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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23. 2021

그때 그 못난이 14화

내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1997년 2월, 우리는 모두 한자리에 섰다. 다음 걸음을 위한 마무리다. 고된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끝으로 우린 공식적인 졸업생이 됐다. 졸업생을 전부 합쳐도 고작 150명 안팎의 작은 학교, 졸업식도 조촐하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모였다는 게 이런 모습일 테다. 심지어 정육점 아저씨네 똥개도 운동장을 어슬렁 거린다. 


"그동안 즐거웠고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개똥 핥아먹는 소리 하네. 야, 은희 빼고 우리 전부 같은 중학교로 가거든?"

"반이 다를 거야. 반이!"

꽃다발을 손에 쥔 채 못난이와 나는 여전히 티격태격했다. 겨울 끝자락, 한참 동안 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었던 탓인지 추위에 코끝이 찡했다. 


"이리 와, 사진이나 찍자."

못난이가 다가와 팔짱을 꼈다. 내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과 못난이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이 우리 가운데 치솟아 올랐다. 카메라를 향해 'V'를 표시하며 고개는 못난이 쪽으로 기울였다. 못난이도 나와 같았다.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 가장 다정하게 붙어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멀끔한 옷을 입은 날,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웃으며 인사를 해줬던 날, 그런 날 나는 못난이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1998년 3월, 1학년 학급수만 12반이 있는 중학교, 못난이는 3반에 배정을 받았고 나는 12반에 배정을 받았다. 어울리지 않는 교복과 목을 조르는 넥타이가 영 어색했다. 어색하고 낯선 곳에서 우린 만났다. 아니, 마주쳤다. 내 옆에는 새로 사귄 친구들이 있었고 못난이 옆에도 새로 사귄 친구들이 있었다. 

"안녕, 어디가?"

"매점 가려고. 너는?"

"나는 다른 반에 책 빌리러 가."

낯설었다. 얼마 전까지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장난쳤던 못난이였는데 어째선지 멀게 느껴졌다. 


"너 어디가?"

"체육복 빌리러."

"같이 가자. 누구한테 빌리려고?"

"3반에 친구 있어."

체육복을 빌린다는 핑계로, 교과서를 빌린다는 핑계로 3반을 들락날락거렸다. 3반에 들를 때마다 못난이는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못난이와 인사를 나눌틈은 없었다. 간간히 눈이 마주쳤지만 가벼운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그때 내 눈은 상당히 애처로웠던 거 같다. 


점차 3반에 발 들이는 시간이 줄었다. 친구들은 계속 생겨났고 새로운 환경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이른 사춘기가 찾아왔고 못난이와 거리는 더 멀어져만 갔다. 2학년이 돼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못난이는 4반, 나는 10반에 배정되며 여전히 먼 거리에서 가끔 마주칠 뿐이었다. 


3학년 때도 앞반과 뒷반으로 나뉘었고 어쩌다 가끔 교문 앞이나 복도에서 마주쳤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웃으며 유쾌하게 다가온 못난이, 나는 그러지 못했다. 도망치듯 대충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던 나는 순식간에 못난이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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