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나팔관 조영술
겁쟁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 앞에서는 한없이 겁쟁이 었다. 시험관 시술을 결정한 후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나팔관 조영술에 대한 공포였다. 위험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6번의 수술을 경험했고 마취가 덜 되어 반 마취 상태에서의 수술, 수술 후 마취가 깨어난 후 통증으로 울보가 되었던 경험 등 이 정도의 경력(?)이면 웬만한 고통은 참아낼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시험관을 통해 지금은 100일이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와의 통화에서 '나는 악 소리 지르고 난리 났었어. 내가 겪어 본 고통 중 최고였어.'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 친구는 평소 엄살이 없는 편인데도 얼마나 아팠길래 소리를 질렀단 말인가. 나는 조영술을 받기 전까지 미친 듯이 후기를 검색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먼저 들어간 사람이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극심한 고통이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등 개인차가 있었지만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아프다' 쪽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자발적인 겁쟁이가 되었다.
첫 진료를 보고 이틀 후 바로 조영술 날짜가 잡혔다. 생각보다 빠른 일정에 당황했던 나는 이왕 할 거면 빨리하는 게 낫지라고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다스려 보았지만 소리를 질렀다는 친구의 말이 이미 내 정신을 지배해버린 상태였다. 시술 당일에는 도저히 혼자 갈 자신이 없어서 남편에게 반차를 내길 권유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남편과 같이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순간 내가 괜히 바쁜 사람을 끌고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험관의 과정은 가능한 선에서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세상 밖은 저출산으로 떠들썩하지만 난임 병원 안은 늘 간절한 사람들로 붐빈다. 진료를 보려면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대기 중인 사람들은 모두 일면식도 없고 한 마디도 나누진 않지만 같은 목적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대감이 생긴다. 사람의 마음은 늘 그렇듯이 나만 힘들다고 느낄 때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힘들구나라고 느낄 때 위로를 받기 마련이다. 이곳은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이다.
항생제와 진통제 주사를 맞은 후 초음파실 앞 대기실에서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름이 불리자 나는 남편에게 제대로 된 응원도 받지 못하고 초음파실의 자동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려고 남편을 데리고 온 건 아닌데 말이다. 환복 후 차갑고 딱딱한 촬영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벌려 세웠다. 조영제가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에 엉덩이 밑에는 크고 넓은 기저귀가 깔려 있었다.
긴장돼요.
실제로 정말 긴장한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조영제가 들어갈 때는 약간 불편할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어
몸에 최대한 힘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몇 초 후 다시 선생님이 말했다.
조영제 들어갑니다.
조금 불편할 수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 정말 조금 불편한 감이 밀려왔다. 소리를 지를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지만 묵직하고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고 나는 작게 '아'를 한 서너 번 외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었다.
조영제가 들어가는 순간은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았고 총 소요시간은 준비 시간까지 포함해서 15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끝났다는 말과 함께 엉덩이에 깔려있던 큰 기저귀를 감싸고 내려오라는데 생각보다 계단이 아래에 있어서 발을 뻗어 엉거주춤하면서 재빨리 감싸고 나왔다. 오히려 이 순간이 심적으로 더 고통스러웠다. 환복을 하고 다시 자동문으로 나와 남편의 얼굴을 보는데 나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웃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최대한 차분한 표정을 장착했다.
결과는 당일에 바로 알 수 있었고 나팔관은 양쪽 모두 정상이었다. 만약 한쪽이라도 막혀 있었다면 후기에서 본 것처럼 조금 더 큰 고통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영술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시험관의 한 관문을 통과한 것 같아 후련했고 앞으로 남은 시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까지 생겼다. 심지어 내가 조영술이 무서워서 시험관을 하기 싫어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는 친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많이 아플 거라는 친구의 말. 그래도 잔뜩 겁먹고 있는 내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지 왜 겁만 준 것일까라는 생각에 괜한 미움이 올라왔다. 그런데 친구는 정말 많이 아팠겠지, 고통은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개인차가 있으니깐. 친구는 내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물어봤으니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했던 것뿐이고 나 스스로 겁을 먹었을 뿐인데 왜 상대방을 탓했던 것일까라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 자신의 진정을 위해 시키지도 않은 타인의 말을 수집해서 스스로 두려움에 떨다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아서 친구에게 미움의 감정까지 들다니. 모든 것은 내가 만들고 내가 결정하고 내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이제 막 시험관을 시작하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어.
살짝 불편한 정도였어.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주 잠깐이니 금방 끝날 거야.
나는 타인의 말을 듣고 두려움을 만들어냈지만 그렇기에 나는 타인에게 용기가 되어주고 싶었다. 비록 그 결과물이 다를지라도. 최근 들어 조영술을 받은 날처럼 홀가분한 날이 또 있었을까. 그날을 생각하면 피식 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