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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Apr 14. 2023

8월의 역사

구남친이 현남편이 되기까지


 결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를 만난 지 정확하게 일 년이 되는 날 나는 결혼식장에서 위장이 뒤틀리는 실크드레스를 입고 직접 준비한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면서 can’t take my eyes off of you를 열창하고 있었다.   




 소개팅은 거절하지 않았다. 결혼은 물음표였지만 연애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나에게 소개팅의 목적은 연애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친한 친구들은 이미 기본 한번 이상은 소개팅을 시켜주었고 직장동료들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심지어 동료의 가족도 소개받은 경험이 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더 이상 소개팅을 해 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자 마당발인 아빠는 ‘선’이라는 변경된 타이틀로 열심히 친구와 지인들을 동원하셨다. 심지어 아빠는 부산, 나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삼십 대 후반이 되자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소개팅은 더 이상 설렘을 동반하지 않았으며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심지어 소개팅 전 약속을 잡기도 했다. 


 기대보다는 이번에는 또 어떠한 성향의 사람이 나올까라는 궁금증이 더 큰 상태로 약속 장소에 향하곤 했는데 간혹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을 정도의 낯설고 불편한 사람과 마주하기도 했었다. 첫 만남에서 결혼 후 시간이 지나 사랑이 식었을 때 서로의 연애를 인정해주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었고 반말을 하면 더욱 친근한 감정이 든다며 나의 동의 없이 말을 놓는 사람도 있었다. 


 이십 대의 소개팅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자 난 이제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건가라는 실망감이 들면서 며칠을 우울해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과 나는 밥 한번 먹었을 뿐인데 당시에는 그 사람들의 행동에 나를 투영시켜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 후 나에 대한 연민을 키웠던 것 같다. 그렇게 삼십 대 후반의 소개팅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었고 TV에 나오는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사연만 쌓여갔다.     

 

 시간은 언제나 부정할 수 없는 해결책이었다. 몇 개월 후 나는 스스로를 가둔 연민의 동굴에서 벗어나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단지 7월의 한 여름 지독한 장염에 걸린 일 말고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삶이었다. 장염에 걸리기 전 오랜만에 소개팅이 들어왔지만 장염은 쉽사리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을 빨리 해치워야 속이 풀리는 성격이 급한 동물이었다. 밥만 먹지 않으면 나의 위장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가볍게 차 한 잔만 마시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밥을 먹기 애매한 오후 3시에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8월의 그날은 비가 내렸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사실과 전혀 무관한 위로의 말이 있다. 나의 경험상으로는 연속으로 똥차가 오기도 했으니깐 말이다. 물론 반대로 상대방에게는 내가 똥차였을 가능성도 있다. 수많은 똥차를 타본 후 똥차의 경지에 올랐는지 이제는 어떠한 똥차를 만나더라도 내 몸에 똥을 묻히지 않은 자신이 생겼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져진 나는 장염에 걸렸어도 비가 쏟아져도 사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있었다.      


 나는 내 관심분야에서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었다. 외모가 어떻든 그들의 뇌에서 거쳐 입으로 흘러나온 기름진 말들은 나의 심장박동수를 증가시켰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거나 해내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이었고 나는 그들 앞에서 항상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 안의 사랑의 형태는 긁히고 갈아져서 뭉툭하게 마모되었고 이상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으며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나를 원하지 않고 나를 원하는 사람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내 안의 진리가 되었다. 과거의 나는 똑똑한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물론 매력을 느끼기는 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타인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그 사람의 옆에 있음으로써 목마름을 채웠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원하는 것일까, 연애만 원하는 것일까, 단지 외로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이가 들어 혼자 있게 됨이 두려운 것이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었을까. 이별 후에는 늘 취미가 늘었고 예술이 더 좋아졌으며 심지어 이전보다 본업에 집중하게 되는 긍정적이고 놀라운 능력이 부여되었다. 그래서 이별은 내게 꼭 나쁘지 만은 않았다. 오히려 연애할 때 취미생활을 줄여야만 했고 일에 소홀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나는 왜 자꾸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한 후에야 그 이유를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늘 일을 벌이는 나는 안정감을 꿈꾸면서도 결혼은 내 꿈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애의 달콤함만 취하고 싶었고 달콤함을 얻기 위해서 치러야 할 수많은 씁쓸함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날은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보고 싶었던 전시를 본 후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남자는 사진 속의 얼굴과는 달랐고 과거에 존재했던 나의 이상형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기대가 없었던 탓일까. 차를 한 모금 들이마실수록, 찻잔의 바닥이 보일수록 우리가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음을 확신했다. 밥을 먹으러 가자는 제안에 차만 마시고 오자는 나의 ‘오후 3시’ 작전은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첫 만남에 그는 닭백숙 집에서 두 손으로 열심히 닭을 뜯고 나는 깨작거리며 죽을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는 그다음 해인 8월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선물로 나는 달콤함과 씁쓸함을 함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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