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김요섭, 그린비, 2024)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김요섭, 그린비, 2024)
미학이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멋지다'. '아름답다'는 단어는 나의 감정 중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느낌이며, 그 느낌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세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이성적, 감성적 사고의 틀 안에서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름답다는, 의미 있다는 생각과 느낌은 뇌 속의 뉴런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나의 호르몬분비를 촉진시키는 생물학적 변화뿐 아니라 분명 다른 변화를 가져올 텐데, 이제껏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잘 인지하고 있었나 싶다.
늘 새로운 음식을 찾는 아들의 얘기에 '너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조언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호기심은 왜 작동하지 못하는가를 질문해야 했다. 스스로 규정짓고 세워 놓았던 벽들을 허무는 연습이 없이는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학이라는 세계가 철학이라는 세계와 맞닿아있고,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는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작가의 다양한 삶 위 궤적에서 나오는 조곤조곤한 내레이션 같은 글들이 한 문장 한 문장 따뜻하다.
그럴듯한 학문으로 보아온 '미학'에 대해 저자는 처절한 삶의 질문들에 대한 고민과 모험이 가득하니 한 번 '들어와 봐' 다만 긴장하지 말고 '즐기라'라고 얘기하고 있다.
삶의 당면한 문제의 표면과 바닥을 살피며 나아가는 방법.
담담하게, 찬란하게, 흐뭇하게, 그리고 가볍게.
투수가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다.
33_불꽃놀이는 예술의 완전한 형태다. 완성의 순간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테어도어 W. 아도르노)
이 문장에서 예술이라는 단어에 사랑, 정의, 아름다움, 진리라는 말을 바꿔 넣어서 이해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을 거예요. 완성의 순간 멀어져 가고, 다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 진리의 존재 형식이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만 계속해서 진리와 사항일 수 있고, 낯선 아름다움으로 새롭게 남을 수 있습니다.
53_영화 '타르'에서 리디아(지휘자 역)가 아름다운 음악적 절대의 지점에 이르기 위해 오케스트라 단원을 지배하는 것이 중요하듯이요. 진정한 아름다움을 향한, '지배 없는 지배'이자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건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성'이 요즘 시대에 요구되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4_(남한산성, 김훈)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이를 거두며, 겨울에는 배를 곯지 않는' 어쩌면 소박한 듯 보이는 서날쇠의 바람은 지배층의 명분과 이념보다 정의롭습니다. 서날쇠의 단단함은 그가 죽음의 장소에서도 죽음 바깥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이는 희망의 부재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서늘한 열정입니다.
132_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지 않은 것이다.(루쉰)
그럼 루쉰의 말을 톺아보도록 하죠. 우선 '있는 것'이라고 한 면 주체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되죠. 희망은 현재 도착해 있는 확실성은 아니기에 불확실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주체가 교만하게 그것이 있다고 단정하는 어감입니다. 그럴 능력도 충분하지 않으면서요.
그런데 '없지 않음'은 전혀 다르죠. 우선 자신에게 어떤 행복이 도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서늘함을 인정해요. 그와 동시에 차가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희망을 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타자성 안의 주체는 유한한 인간의 조건을 지닌 채 희망하는 것이기에,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없습니다. 그저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구체성과 실제성 안에 살아 있는 것이 되죠. 물론 그렇다고 인간의 조건 안에서 희망하라는 말이 그것에 갇히라는 표현은 결코 아니에요. 오히려 '유한성을 자각하는 겸손함을 잃지 말라'라는 의미와 같죠. 앞서 메멘토 모리를 외쳤던 노예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