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작가 Nov 30. 2020

소집일에 쓰러진 그녀의 속사정

기막힌 스타트

하얀 천장. 거슬거슬한 초록색 모포. 차가운 공기. 

눈 떠보니 병실 비슷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척을 느꼈는지, 타이밍이 기가 막혔는지 마침 낯선 사람이 병실로 들어왔다. 군복을 입은 그 사람은 나에게 이제 좀 괜찮냐고 묻고는, 가입교식은 끝났고 오늘은 여기서 잘 거라고 했다. 

“아빠는요?” 

내가 묻자, 그 사람은 내 팔에 꽂힌 링거줄을 살피며 건조하게 답했다.

“가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생도대에서 여생도가 와서 같이 있어줄 겁니다.”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분명 나는 가입교식을 하던 중이었다. 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갑자기 식은땀이 쫙 났다. 눈앞이 시커메져서 질끈 감았다 떴다. 소대장이라는 사람들이 대열로 들어와 훈련 장소로 인솔할 예정이라고 했다. 자꾸 시야가 흐려졌다. 오와 열을 맞춰서 차렷 자세를 한 채로 겨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누군가가 나를 봤는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무슨 일이지?’라고 했는지, ‘무슨 일인가요?’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있는 힘을 짜 내어 겨우 입만 옴짝 대며 “어지러워요.”라고만 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기억을 더듬느라 무슨 말을 더 물어야 할지 모르는 사이 끼이익 탁, 병실 문이 닫혔다. 군인인지 의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나간 회색 철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병실을 둘러 보았다. 겨울의 찬 공기가 새어 나오는 것 같은 하얀 벽. 파란색 줄무늬 베개와 초록색 모포가 가지런히 개켜 올려져 있는 침상이 여섯 개. 그중 하나에 내가 누워있었다. 하아. 이마에 팔을 얹고 한숨을 쉬었다. 분명 사관학교 입학 전 훈련을 위해 가입교식에 참가했는데 지금 혼자 병실에 누워 있다니. 게다가 아빠는 쓰러진 나를 집에 데려가는 대신 사관학교 의무대에 놔두고 가셨다니. 헛웃음이 났다. 

‘참 아빠답네.’


가입교에 한 달 전부터 가족들, 친구들과 헤어짐의 의식을 치르는 중이었다. 사관학교 입학 전에 5주간 합숙 훈련이라니, 뭔가 군 입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사실은 군 입대가 맞는데 당시에는 가입교가 사관학교 가기 전 오리엔테이션쯤인 줄 알았다는 것은 안 비밀.) 가입교식 일주일쯤 전에는 아빠랑 바다낚시를 다녀왔었다. 도시락을 사서 갔는데 상했었는지 다음날부터 설사를 했다. 그리 심한 정도가 아니라서 특별히 약을 챙겨 먹지 않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가입교식 전날부터 열이 나고 아파서 심하게 앓아누웠다.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도 못했고 기운 없어서 제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었다. 아빠는 걱정이 돼서 밤새 내 방을 들락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아빠…. 나 내일 못 갈 것 같아….”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지키다가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날 새벽, 아빠는 나를 안고 차 뒷좌석에 눕혀 사관학교가 있는 진해로 출발했다. 나는 내내 뒷좌석에서 끙끙 앓았고, 진해에 도착하자마자 한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안 넘어가는 점심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결국 가입교식에 참가했다. 그리곤 쓰러졌고, 눈떠보니 병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급히 온도를 올린 라디에이터가 겨우 공기를 데울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여자 사람 둘이 들어왔다. 생도라고 했다. 아픈 여자 혼자 의무대에서 자면 불편하거나 무서울까 봐 차출되었다고도 했다.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을 ‘의무대’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 보라길래 나름 살갑게 ‘언니’, ‘언니’하며 가입교 훈련과 생도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워낙 아는 게 없이 들어온 가입교라 물어볼 것도 별로 없어서 대화는 금방 끊겼다. 하긴, 사전조사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여생도’라는 그 사람들을 ‘언니’라고 부르진 않았겠지. 가입교가 끝나고 정식으로 입교하고 나면 가장 무시무시한 한 기수 위 ‘선배님’들이었으니까.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그 ‘언니’들은 가고 없었다. 대신 ‘소대장’이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모자 탓에 코끝과 입술만 겨우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심하게 뻣뻣해보이는 자세 때문인지 몰라도 어쩐지 그 앞에 서니 위축되었다. 

의무관이라고 소개한 장교가 간단한 진찰과 문진을 한 후 소대장에게 데려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따라와.” 

엉거주춤 어색하게 일어서는 나를 두고 소대장은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괜찮냐거나 왜 쓰러진거냐거나 하는 질문은 없었다. 동기들은 어제 집으로 보낼 짐을 정리했고 훈련기간 동안 쓸 보급품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가면 해야 할 일들과 앞으로 진행될 일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나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1월의 아침, 날은 따듯했고 햇살은 좋았다. 반 보 정도 앞서 걷는 소대장의 잘 닦은 군화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네모지게 다림질 된 소대장의 군복을 훑다가 곁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사관학교구나. 내가 진짜 가입교 훈련을 받는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사람, 공간, 심지어 공기까지 낯선 곳에 나 혼자 남았다는 것이. 이제 정말 나 혼자 해내야 했다. 사전조사 좀 하고 올 걸, 생각했지만 너무 늦은 후회였다. 소대장의 너른 보폭을 잰걸음으로 쫓으며 낮은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아빠는…..’


아빠는 몸도 성치 않은 나를 의무대에 보내 놓고 집에 어떤 마음으로 돌아갔을까? 아파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나를 굳이 링거까지 맞춰서 가입교식에 들여보내야 했을 만큼 아빠에게는 사관학교 입학이 중요한 것이었을까? 나보다도 더?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때의 이 질문들이 십 년도 더 넘는 시간 동안 내 마음의 응어리가 될 줄은.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치게 되는 시작점일 줄은. 그리고 이 날이 ‘'존버’는 나의 강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 x 나게 버티고 버티는 날들의 시작이었다는 것도.

작가의 이전글 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