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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l 20. 2021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지만,

2번의 휴학 끝에 복학을 했다. 전역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입학 동기들은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나는 이제 연구 주제에 맞는 실험실을 찾아야 했다. 곧 서른이었고 하루라도 빨리 무엇이든 결정짓고 이뤄내고 싶었다.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이 길이 진짜 내가 원했던 길이라는 것을, 이 일이야말로 군인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어서 증명해내고 싶었다.


여러 주제의 실험실이 있었지만, 주저 없이 바이러스 연구 실험실을 선택했다. 바이러스학은 사관학교에서 생화학 무기에 대해 배울 때부터 관심 있었던 분야였다. 전역을 했으니 다른 분야에 눈을 돌려도 좋았겠지만, 어쩐지 그것 말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이었던 나의 과거가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희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질척한 미련이었을지도, ‘여군 출신’이라는 희소성을 계산한 치밀함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용기 내서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내가 이 공부를 하기 위해 전역했다는 사실을 들으시고는 적잖이 당황하시는 듯했다. 


“세상에, 전역까지 할 정도로 이 공부가 하고 싶었다는 거예요? 아니, 대체 왜? 군대에 있으면서 공부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너무 아깝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아까운’ 길을 마다하고 민간인이자 학생 신분이 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번뇌의 시간을 설명하기에는 몇 날 며칠이 부족할 터였다. 


“교수님, 저 정말 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전업인데 ’열심히’로는 안되고 잘해야지. 음… 내가 우리 실험실 학생들하고 먼저 얘기해보고 알려 줄게요. 다 같이 생활하는 거라 학생들 의견도 중요하거든요.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니 애들이 좀 불편해할 수도 있고.. 그럼 내가 오케이 해도 못 받는 거거든.”

“네!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부담되네. 전역까지 하고 오다니..”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못 들은 체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교수님이 보시기에도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다시 되짚어봤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밀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돌아갈 곳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데 이렇게나 응원해주는 이 하나 없고 곳곳에 가시밭길이라니, 숟가락 들기도 전부터 체한 듯 명치끝이 뻐근했다. 하긴, 나조차 남이 뱉은 한 마디에 마음이 휘청거리는데 누가 나의 길에 꽃가루를 뿌려 주겠나. 내가 단단해질 수밖에.


실험실에 발도 못 들여보고 거절당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일주일 정도 후 실험실 입성을 허락받았다. 걱정과는 달리 실험실 식구들은 따듯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었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실험했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이왕이면 잘 해내기 위해 애썼다. 모두 내 손에 달린 일이었다. 


아침에 정신없이 실험실 출근해서 스케줄대로 실험을 진행하고 논문을 찾아 읽고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실험실 공통 업무를 처리하고 틈틈이 수업 듣고.. 학부 전공과 달라서 따라가기 부족한 부분은 학부 수업을 병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공부도, 실험도 빼곡한 날들이었다. 시간마다 중간 결과를 체크해야 하는 실험을 할 때에는 밤을 새기도 했고, 주말에도 몇 번이나 실험실 출근도장을 찍어야 하기도 했다. 바빴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데이터가 쌓였고 실험실은 익숙해졌다. 


분명 즐겁고 신나는 날들이었다. 그토록 바라고 꿈꿨던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아침 출근길이면 문득문득 불안감에 휩싸였다.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라면 다 괜찮을까. 정말 나의 선택이 옳았을까.’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구운몽의 주인공처럼, 나는 아직 군대에 있는데 꿈으로 미리 전역 후의 삶을 살아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피곤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이런 평범한 하루가 그토록 내가 꿈꿨던 내일이 맞는지, 진짜 내가 잘 한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를 의심했다.


“언니, 지난번에 가르쳐 줬는데 까먹으면 어떡해요?”

“데이터가 왜 이래? 이래서 페이퍼에 넣겠어? 너 손이 나쁜 거 아니야?”


사소한 질책에도 나는 땅굴을 팠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럴수록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고, 더 큰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해질수록 모르는 것 하나, 실수 하나에도 주눅이 들었고 기분은 요동쳤다. 자신감이 떨어지다 못해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진짜 이런 삶을 원했던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이건 내 길이 아니라고 백기 들고 항복하고 싶었다. 오랜 꿈을 향한 설렘은 어느새 나만 뒤쳐지는 것 같고 내 선택이 괜한 고집이었던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처럼 또다시 지독한 자기 검열과 비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후회였을까. 조바심이었을까. 그저 즐기면 되었을 것을, 그저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큰 노력 없이도 잘하기까지 하는, 신기루 같은 행운을 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 걸 깨달을 수 있는 혜안이 내겐 없었고, 그저 끝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 뿐이었다. 


‘이런 내가 과연 무엇을 해내고 이룰 수 있을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던 나의 야심 찬 선택은 기대와 달리 행복과 불안 사이의 아슬아슬하고 불안정한 경계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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