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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18. 2021

그때 그 못난이 13화

선생님이 멍청해요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굴비 엮듯 주렁주렁 창문에 걸어줬다. 교탁에는 뚝방에서 꺾어온 듯한 잡스러운 꽃바구니가 놓였다. 교실 책상은 전부 원형으로 두르고 책상마다 음료수와 간식을 깔아놨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선생님의 생일날, 반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며 조촐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교실을 꾸미고 음료수와 간식 준비까지 모두 학생들의 용돈으로 마련됐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정성에 감동받았는지 슬쩍 눈물을 훔친다.


"야, 성공이다."

반장이 이리저리 눈짓을 보내며 속삭였다. 의외로 초딩은 영악하다.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수고스러움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수업을 재끼겠단 속셈이 깔려있다.


선생님이 감동에 젖어 있을 때 잽싸게 카세트를 끼어넣고 음악을 크게 튼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며 댄스파티로 이어진다. 여우 같은 여자아이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한가운데로 끌어온다. 선생님은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치면서 오징어 구워지는 춤을 춘다. 이내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그럼 우리는 계속 흥을 돋우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재낀다. 이 모든 것은 초짜 담임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다른 선생님들 같으면 금세 분위기를 추스르고 교탁을 내리치며 "이제 수업 시작하자."를 외칠 테니까.


신나게 춤판을 벌리다가 못난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저희 피구 해요! 선생님 껴서 남자 대 여자로 해요."

선생님이 대답할 틈도 없이 여기저기서 동조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그래요. 선생님 오늘 생신이신데 같이해요. 남자애들 좀 날려줘요."

"야, 선생님 껴도 너넨 우리 못 이겨."

유치 찬란한 편 가르기와 남녀 대립, 분위기에 휩쓸린 선생님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이미 병찬이와 진우는 교실문을 열었다.

"그래, 그래 피구 하자. 그리고 선생님 아직 생신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닌데..."


"퍽!"

내가 던진 공이 못난이의 배를 강타했다.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며 못난이가 밖으로 나갔다.

"승혁아, 여자애한테 그렇게 세게 던지면 어떡하니? 살살해야지."

선생님은 못난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나를 타박했다.

"우리나라는 평등한 나라입니다!!"

시크한 척, 쿨한 척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퍽!"

내가 던진 공에 또 못난이가 맞았다. 이번엔 맞히려고 맞힌 게 아니었다. 재수가 없었을 뿐, 하필이면 공도 얼굴로 날아갔다. 안 그래도 뻘건 얼굴이 더 씨벌게졌다.

"미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못난이 얼굴을 들여다보니 정말 못났다. 공에 맞아서 두 눈은 질끈 감겨있었고 눈물이 쪼르르 흘렀다.

"울어?"

"안 울어! 코 맞아서 그래!"

못난이가 승질이란 승질을 다 부리면서 눈물을 닦는데 여자아이들이 연합해 나를 공격했다. 남자아이들도 질세라 내 편을 들며 치졸한 말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선생님이 나서며 피구는 끝이 났다.


교실로 돌아오고 선생님은 마지막 짝꿍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창밖은 눈이 내리는 날씨, 이번에 짝꿍이 바뀌면 졸업할 때까지 짝꿍이 된다. 이 학교에서 함께하는 마지막 짝꿍.


"짝꿍은 선생님이 마음대로 정할 거야."

"아, 그런 게 어딨어요."

"선생님이 너희 일기장 매일 검사하면서 누가 서로 친한지, 누구랑 누구랑 짝꿍이 돼야 할지 잘 아니까 선생님이 정하는 거야. 미소는 1 분단 1번째 가서 앉아."

선생님은 마음대로 짝꿍을 정하며 하나씩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승혁이는 3 분단 3번째."

3 분단 3번째, 못난이가 앉아있는 자리다.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못난이 옆에 앉으며 반가움을 건넸다.

"야, 울어?"

"아, 안 울어!!!"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며 승질을 부린다. 다시 고개를 처박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에 맞은 오른쪽 눈이 퉁퉁 부어 눈물이 계속 쪼르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 그럼 난희랑 승혁이랑 또 붙어있는 건데요?"

수경이가 손을 치켜들고 선생님께 이의를 재기했다.

"맞아. 난희랑 승혁이난 5학년 때도 짝꿍이었다고 했지? 저번에도 바로 앞에 앉았었고? 그래도 이번에 또 짝꿍이야."

"왜요?"

"승혁이 난희를 좋아하니까."

"오오~"

뜬금없는 고백, 반칙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고백도 아니고, 못난이 귀로 전해진 고백이 아니었다. 선생님 입을 통해 전해진 고백...


"나 못난이 좋아해. 5학년 때부터 좋아했어. 그러니까 짝꿍 할래."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담담한 척 말했다. 병찬이처럼 대차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놀릴 테면 놀려라, 병찬이처럼 계속 밀고 나가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생님, 저도 난희랑 짝꿍 하고 싶은데요?"

난데없이 태영이가 끼어들었다.

'연적이 생긴 건가? 태영이는 싫은데.'


선생님은 당황한 얼굴로 "음, 음~"거릴 뿐 답이 없다. 태영이 표정을 보니 확실히 난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러 생각도 없다. 못난이는 그새 책상에 고개를 쳐밖고 있었다.

"넌 짝꿍 많이 했었잖아. 이번엔 양보해."

맞는 말이었다. 못난이와 오랜 시간 짝꿍을 해왔다. 누가 봐도 태영이 말은 타당했다. 내가 양보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하지만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정해준 거잖아."

내가 말해놓고도 바보 같았다. 고작 이딴 걸 반박이라고 하고 있다니 말이다. 태영이가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쳐다봤다. 여전히 선생님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영혼이 방황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대기를 떠돌았던 선생님이 영혼이 돌아왔다.

"자, 그럼 승혁이가 일주일, 태영이가 일주일씩 짝꿍 해."

무슨 솔로몬의 판결이라도 된냥 얼굴에서 우쭐함이 엿보였다. 선생님의 생일날,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선생님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태영이와 내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못난이와 선생님을 교차해서 눈짓했다. 선생님의 영혼은 다시 대기에 흩어져 날아간 듯했다.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가락을 튕기며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일주일씩 짝꿍 한 번씩 하고 난 다음에 난희가 정하는 걸로 하자. 그러면 되겠지?"

태영이와 나는 여전히 뽀루 뚱한 얼굴로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못난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일어나 강아지 인형처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다음날 못난이는 네모난 안대에 거즈를 겹겹이 붙여서 나타났다. 내 머리통을 갈기며 승질을 부리곤 자리에 앉았다. 태영이가 먼저 일주일 짝꿍 했다면 좋았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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