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빗대어서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올해 7월쯤, 어떤 작가가 연희동에서 '내 방 여행하는 법'이란 책을 가지고 모임을 열었다. 모임에 참여하기 전, 여러 질문들을 남겨주었는데 그중 하나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Q. '내 방'에 있는 물건 가운데 인생을 빗대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폼롤러는 단축이 되어 있는 부위에 사용하여 근막과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마사지 도구다. 타이트한 느낌이 있는 부위에 놓고 폼롤러를 굴려주면 이완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조직의 유연성과 관절의 가동범위를 증대시킬 수 있고 혈액 공급과 노폐물 배출 역시 증대될 수 있다. 나는 몸이 경직되어 있다고 느낄 때 이 폼롤러를 사용해서 근육을 풀어주고 그런 후에는 몸이 한결 유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 과정을 꽤 자주 반복하고는 한다. 그런데 근육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또 뭉쳐있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반복적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담이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근육을 잘못 써서 다치기도 하다. 나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내 방에 있는 폼롤러가 떠올랐고 이 반복의 과정이 우리 인생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나는 어떤 일을 맡을 때 타인보다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편이며 이 책임감은 내가 다 해내지도 못할 업무 계획들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나의 욕심일 수도 있는 이 과도한 무게감이 나의 삶과 일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회사를 벗어난 일상에서도 일에 대한 생각을 지속하게 만들며 결국에 번아웃이라는 현상까지 초래하는 것이다. 나는 이 번아웃 패턴을 반복적으로 경험했고 어느 시기가 지나면서 이것이 내 삶에 건강하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이때 타이트한 상태로 여유와 휴식과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무시한 채 가속 페달을 밟고서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긴장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으며 휴가를 위해 떠났던 곳에서도 여전히 일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게 번아웃 현상을 겪고 3개월 정도 일을 쉬었으며 이후 맘껏 느슨해질 수 있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긴장과 느슨함(이완)을 조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의 컨디션이 타이트하고 긴장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외부 요인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거나 사원이던 위치에서 리더십의 위치로 승진했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등의 상황 또는 관계에서의 갈등, 신체적인 문제, 갑작스레 벌어진 사건 및 사고들은 우리의 마음에 긴박함을 주거나 긴장감을 일으킨다. 분주함의 상태가 긴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분주할 상황들은 현대인의 삶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느린 템포의 음악, 여유, 느린 걸음, 휴식, 쉼, 집에서의 시간, 산책하는 시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 때로는 영화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시간들을 떠올려보자. 이 시간들을 느슨함이라고 정의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 인생을 돌아볼 때 타이트함과 느슨함이 교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외부적인 상황이 빡빡하게 돌아가기도 하고 여유부릴 수 있는 여건이 되기도 하다. 내 마음의 상태가 경직될 때가 있고 느슨해질 때가 있다. 어떤 활동들을 할 때 확 긴장될 때가 있고 릴렉스된 상태로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 앞에서 긴장할 때가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날 때는 편안해서 마음이 풀어질 때가 있다.
폼롤러의 기능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필요할 때 우리는 그 경직됨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풀어져야 할 때 풀지 못하고 지속되면 결국 근육이 다치는 것처럼 무언가 다치는 일이 발생될 것이기에.
누구나 편안함을 누리고 싶지만 우리 인생에는 나 자신을 긴장시키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이때 하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시간을 지난 후에는 반드시 느슨함의 시간들을 충분히 보내야 한다고. 제때 회복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어떤 시점에는 버티는 힘이 다하게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