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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리니 Aug 23. 2023

작은 주방에 맘마존 끼얹기

맘마존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출산을 준비하며 ‘맘마존’에 대해 꽤 오래 고민했었다.     


맘마존이란 분유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분유 제조기, 젖병을 건조 및 살균시켜주는 젖병소독기, 분유 제조에 필요한 물의 온도를 영구적으로 유지 시켜주는 분유 포트. 이 3종 세트를 일컫는 말로 요즘 아기 키우는 집의 필수품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아기를 키우는 집의 SNS를 살펴보면 대부분 이 3종 세트가 주방 한쪽에 예쁘게 늘어져 있다.     


과거 아기를 키웠던 육아 선배들은 맘마존에 대해 들으면 ‘세상 참 좋아졌다’고들 한다. 새벽에 아기가 배고프다고 집이 떠나가라 울 때, 불 꺼진 주방에서 더듬더듬 불을 켜 분유를 만들곤 했었는데 요즘은 분유 제조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이라며 본인들도 모르게 라떼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식이다. 내가 맘마존 세팅에 대해 고민하면 대부분 그 편한 걸 왜 고민하느냐!는 대답과 함께 또 다시 라떼는 그거 없어서 얼마나 힘이들었냐면- (이하 생략) 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맘마존은 육아의 편의성을 끌어올린 기특한 녀석들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나처럼 좁은 주방을 둔 사람들에게 맘마존은 고민의 대상이다. 모두가 필수품이라고 외치니 사야 하나 싶기는 한데 우리 집 주방엔 이 제품들을 모두 들일 공간이 없다. 꾸역꾸역 공간을 내 맘마존을 만든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조리대는 더 비좁아질 것이었다.




그럼 맘마존은 진짜 필수인가?

맘마존이 없을 때도 이 세상 아기들은 잘만 컸는데?!      


나는 여러 방면으로 ‘맘마존의 필요없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을 찾았다. #미니멀육아, #맘마존후회, #맘마존불필요 등 여러 키워드를 써봤지만 원하는 정보는 없었다. SNS에선 모두 맘마존을 꼭 세팅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육아하는 내내 불편함과 후회를 안고 살 게 되리라 말하고 있었다.    

 

내 지인들 대부분도 맘마존을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처럼 좁은 주방을 둔 친구는 주방에 맘마존 세팅이 어려워 화장실 앞에 작은 진열대를 들여 이 3종 세트를 세팅했다고 했다.


요즘 부모들에게 맘마존은 주방에 들이지 못하면 화장실 앞에라도 둬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맘마존에 더 거부감이 들었다.     


미니멀 인테리어까진 아니지만, 나름 필요한 가구만 최소한으로 들여 깔끔하게 살려 노력 중인데 남들이 다 산다는 이유로 화장실 앞 공간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맘마존이 아니더라도 이미 아기 많은 아기 용품들이, 온 집안 구석구석 한숨이 나오도록 쌓여있는 터였다.     


그래서 이 3종 세트의 각 기능에 대해 디테일하게 분석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맞다면 한 두 가지 정도 들여보고 그게 아니라면 과감히 스킵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 제일 저렴하고 부피도 적게 차지하는 분유 포트만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분유를 탈 때는 적정 온도의 물을 섞어야 하는데 내가 매번 그 온도의 물을 만들기는 어려워 보였기에, 이것만큼은 정말 ‘필수품’이다 싶었다.     


분유제조기와 젖병소독기는 사지 않기로 했다. 분유제조기를 들이지 않아도 내가 직접 분유를 타면 그 뿐이다 싶었고, 사용 후에는 한 번씩 기계 세척을 해 줘야 한다는데 그 시간도 꽤나 귀찮을 것 같았다.


젖병소독기는 맘마존에서 가장 부피가 크기에 안 사려고 했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물을 끓여서 열탕 소독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었는데, 남편의 지인이 사용하던 젖병소독기를 넘겨 줘 고민했던 시간이 머쓱할 정도로 얼레벌레 소독기를 들이게 됐다.      


젖병소독기를 두자 꽉 찬 현실 주방


그렇게 나는 맘마존 3종 세트 중 분유포트와 소독기, 이 두 제품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두 제품으로 아기를 4개월간 키웠다. 한창 육아 중인 내게 다시 한 번 맘마존이 진짜 필요하냐,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또 한 번 ‘아니다’고 답할 것이다.     


정말 솔직하게! 새벽에 아기가 배고프다 엉엉 울고, 비몽사몽 상태로 분유를 만들다가 실수로 물을 쏟는 대참사가 발생하고, 아기는 더 자지러지게 울어, 남편과 나까지 덩달아 눈물 바람을 할 뻔한 몇 차례 최악의 순간에선 ‘이래서 분유제조기를 사는구나’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 순간일 뿐, 대체로 없어도 살만했다.      


젖병소독기여전히 필수품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이 소독기를 완벽히 믿지 못해 이삼일에 한 번은 열탕소독을 해대고 있는데 그냥저냥 할만하다. 얼마 전엔 소독기에서 전자파 발생이 많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제품에 따라 전자파 발생 여부가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애미는 불안합디다) 더더욱 열탕 소독 횟수를 늘리고 있다. 무엇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부피가 커서 주방 청소를 할 때마다 거슬리는 존재이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맘마존이 어쩌고저쩌고 길게 쓰는 이유는, 맘마존을 세팅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넓은 집에서 여유 있게 육아하는 경우라면 안 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만 나는 나처럼 좁은 주방을 둔 사람들이 맘마존이 필수라는 말 때문에 혹은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무리해서 이것들을 모두 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건 과거의 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으니까.      


좁은 집에서 아기를 키우다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공간 만들기 싸움이라는 것을. 이 사면 저 것은 버려야만 아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에 더더욱 맘마존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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