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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터박스 Jun 22. 2020

기억을 기억한다

퓨처 트레이닝:  외할머니의 음식 1탄(조기탕)

비가 오는 아침이다. 이런 아침에는 외할머니표 조기탕을 끓여 먹어야  한다. 냉장고에서 조기 3마리를 꺼내서 실한 지 살펴본다.


어려서 할머니께 배운 조기탕 끓이는 순서는 이렇다

말린 다시마 2개를 넣고 육수를 낸다.(없다면 그냥 맹물도 괜찮다)

양파 4분의 1개를 채 썬다.

파 반대를 성큼성큼 자른다

고춧가루와 마늘 한 스푼을 육수에 넣고 한번 푹  끓인 다음 거기에 조기를 넣고 양파와 대파를 올리고 고춧가루 반 스푼을 다시 뿌린 다음 마지막에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이 심플함에도 불구하고 엄청 맛있는 조기탕이 완성된다.

시골에 살 때는 냉장고에서 조기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할머니는 비가 오거나 딱히 반찬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조기탕을 끓여주시고 하얀 속살 드러난 조기를 한 마리씩 먹게 하셨다.  어려서는 그 조기탕의 맛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조기만 먹었지만 지금은 조기탕의 국물부터 맛보고 조기살과 국물을 적당히 배합해서도 먹고 마지막엔 조기탕 국물에 밥을 말기도 비비기도 한다.


헐레벌떡 시장으로 뛰어가 조기 3마리를 실한 걸로 준비해 조기탕을 끓였다. 외할머니께서 오신단다.

새로 지은 밥과 조기탕과 김치밖에 준비 못한 상에 할머니께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갓김치와 조개젓 갈과 각종 밑반찬이 더해져 멋들어진 상이 되었다.

할머니는 그날 조기탕을 다 드셨다. 해맑게 웃으시며 맛있다고 해주셨고 평상시보다 밥을 많이 드셨다고 했다.


외할머니께 조기 3마리를 넣고 끓이는 방법을 배워 항상 3마리를 끓인다. 혼자 먹을 때도 여럿이 먹을 때도 모이는 인원수에 상관없이 3마리이다. 섬섬한 맛으로 시작해 양파의 단맛이 느껴지는 순간 조기 속살의 단맛도 같이 어우러져 조화롭다가 대파와 고춧가루가 들어간 국물의 칼칼함이 느껴질 때가 되면 밥도둑으로 변신한다. 그때부터는 조기살과 국물을 섞어 먹는 게 진리이다.

마지막 국물 한 숟갈까지 칼칼함과 깨끗함을 유지하는 게 이 조기탕의 핵심이다. 이것저것 남는 거 없이 맛을 내는데 꼭 필요한 것들만 넣어 극강의 미니멀이지만 딱 좋았다.

가난한 8남매인 우리들에겐  당근과  향 채소는 사서 먹기엔 사치였고 고추는 한 개만 필요한데 꼭 한 봉지씩이라 낭비였다.  그때 나에게 꼭 맞는 레시피였던 건데 지금은 당근과 향 채소와 고추가 있어도 그때 맛이 그립고 할머니가 그리워 그때 레시피대로 끓여먹게 된다. 외할머니는 항상 그랬다. 무뚝뚝한 나에게 외할머니는 항상 그랬다. 외할머니가 오늘은 유독 보고 싶어서 조기탕을 끓인다.



그날 외할머니는 나에게 통장을 주셨다.

농협통장, 거기엔 내가 매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한 해 농사를 위해 보낸 이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그걸 들고 전주 이모네에 들었다가 안양 큰 이모 외삼촌네를 돌아서 우리 집에 오셨다.


큰 남동생을 고등학교를 안 보내고 검정고시로 대학을 보내겠다고 결정하고 서울 상암동으로 이사를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남동생이 왔을 때 그 수줍고 미안해하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동시에 손자 학업이 본인 탓이라 여기시는 할머니의 표정도 잊지 못한다.


할머니 거기서 장성고 못 가고 그냥 일반고 가면 진짜 좋은 대학 못 가요. 내가 챙길 여력 되니 내가 학원 보내고 챙겨볼게요. 오늘 노량진 가서 시험 봤는데 수학은 잘하고 나머지는 거의 빵점이긴 한데 오히려 나머지는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어요. 2년이면 충분히 할 거고 목표가 연세대라니 근처로 이사 갈게요.  일단 6월 검정고시 합격하고 그때 또 전화드릴게요.


