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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 Dec 16. 2019

'그놈에 자존감'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사람들의 성향은 매력적이거나 지루한 것 둘 중 하나이다.

'그놈의 자존감'에 대해, 첫 번째 이야기

(*제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번거로우시겠지만 1편('그놈의 자존감'에 대해)을 읽고 와주시는 게  이번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애초에 한 편짜리 글이 두 편으로, 글을 옮기는 지금은 세 편으로 길어질 폼을 잡고 있다. 

(독자분들. 기왕 읽으신 김에 1편, 3편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앞서 중요한 부분을 하나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바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이란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거대한 개념이기에 나는 이 글에서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사랑의 극히 일부인 '인정'과 '존중'으로 제한하도록 하겠다.

(* 언젠가 글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 언급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관계와 자존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인정'과 '존중'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시면 되겠다.


앞서의 글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직시하고, 인정해야 할 두 가지의 전제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 사람에 대한 평가에 보편적 기준이 있다는 것.

둘째, 나 또한 사람이라는 것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문제는 타인을 사랑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보편적 평가에 기대어 있어야만 의미 있는, 사랑할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직시하면 '나'라는 존재와 '자존감'이라는 개념을 성역화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격이 괴팍한 사람을, 자존심만 센 사람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즉, 보편적 '좋음'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보편적 기준들을 충족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들을 꼭 사랑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타인을 사랑하는가. 

도대체 우리는 어떤 타인을 '인정' 하고 '존중'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비로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 줄 것이다.


다음은 19세기 아일랜드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이자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여담이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생전 재치 있고 날카로운 입담으로 '촌철살인'의 대가라고 불렸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인기 또한 많았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제법 미남형 얼굴이었나 보다.

'사람들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 짓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람들의 성향은 매력적이거나 지루한 것 둘 중 하나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좋은 사람을 좋게만 대하지 않으며 나쁜 사람을 나쁘게만 대하지도 않는다. 

사회의 기준에서 좋은 것은 '만만한 것'이 되기도 하고, 사회의 기준에서 나쁜 것은 이제 '개인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아닌, 매력적인 사람을 사랑한다. 

어떤 행동을 하는가 보다, 행위주체의 매력도에 따라 행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가령, 잘생긴 사람은 뭘 해도 용서된다던가, 다소 싸가지가 없더라도 확실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이 시크함으로 변하는 상황들 말이다.


'좋은 것'은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좋은'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본인의 매력이 되려면 그 수식어가 자신의 본능에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매력에는 일관성과 맥락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철저한 사회화의 틀 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보편적 '좋음'을 '매력'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사실 착각이라고 표현하기조차 과분할 정도로 인지가 없는 상태라고 본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무의식적 사회화를 통해 '좋음'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대신에 '매력'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상실했다는 말이다.


한국 도덕 교육의 산물로서 좋은 사람의 군상이 되려 노력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좋은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은 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에 대한 타인의 태도를 컨트롤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 입으며, 이 상황의 반복이 곧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제 착한 사람 콤플렉스 딱지를 떼고, 매력 딱지를 붙이고 살아갈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매력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서 '그놈에 자존감'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에서 자세히 한 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쉽게 쓰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 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글을 확인하시는 분들 덕에 아마추어 작가는 오늘도 힘을 내 힘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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