전에 숙소를 나섰다. 항상 느끼지만 터키의 아침은 느리다. 태국이나 한국이 너무 빠른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설마 아니겠지하고 도착한 폰 가게는 다행히 이제 막 문을 열었다. 충전기 헤드를 보여주며 이걸 사고 싶다고 했더니 포장지를 까서 보여준다. 내 충전선에 연결해서 테스트까지 마쳤다. 가격을 물어보니 하나에 20리라란다. 가격도 싸고 얼른 충전해야 되서 2개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보조배터리 두개 다 충전기에 꽂아놓고 아침을 해먹었다. 리키안웨이는 오늘로써 끝이다. 아직 파스타 한팩, 볶음밥 한팩, 그리고 라면 두개가 남았다. 얼른 먹어 해치워야 한다. 라면 두개와 파스타 한팩을 동시에 해서 배부르게 먹었다. 남은 볶음밥 팩 하나는 비상식량으로 남겨두었다.
11시 체크아웃이라 그 전까지 최대한 보조배터리를 충전시켜놓고 최대한 빨래를 말리는 게 미션이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샤워하고 커피 한잔 더 끓여먹었다. 두꺼운 양말 두 켤레 빼고는 다 말랐고 충전도 반반씩 되었다. 숙소를 나서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12시 15분 버스다. 시계를 보니 11시 20분이라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니 주인아저씨가 토마토 두개를 가방에 챙겨준다. 터키의 인심은 정말 항상 감동이다.
마지막으로 올림포스로 가기 위해 안탈리아행 버스를 탔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운전기사님 옆에 방석을 깔아준다. 중간중간에 멈춰서 많은 손님이 내리고 또 탔지만 내 자리는 계속 기사님 옆 방석위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아드라산 (Adrasan)에 내려야 해서 그럴수도 있겠다. 두 시간 동안 기사님과 같은 풍경을 보며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가다가 아드라산에 내렸다. 내리고 보니 아드라산으로 가는 길목 고속도로 한복판이다. 아드라산까지는 한참 걸리는 곳이다.
같이 내린 독일 할아버지가 묻는다.
“어디가?”
“아드라산 가요”
“우리들도 아드라산에 있는 숙소에 묵는데 여기까지 픽업차가 오기로 했어. 같이 타고 갈래?”
“예스!”
아드라산에서 산을 넘어서 올림포스까지 간다고 하니 너무 멀고 시간이 늦었다며 숙소에 같이 묵고 할아버지들도 내일 간다고 하며 같이 가자고 한다. 그래서 큰 배낭을 보여주며 오늘 산에서 잘거 라고 하니 납득한다.
차가 왔고 숙소 근처에 내려 밥 먹는 곳에서 나는 얼른 걸어야 한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걸었다. 내린 곳에서 리키안웨이로 합류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린다. 열심히 지도를 보고 걸었다. 3시 반쯤 들머리에 도착했다. 일몰 시간이 7시 50분이니 7시 정도 까지만 캠프사이트에 도착하면 되겠지 하고 출발했다. 생각해 놓은 캠프사이트까지는 6km 정도에 획득고도는 700미터다. 미친듯한 오르막길이지만 지난 며칠 걸은 코스보다는 길이 잘 되어 있었다. 헷갈리는 길도 없고 돌투성이 길도 아니어서 한국산을 걷는 것 같다.
시간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최대한 덜 쉬며 걸었다. 길은 잘 되어 있지만 뷰는 없다. 캠프사이트에는 뷰가 있겠지 하고 6시쯤 도착한 곳은 나무로 둘러 쌓여 있고 아무것도 안보이는 곳이었다. 여기서 자려고 이렇게 고생했나 하고 다음 곳을 찾아보니 30분거리다. 다시 걸었다. 생각해보니 다음 캠프사이트와 마을은 얼마 안 멀다. 거기다 마을 초입에 캠핑장도 있고 바도 있다. 이왕 고생한 거 터키 캠핑장 경험도 해보고 맥주도 한잔할 수 있는 기회다. 지도에 캠핑장을 검색하니 7시 15분 도착 예정이라고 뜬다. 이제 타임 어택이다. 한 번도 안 쉬고 열심히 걸어서 해가 지기 직전에 도착했다.
도착한 캠핑장은 깨끗하고 화장실과 샤워장 그리고 냉장고도 있고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까지 있는데 400리라다.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바에 갈까 하다 기운이 없어 슈퍼에서 맥주 두 캔을 사와서 한잔했다. 혼자 안주도 없이 맥주만 홀짝홀짝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주인 아저씨가 치킨 라이스를 주시며 “Bon Appetit” 하신다. 마음이 뭉클해져서 밥값으로 200리라를 드리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신다. 그러면 담배 한가치를 200리라에 사겠다고 하고 드렸다.
술을 안 마시긴 했나보다. 맥주 두 캔에 취기가 돌아 얼른 텐트안에 들어왔다. 얼른 눈을 붙이고 새벽 3시쯤에 눈을 떴다. 맞은편 바에서는 아직 파티가 안 끝났나 보다. 시끄럽다. 다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