시골에선 학교를 안 보낸 일로 친척들까지 걱정을 하고( 내가 지역 균등 선발로 서울에 왔으니 자식들 공부가 걱정이면  우리 외할머니를 통해 나한테 질문하시던 친척분들)

급기야 이모네 외삼촌네 들은 외할머니 키워준 정은 공도 없단 소리까지 나와서 할머니께서 화딱지가 나서 통장 들고 순례를 하셨다고 한다.


나는 대학 2학년 때부터 휴학기간 3년 동안 돈을 모아 외할머니 1년 농사를 위해 겨울에서 봄이 되는 사이에 부쳐드렸다.


농사를 지근거리에서 보며 자란 나는 언제 큰 목돈이 필요하고 농협 대출통장에 언제 얼마가 있어야 일 년 농사를 짓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전주 이모네 가서 통장을 보여주면서


니가 가져다 쓴 고추는 누구 돈으로 키웠는지 봐라. 느그들은 어매한테 고춧가루 사간다고 유세였지만 생전 할머니한테 용돈 한번 줬단 소리 안 하는 아다. 느그가 그걸 알아야해. 느그 아들 셋 중에 나한테 용돈  보낸 애가 있냐? 느그 그렇게 속 터지는 소리할거면 인자 나한테 고추도 가져가지 말고 오지도 말그라. 어매가 혼자되어 늘그막에 그것들 키우면서 힘들었지만 재미졌다. 좋았어. 인자 다 막내까지 내년이면 오빠 맹크로 서울 간다 하면 나 혼자다 혼자!


안양 이모와 외삼촌에게도 보여주시고


느그가 농사짓는 어매한테 힘든게 짓지 마쇼 하지

논이랑 밭을 누구 주고 거기서 세 얻어먹으라고 그 시골에 영감 할매들밖에 없고 그나마 젊은것들은 다 좋은 장비 갖고 하는데 어떤 놈이 논이랑 밭을 세얻어서 경작한데 그냥 노는 땅도 쌔고 쌨는데.


농사 지을 때 되아서 엄마 돈 좀 어찌 못빌려주겄소라고 느그 형이 이야기해서 그 돈 2천 대출 받아 해줘불고 난께 농사 지을 돈이 없어서 내가 풀이 죽어 있었는디

막내 그것이 언니한테 이아기 해갖고 둘째가 전화했더라.

계좌에 돈 보냈으니 할머니 모종 사고하시라고.

곰살맞게 안 굴어도 한 마디씩 하면 내 속에 들어온 거 마냥 해.

내가 인자 농사 안 지으면 산 송장처럼 있다 가겄지. 허리가 꼬부라져도 내 고추밭이 있어서 고추 걱정되어 안 죽고 날마다 밥 묵고 산다.


엄마랑 이모들 삼촌들이 통화하고 외할머니께서 왜 오셨는지 알아 나에게 전화가 오기까지 참 여러 사람 마음이 독하게 쓰라렸던 것 같다.


엄마한테는 이야길 했어야지.


이 한마디가 뻐근했다.


엄마, 할머니께서 갓김치랑 조개젓갈, 젓갈 잔뜩 가져오셨어요. 갈치젓갈이랑 밴댕이 젓갈은 김징할때 쓰게 잘 보관하고 조개젓갈은 내가 간을 빼서 말려서 다시 묻혀 먹을게요. 서울 오시면 엄마가 젓갈들 가져가셔도 되고...


조개젓갈 다시 씻어 말리려면 일인데 엄마가 해주랴?


아니 농장에 파리 끓어서 안돼요.

제가 여기서 할게요.


냄새난다고 뭐라 하면 주인도 안 좋아할 텐디


아파트 주인분 좋은 분이라 괜찮아.

망에 잘 펴서 며칠 말리면 한 달 반찬은 되겠다

조개젓갈 무침 생각만 해도 입에 침 고여요!


할머니는 그날 밤에 화성 엄마 농장에 가서 한 밤 자고 내려가셨다. 두 분이서 그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을까?


엄마의 엄마는 내 엄마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혹할 만큼 시리고 찬 계절을 3번이나 도는 동안 엄마의 엄마는 내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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