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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11. 2021

그때 그 못난이 8화

앞이 아닌 옆에 앉고 싶었어

"뉴스, 뉴스!!"

반장이 교실문을 황급하게 열며 소리쳤다.

"야, 오늘 짝꿍 바꾼다."

"진짜?"

"응, 방금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얘기했어.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다들 비밀 지켜."


아침 조회 시간을 앞두고 교실에 퍼진 소문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모두를 바보로 만들었다. 도도한 척 머리를 계속 쓸어 넘기는 아이, 짝꿍 바뀌던 말던 관심 없다는 아이, 제비뽑기로 했으면 좋겠다는 아이까지 죄다 얼빠진 표정으로 나불거렸다.


"반장, 근데 짝꿍은 어떻게 정해?"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키 순으로 정하지 않을까?"

좌절 모드다. 가나다 순으로 해도 앞자리, 키순으로 해도 앞자리다. 차라리 성적순이길 바랬다. 그렇다면 뒷자리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자, 다들 뒤로 가서 서 있어."

아침 조회가 끝나고 선생님은 모두를 뒤로 나가게 했다. 그리론 반장과 미화부장을 불러 책상을 옮겼다.

"자, 봤지? 다들 나머지 책상도 이렇게 붙이도록 해."

'T' 모양으로 위쪽에 책상 2개를 붙이고 그 밑으로 책상 4개를 마주 보게 붙였다. 선생님의 지휘 아래 같은 모양으로 교실 위에 이리저리 붙이다 보니 분단 개념은 사라졌다. 선생님은 앞쪽부터 책상 단위를 1조, 2조 순으로 정했다.


"짝꿍과 조원을 어떤 식으로 정했으면 좋겠니?"
선생님은 모두에게 물었지만 다들 서로를 쳐다볼 뿐 답은 없었다.

"제비뽑기로 해요."

아라가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그럴까?"

선생님은 다들 답이 없자 아라의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윤희와 지연이는 여자끼리 앉고 싶다 반대 의견을 냈다. 한, 두 명이 의견을 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선생님!!! 저 미소랑 앉고 싶어요. 미소랑 앉게 해주시면 사고 안칠게요."

병찬이가 목소리 터질 듯 외쳤다. 병찬이가 미소를 좋아한다는 건 어지간한 아이들 모두 알고 있다. 3학년 땐가? 4학년 때부터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고 다녔다. 물론 미소는 병찬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건 선생님이 생각해볼게."

병찬이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런 병찬이의 모습을 보면서 반 아이들은 내심 미소와 병찬이가 짝이 되길 바랬다. 병찬이는 평소에 장난이 심하기도 하고 성질도 못돼서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당연히 매일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 병찬이를 미소가 담당해주면 모두가 행복할 거란 기대로 둘을 응원했다.


선생님은 반장과 부반장을 불러 회의를 했다. 짝꿍 정하기 회의랄까?

"미소가 먼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그리고 병찬이는 미소 옆에 앉고."

미소가 병찬이와 앉는 걸 수락한 모양이다. 미소는 앞쪽 자리에 가서 앉았고 병찬이는 미소 뒤를 따라 옆에 앉았다.

"자,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친한 사람끼리 모여 앉아도 되고 가위, 바위, 보를 해도 돼. 늦게 앉는 사람은 자동으로 빈자리에 앉는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이내 여자아이들이 주도해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친한 여자아이들끼리 하나의 조를 점령하고 앉자 남자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평소에 여자 같다고 놀림받고 여자아이들과 친한 남자아이들 몇 명이 후다닥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나머지 남자아이들은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13세의 남자아이는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하는 바보였으니 말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던 자리는 3조, 창가 쪽 자리다. 창가가 좋아서 그 자리를 탐냈다. 두 번째 핑계는 그곳에 못난이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어물쩡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은 은근히 내게 눈치를 줬다. 어서 가서 앉으라는 눈치다.


"난 저기 가서 앉아야지. 너도 갈래?"

진호가 3조 쪽을 보며 발걸음을 뗐다. 내게 함께 가자는 뉘앙스를 던졌는데 마지못해 가는 모양새를 취하며 함께 발을 디뎠다.


"못생긴 것들이랑 앉으니 깝깝하다."

진호는 여자 반장 옆에 앉으며 깐죽거렸다. 내가 뒤에서 앉을자리를 눈치 보던 찰나, 준호가 못난이 옆에 턱 하니 앉았다. 다급한 마음에 나도 얼른 3조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내가 앉은자리는 정확하게 못난이 정면, 얼굴을 마주 보는 자리다. 그때는 짝꿍, 옆자리에 앉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지 마주 보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 나이대 우리 정서가 그랬던 거 같다.


"너네 또 싸우겠네?"

"그럴 리가."

진호는 나와 성혜를 보며 깐족거렸다. 성혜는 내 옆자리 앉은 짝꿍, 이상하게 만날 때마다 으르렁 거리던 사이였다.

"시비 걸려고 앉은 거 아니야?"

반장과 진호는 깔깔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그 농담에 내 앞에 있던 못난이도 활짝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마 그때 이미 반장과 진호는 내 마음을 먼저 알아채고 있던 거 같다.


"지금 너희들이 정한 조는 여름 방학 때까지 계속 유지될 거야. 그러니까 다들 사이좋게 보내. 청소도 같이하고 방학 때 학교 청소도 조원들끼리 해야 되니까."

선생님 말에 조금 섭섭했다. 다음번엔 못난이 옆에 앉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여름방학 때까지 성혜랑 앉아야 한다니 말이다.


나는 그날 일기를 쓰지 않았다. 비밀 친구에게 내 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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