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기 Aug 30. 2023

그대의 꿀렁한 배에 건배를

시험관 자가주사를 시작하다


 자가주사를 시작한 날,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 날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고 짧은 진료를 본 후 보냉 백에 주사를 한가득 넣어왔다. 병원에서 준 보냉 백은 나중에라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무난한 디자인이었지만 하단에 꼼꼼하게 박음질 처리된 병원의 선명한 로고는 제거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건 아주 나중의 일이 될 것이다.


 세상에, 내 배에 내가 주사를 놓아야 한다니. 조영술 다음으로 손 떨리는 일이었다. 남편은 지방 출장의 일정으로 저녁에 올 예정이었고 나는 그날 아침 늘 비몽사몽 했던 날과 달리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냉장 보관해 둔 주사기 2대를 꺼낸 후 병원에서 받은 안내문을 훑고 영상까지 찾아본 후 퍼고베리스라는 놈을 먼저 집었다.


 

주삿바늘은 생각보다 얇고 짧았다. 주사침도 넉넉하게 있었기에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먼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마치 명상하듯 몸과 마음을 긴장에서 해방시켜 본다. 한 손으로 배꼽 아래에서 사선 방향으로 배를 움켜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사기를 잡았는데 그 손에서 식은땀이 느껴졌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주사기를 배에 푹 찌른 후 천천히 피스톤을 누른다.


 나의 뱃살을 찌르고 들어간 바늘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바늘을 통해 들어가는 액체는 생각보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물론 기분이 좋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병원에서 사무를 보듯 푹푹 찔러주는 주사보다 통증이 덜했다. 그건 내가 굉장히 시간 텀을 많이 주고 공들여서 주사를 놨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 이제 두 번째 주사도 도전해 보자!


 내가 맞은 주사는 퍼고베리스와 벰폴라이다. 찾아보니 사람마다 모두 같은 처방을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령에 난저이기 때문에 저자극으로 처방되었는지 수많은 블로그에서 본 약의 개수나 용량보다 다소 낮은 편에 속했다. 그만큼 몸에 부담을 덜 준다는 것이니깐 이럴 땐 또 장점이 있기도 하네 싶은 마음이었다. 두 번째 주사에서는 긴장을 하지 않았던 탓일까 주삿바늘이 뱃살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다소 묵직했다.


 

 주사 2대를 맞았을 뿐인데, 식탁 위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기상하여 수고한 나를 위해, 주사 후 왠지 모를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이렇게 남편을 기다려본 적이 있었을까. 이튿날부터는 남편과 동행하기로 했다. 자가주사보다 남이 놓는 주사가 마음이 편안하다. 남편에게 출근 전 주사를 놓고 갈 것을 요청했다. 비록 시험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선에서 남편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다음 날 출근 준비를 마친 남편과 주사 준비를 마친 내가 소파에서 만났다. 남편도 처음이라 다소 긴장한 듯한 눈빛이었으나 남편은 나의 카운트다운에 맞춰서 잘 수행해 주었다. 어떤 날은 배에 피가 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작은 멍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주사를 맞은 이후부터 처음 느끼는 피곤함에 휩싸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범인은 명백했다. 밤 12시가 되면 오히려 살아날 정도로 야행성이었던 내가 저녁 7~8시 정도만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졸음이 찾아왔다. 일도, 밥도, 청소도 모든 것이 귀찮았던 7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이 있었다. 3일 차 정도였을까. 주사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남편의 본색이 나왔다.


"갑니다잉"

주사를 놓기 전 남편이 말했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남편의 구호와 함께 주삿바늘이 내 뱃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위하여!"

아뿔싸. 나도 모르게 함께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분명 웃고 있었다.





 

첫날, 손이 벌벌 떨리고 호흡을 마구 뱉어야지만 진정이 되었던 긴장의 시간은 남편과 함께 하면서 마치 하나의 에피소드로 변모해 있었다. 시험관을 하면서도 분명 행복한 순간들이 존재했다. 상황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주사를 놓으면서 내가 이런 것까지 맞아야 하나, 내가 이렇게까지 피곤해야 하나 등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마음에만 휩싸여 있었다면 주사를 맞는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사가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네.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래 모든 면이 좋을 수는 없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자가주사의 일정을 마친 후 면역이 떨어졌는지 피부에 발진이 올라와 한동안 가려움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여름날 감기에 걸려 지긋지긋한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예고치 않게 불쑥 다음 생리가 찾아와 당황스럽기도 했다. 호르몬제가 변화시킨 내 몸이 신기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으며 시험관을 오래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훗날 이 시간들을 곱씹어 보았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나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기억 속 그 시간의 색은 왠지 햇살을 닮은 따스한 주황색 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임으로 인해 진짜 부부가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