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적인 태도는 공평이 아니라 이기주의로 귀결된다
친구에게 동창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번 추석 연휴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지금까지 친정과 연락 끊고 잠적해 지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동창은 세자매로 동창 동생인 막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다. 그 동생이 동창에게 요청했다. 이번 추석에 언니가 음식을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일부터 설겆이까지 다 해달라고. 친정 엄마가 음식 솜씨 없고 살림에도 영 무관심해 엄마에게 기대할 수는 없으니 언니에게 해 달라고 한 것이다.
동생이 그런 요청을 한 건 자기 시댁과 견주어 빠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댁에서는 엄니가 음식을 엄청 잘 차려주는데, 자신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차린 밥상 먹기만 하고 설겆이도 하지 않으므로 친정도 신랑 보기에 그 못지 않게 음식을 잘 차려야 하고 자신 역시 설겆이 등 음식하는 걸 거둘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언니는 오래 전 이혼한 이후로 친정 부모에게 도움도 제일 많이 받고 했으니, 언니가 자기 시엄니처럼 고생스러운 일을 하는 게 합당하는 근거를 덧붙였다.
그에 대해 친정 엄마는 물론 아빠까지도 동생을 나무라기는커녕 한 마디도 말을 섞지 않고 모른 채 하기에 동창이 잠적해 버린 것이다.
친구와 나는 혀를 내둘렀다. 어쩌면 부모부터 자식까지 가족 하나 하나가 그토록 이기적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제일 심한 건 동생인 것 같았다. 시댁과 친정을 비교하면서 '똑같이' 하려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언니에게 그런 부탁을 하면서 친정에서 받은 게 제일 많으니 언니가 고생스러운 일 하라는 말은 도와주고 싶다가도 정나미가 똑 떨어지게 만든다. 그게 사실이라도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누가 그러마할까?
그런데 한편으로 동생은 일관성있다. 자기도 직장생활하므로 남편과 똑같이 주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시댁에서 자신들에게 해주는 만큼 친정에서도 똑같이 해줘야 남편에게 면이 선다는 생각까지 모든 관계와 행위를 계산적으로만 재고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보다 친정에서 받은 게 많아 보이는 언니가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게 합당하다고 여기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생의 그런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결혼 초에 그랬기 때문이다. 배포가 없어 동생처럼 정말로 시댁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남편과 똑같이 직장생활하는데 나만 주방에서 일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시댁과 친정을 견주면서 받는 만큼 해야 한다고 따지고 계산했다.
다행히 나는 남편의 투병으로 시댁에 큰 불만을 품었던 시기를 겪으면서 그같은 태도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해로운 것인지 깨달았다. 받은 만큼 주겠다는 태도는 자기 역량을 그만큼 한계 짓고 발전을 가로 막는다. 자연히 자기 그릇을 키우지 못하는 만큼 받을 수 있는 것들도 적어진다.
이십 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해 보니, 꼭 나 같은 고초를 겪지 않더라도 세월로 그런 모남이 깎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조건이 있다.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전담하고 아이도 키우는 것이다. 나처럼 아이가 없어도 되는데, 그럼 남편이 집에서 밥을 자주 먹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부엌일에 익숙해져서 엄니 돕는 걸 덜 고생스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과 내 처지가 달라져야 '똑같이'하려는 계산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져서 결국 상황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요즘 여성의 길어진 직장생활 변화를 고려하면, 그같은 물리적 환경 변화로 인한 내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물론, 직장을 그만둠으로써 전업주부가 되는 쪽이 반드시 여성일 필요는 없다. 동창 동생 또는 과거 나처럼 계산적인 태도로 자기 자신을 얽매는 사람이 주로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고려일 뿐이다. 요즘 젊은 남자 역시 과거 남자에 비해 계산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요즘 젊은 여자 역시 과거 여자에 비해 더 계산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전히 남자보다는 여자 쪽에 포커스가 있다는 생각이다. 또, 남자는 대체로 결국 여자가 하라는 대로 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체로 유약한 것 같은) 요즘 젊은 남자는 더 그럴 것이고.
계산적인 태도는 그 나름으로는 공평하고 합당한 결과를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이기주의와 반목으로 귀결된다. 동창네 집처럼. 그런 부부가 만약 아이를 키운다면, 어떨까? 어떤 현상들이 불거질 지는 이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소위 '내 새끼 지상주의'인 사람이 주변 사람과 마찰 없이 화목하게 지내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자기 태도가 계산적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세상이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데 있을 것이다.
한편, '봉사'처럼 생판 모르는 사람(그래서 자기가 받은 것 하나 없으면서)도 도와주고,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시)부모에게 또 배우자에게만큼은 자기가 좀 더 해주는 걸 그토록 엄청난 손해처럼 느끼고 꺼리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런 봉사가 진정한 봉사일 리 없는 건 당연하다. 당장은 수혜자가 도움 받는 것 같지만, 결국엔 수혜자에게도, 봉사자에게도 해로운 결과로 이어진다. 많은 현자가 봉사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고 당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