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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진 May 16. 2020

웃어, 통증에

과거에게 커밍아웃 하기

나는 요즘 웃을 수가 없다. 웃으면 횡격막이 간을 물리적으로 자극하고, 이게 계속되면 한 3일간 잠을 잘 수 없는 심한 통증으로 변한다.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사약을 거부하는 장희빈처럼 수시로 아랫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는다. 입원해 있을 때였다. 부부싸움을 한 모어(그는 드랙퀸이다)는 보호자 침상에 앉아 그 이야기를 뮤지컬처럼 전해주었다. 남편의 택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재현에 입을 틀어막고 웃었는데, 다음날 나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염증 수치 상승과 발열까지 겹치면서 나는 총상 환자나 복용하는 아주 센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했다. 혀 밑에서 녹아가는 약 때문에 나는 비몽사몽이었는데, 고마워. 사랑해. 이 말을 수십번 반복했다고 철희가 말해줬다. 어쨌든 웃으면 복이 오고 건강해진다는데, 웃음조차 거절하는 간새끼가 진짜 밉다. 난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라고요~. 누군가의 유머를 외면하고 웃음이 연해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은 고문이다.


통증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나는 거의 바닥을 구를 지경으로 웃었다. 한 녀석의 결혼식 때문에 거의 15년 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락밴드를 함께했던 남자애들은 역시나 그대로였다. 순진하고 멍청하고 귀엽고 착한 중딩들. 15년의 세월 동안 나는, 이들이 그대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채팅방이며 모임 자리를 피해왔다. 학창 시절과 동네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굳이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단절된 과거에 현재를 덧씌우는 일은 일단 번거롭고, 그 이후를 상상하기 싫었다.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 나가면 결국은 멀어지니까, 그럼 그걸로 된 거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과거로부터 도망친 사람에게 자기합리화는 이렇게나 쉽다.


나는 밴드에서 키보드를 쳤다.


하지만 지난 주말은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커밍아웃이라는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에 잡아먹혔다. 이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자리를 맞설 용기가 여전히 부족해 철희에게 말했다. “철희야, 결혼식에서 보호자가 되어줘. 그리고 애인이 되어줘.” 철희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체온조절이 되지 않아 차려입은 옷은 그새 땀에 젖어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결혼식장, 친구들은 원탁에 앉아 빵을 뜯고 있었다. 우리는 세월이 무색하게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나는 의자에 앉기도 전, 내가 게이인지 모르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 남자친구야. 그 말은 엄청 쉬웠기에, 켜켜이 쌓인 자기방어막(?)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나는 게이야’라고 말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사랑하는 이의 도움으로 15년짜리 숙제를 해결했다. 그러고 나니 웃음이 끊임없이 나왔던 것이다. 몰라 시바 웃어. 장희빈은 퇴장하시오. 지금 나는 행복행~.


그리고 나는 3일 동안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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