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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l 16. 2021

그때 그 못난이 17화

최후의 5분

"야, 너희 둘 튀어와."

"147번 훈련병, 충성!"

"너희 종교 행사에서 받은 음식 반입 안 되는 거 몰라?"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모르면 군생활 끝나? 가져와."

"147번 훈련생, 죄송합니다."


입대 동기와 빨래를 하던 중 종교 행사를 다녀오는 훈련병 두 명을 불러 세웠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긴장한 모습이 퍽 귀엽다. 마치 20일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 역시 군 입대한 지 고작 4주, 아직 훈련소에서 훈련병 딱지를 떼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막 입대해 어리바리한 훈련병들은 알턱이 없다. 하얀색 런닝까지 입고 있으니 간부인 줄 알았을 테다. 

"이번 한 번만 봐준다. 가봐."

"감사합니다. 충성!"


어리바리한 훈련생 두 명이 사라지자 근엄한 표정과 뒷짐 지고 있던 두 손은 부산해진다. 초코파이와 소보로빵, 불로소득 간식이 생겼다. 

"야, 다 봤어."

"저 새낀 뭐야?"

동기 녀석과 간식을 뜯어먹으려는 찰나 또 다른 동기 놈이 뛰쳐나왔다. 어쩔 수없이 두 명분의 간식을 셋이서 나눠먹는다. 


"딱 이 시간만 좋은 거 같아."

"그러게. 빨래 널러 나왔을 때가 제일 여유로워."

"근데 너 그 문신은 뭐야? 여자 친구 이니셜이야?"

뒤늦게 합류한 동기 녀석 팔에 새겨진 영문 이니셜에 눈이 갔다. 눈에 잘 띄진 않아도 소매를 걷어붙이면 선명하게 보이는 이니셜 'P.S ♥'. 


"아니, 이거 고등학교 이름이야."

"고등학교 이름을 왜 문신으로 해? 또라이야?"

"우리 학교 방송부 전통이다. 풍산 고등학교, 그래서 P.S♥로 한 거다."

소보로 빵처럼 피부 곳곳이 다 터진 얼굴에 하마 새낀지 분간 안 가게 짧은 목으로 하트라니, 괜히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여자 친구가 보면 오해하겠다."

"여자 친구 없어. 니들도 없잖아?"

"나 있는데?"

초코파이를 돌돌 말아가며 입에 처넣고 있던 동기 놈이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지우며 말했다. 

"니가?"

"말도 안 돼."

"야, 자대 배치받으면 사진 보여줄게. 니들 깜~짝 놀랄걸?"

"예뻐?"

"나중에 사진 봐. 근데 넌 없어?"


동기 녀석이 내게 화살을 돌렸다. 

"곧 생길 거야."

"미친놈, 뭔 소리야?"

한껏 상상의 바다를 헤엄치는 표정으로 두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첫사랑에 성공할 것 같아서."

두 녀석은 아예 몸을 내쪽으로 틀었다. 첫사랑이란 존재에서 강한 흥미를 찾은 듯했다. 

"얘기하자면 긴데..."


자대 배치를 앞두고 주말 내내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때 감사하게도 공중전화를 마음껏 이용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들 공중전화 부스 앞으로 달려가 줄을 섰다. 5분의 시간을 약속한 채 한 명, 두 명 수화기를 붙잡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연결음이 낯설다. 상대방이 얼른 수화기를 들어 이 연결음을 끝내줬으면 싶다. 그러면서 한편엔 받으면 어떡하지? 뭐라고 하지? 싶은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여보세요."

"미안한데 일단 들어줘. 수신자 부담료는 나중에 갚을게."

내 이야기를 전하기에 5분은 짧다. 속사포처럼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버스 정류장에서 기억 못 한 게 아니라 기억이 멈춘 거였다는 얘기, 동창 녀석 누구와 연락을 하고 있다는 얘기들까지 줄줄이 내뱉었다. 못난이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일정한 간격의 숨소리가 들릴 뿐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나 지금 군대 와있어. 자대 배치받고 휴가 나가게 되면, 시간 괜찮으면, 나랑 밥이라도 먹을래?"

"... 글쎄"

나불거리던 내 입이 멈추고 선택권을 못난이에게 넘긴 순간, 잠깐의 정적이 나를 무섭게 휘감았다. 이윽고 떨어진 못난이 입에서 알 수 없는 뉘앙스가 터져 나왔을 땐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우린 할 말이 아주 많을 거 같네. 밥 먹는 시간으로 다 얘기할 수 있을까?"

"어, 그럼 밥도, 커피도, 우유도 다 좋아. 다 먹자. 먹을 게 풍족하겠네."

"개소린 여전하네."

수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미소 짓는 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야, 5분 됐어. 빨리 끊어."

5분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영부영 못난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공중전화부스에서 나왔다. 

"오~ 곧 생길 여자 친구?"

뒤쪽 줄에서 기다리던 소보로 동기가 휘파람을 불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니, 고등학교..."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찡끗 웃고 지나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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