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53쪽
“과학을 통해 의술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마련한 의사-과학자 집단은 다른 집단과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 우리는 그 모습에서 자신의 발견을 정연한 글로 발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제멜바이스를 떠올립니다.”(p.29-30)
“이론과 실험에 파묻혀 다른 것에는 전혀 무관심한 ‘미치광이 과학자’와 달리, 의사는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p.28)
“여러 번 우리는 거부당하고, 우리가 예전에 해준 조언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일에 쪼들리는 엄마나 남편들이 다른 조언자를 찾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이것 또한 게임의 일부입니다.”(p.75)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요? 그것이 바로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갇혀 있는지 알릴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 서로에게 중요한 가장 간단한 것도 말할 수 없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가장 소중한 것도 알리지 못하는, 바로 그 무능력이 우리의 삶을 장작더미 속에 숨은 고양이 새끼들처럼 구별할 수 없게 만듭니다.”(p.78)
“그(손택)는 에이즈에 씌워진 ‘역병’과 ‘타락’의 은유와 맞서 싸우려 노력한다.”
“은유가 잘 선택되었는지, 잘못 선택되었는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병의 잘못된 은유는 간혹 질병이라는 현실보다 더 크게 개인을 괴롭힐 수 있다.”(p.185)
“문제는 좋은 은유다.”(p.189)
“의사에게는 태어나고 있는 말을 그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집니다. 의사 앞에는 말이 생생한 모양과 색을 띠고 놓여 있습니다. 때묻지 않고 갓나온 그 말을 의사는 돌봐야 하는 책임을 집니다. 의사는 그 말이 얼마나 어렵게 태어나는지, 그리고 그 말이 결국 어떻게 사라지는지도 보게 됩니다. 그 자리에는 말하는 사람과 우리(의사)들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말의 부모입니다. 그보다 감동적인 것은 없습니다.”(p.78)
“하지만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공감이라는 것이 과연 인간의 감정, 정서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인간의 한 단면인가 하는 것이다. 감정이 한없이 메말라 있는 어떤 사람이 엄청난 공감 능력을 보이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공共감感이 한자의 뜻처럼 같이 느끼는 것이라면 글쎄, 이것은 소위 말하는 형용모순 아닐까? 감정을 억누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을까?”(p.170)
“그렇게 감정을 철저히 무시할 것을 요구받은 의료인이 공감에서만은 뛰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 오히려 끊임없는 엄숙함, “초연하라”는 명령이 등뒤에서 계속 울리는 한,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겪는지도 모른 채, 의료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을 지나쳐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p.172)
“그 불편함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요. 예컨대 시선의 윤리라고 하는 것을 상정할 수 있을까요.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어불성설이라면, 시선의 윤리라는 것은 무엇을 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볼것인가를 가름하는 일일 것입니다.”(p.168)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걸 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런 말은 지금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체가 될 것을, 심지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p.43)
“계속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의 터널 속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