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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리니 Jul 24. 2023

영끌엔 빠꾸가 없다

안전하게 영끌해야 하는 이유

영끌에도 정도가 있다. 월 상환금이 저축 가능 금액의 60%를 넘기지 않는 것. 가령 매월 저축 가능한 돈이 100만 원이라면, 대출 상환금은 최대 60만 원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건데, 이것이 바로 안전한 영끌의 기준으로 꼽힌다. ‘안전’과 ‘영끌’이란 두 단어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여튼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부동산 전문가들이 정리한 기준이란다.     


우리 부부는 이 기준을 넘겨 영끌 of 영끌 대출을 받았다. 그럼에도 크게 위험하다 생각하지 않았던 건 

1) 남편도 나도 매년 월급이 꾸준히 오르고 있었고 

2) 월급 외에 내가 받는 재방료(방송작가들에겐 재방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는다)가 꽤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임신하기 전까진.     




새 생명이 찾아온 것은 물론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임신으로 일을 관둬 내 벌이가 끊긴다면, 우리 부부의 수입이 절반으로 줄게 되는데 대출금은 앞으로 38년 하고도 6개월을 더 갚아야 했다(우리 부부는 40년 만기 대출을 받았다.)      


아파트 거래 자체가 안되는 판에 집을 당장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설령 하락한 호가로 매도한다고 해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그동안 이 아파트에 들어간 대출 이자와 인테리어비, 복비, 세금을 계산하면 마이너스였고, 매도 후 새로 집을 구할 때도 역시나 각종 세금과 복비, 이사비 등이 추가로 들게 될 터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프리랜서인 나도 3개월간 출산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2023년부터는 정부에서 매월 70만 원의 부모수당을 지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24년부턴 100만 원으로 인상 예정)      


내가 일을 관뒀을 때, 우리 집의 수입과 지출을 아주 보수적으로 따져봤다. 남편의 월급과 부모 수당금을 합해도 매월 약 –80만 원 정도의 마이너스가 예상됐다. 나는 최소 1년간은 일을 쉬고 아기를 키울 계획이었기에 우리 집엔 적어도 80만 원 x 12 = 960만 원의 비상금이 있어야 마이너스를 메꿀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이미지투데이

나는 ‘출산 전까지 최소 960만 원의 비상금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일했고, 다행히 임신 10개월간 목표 금액 이상의 돈을 모았다. 입덧도 거의 없었고, 많은 임산부들이 걱정하는 임신 당뇨에도 걸리지 않아 만삭 때까지 아주 무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영끌로 집을 샀던 순간부터 출산하게 된 그 순간까지, 우리 부부는 항상 아주 간당간당하게 빚의 허들을 넘었다. 아파트 담보 대출이 부족해 신용대출까지 끌어서 집을 매매했고, 금리가 오르기 직전에 겨우 신용대출을 갚았으며, 만삭 때까지 열일한 덕에 최소한의 목돈을 마련하는 식. 여기서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겼다면 우리 가계는 물론 결혼 생활에도 큰 구멍이 났을 것이다.      


만약 영끌을 계획 중인 신혼부부가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조금 더 보수적으로 영끌하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정리한 안전한 영끌 기준이 아닌, 부부의 돈사정을 냉정하게 따져서 결정하라고 말이다.      


내 경험상 맞벌이일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이 최소 1년간 수입이 없더라도 무리 없이 대출금을 갚으며 일상 유지가 가능해야 ‘안전’까진 아니더라도 ‘덜 위험한’ 영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수입 대비 대출금이 적거나 혹은 최소한의 비상금을 안전핀으로 확보해놓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다면 임신을 한 순간에도 행복한 미래만큼이나 차가운 현실을 함께 떠올려야 할 것이며, 누군가 아파서 일을 관둔다면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만큼 큰 돈 걱정에 짓눌리게 될 것이다.     


영끌 후엔 

빚을 갚아나가는 현재와 미래만 있을 뿐, 빠꾸는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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