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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l 24. 2021

그때 그 못난이 18화

이해할 수 없다고 인정할 수 없는 건 아니야

첫 휴가, 하루가 1분 같다는 신병 휴가를 받은 날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 멋들어지게 경례를 하고 싶었지만 콧물이 흘러나오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잘 컸다. 걱정 마시라. 이것 봐라, 건장한 청년이 되지 않았냐?' 뭐 이런 말을 내뱉을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아니, 김이병 그 개 베이비가 툭하면 야외 화장실 청소를 떠넘겨. 안 그래도 냄새에 민감한데 얼마나 눈물 나는지. 경례할 때 새끼손가락이 떴다고 엉덩이를 걷어차는데 그대로 굴러서 출입문에 부딪혔어. 아프기도 아픈데 엄청 쪽팔리더라."

눈물과 콧물이 누그러들자 내 얘기를 쏟아내기 바빴다.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참 열심히도 찾았던 거 같다. 

"근데 엄마, 나 제대하면 결혼할 거 같아. 그땐 며느리 보여줄게."


군복도 벗지 않은 채 감자탕 집에 앉아 연거푸 소주 2병을 비웠다. 

"여~ 군바리, 옷이라도 갈아입고 오지?"

"왜 이렇게 늦었어? 빨리 좀 와라."

"우리가 너처럼 한가하냐? 우린 바쁜 대학생이란 말이야."

"지랄하네."

어릴 때부터 알아온 몇 안 되는 친구들, 그래도 휴가라도 술잔 기울이자며 찾아온 녀석들이다. 친구 녀석들 품엔 아버지 몰래 훔쳐온 양주가 한 병씩 숨겨져 있었다. 


"혼자 많이도 쳐마셨다."

"아직 끄떡없어."

"좀만 더 마시고 자리 옮기자. 영택이네 집으로 가자. 작업실에서 좋은 것 좀 마셔야지."

이마가 넓은 건지 벗겨진 건지 애매한 앞통수의 태훈이가 징글맞게 웃으며 품속의 양주를 매만졌다. 몰래 아버지껄 훔쳐왔을 텐데 눈도 작은놈이, 앞통수도 반짝거리는 놈이 어떻게 안 걸렸는지 의문이었다. 


"나 못난이 만나기로 했어."

"뭐? 왜?"

얼큰하게 모두가 달아올랐을 때 다음날 못난이와 만난다는 얘길 꺼냈다.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 첫사랑이잖아."

"에이~야, 그건 아니야.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아야 된다는 말 몰라?"

태훈이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어쩜 저렇게 질색팔색 하는지 누가 보면 내가 똥이 된장인 줄 알고 떠먹은 걸로 착각했을 테다. 

"너 아직도 걔 좋아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니, 모르겠네. 그냥 생각이 자꾸 나서 말이야. 꿈에도 나오더라고."

"야, 그건 네가 여자 친구도 없이 군대 가서 그런 거야. 군대에 있으면 다 그래."

옆에서 병찬이가 끼어들며 거들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비싼 양주를 입에 털어 넣곤 불만스러운 입고리를 내비쳤다. 뭐 이런 등신이 다 있나? 하는 얼굴이었다. 


"야, 솔직히 걔가 얼굴이 예쁘냐? 오히려 못생겼지. 그렇다고 몸매가 좋아? 아니잖아. 성격? 그래 뭐 그냥 보통이잖아 성격도, 난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

태훈이 녀석이 격하게 바디랭귀지로 부정을 드러내며 술잔을 들이켰다. 이번에 고개마저 틀어가며 술을 들이켜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나중에 태훈이 자식은 결혼하기 참 힘들겠단 생각을 했다. TV에서나 보던 "난 이 결혼 반댈세!!"가 눈에 훤했다.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소개팅 시켜줄게. 내가?"

병찬이는 한술 더 떠서 소개팅 주선까지 내걸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욕바가지를 떠줘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옆에 있던 영택이가 물었다. 

"만나서 어쩌려고? 뭐할 건데?"

"그냥, 만나봐야 알지."

"네가 그냥 만나겠냐?"

영택이의 물음에 모두 나를 쳐다봤다. 날카로웠다. 괜히 술을 한잔 따라 마셨다. 자작술에 더 의심이 갔나? 눈매는 더 치켜들고 고개는 더 앞으로 삐죽 내밀며 다가왔다. 

"나 결혼할 거야. 못난이랑."

"지랄하고 자빠졌네."

치켜 올라갔던 눈꼬리는 다시 내려왔고 삐죽 내밀었던 고개는 접혀 들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등신을 두고 술 마신단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술잔을 부딪혔다. 물론 나 빼고 말이다. 


"미친 새끼야. 그동안 연락 한번 없이 살다가 그것도 군대 가서 연락한 놈한테 누가 관심이나 있을 거 같냐?"

"그건 모르지."

병찬이는 언뜻 보면 화가 난 거처럼 보였다. 혀까지 차면서 술을 계속 들이켜댔다. 

"너 그만 마셔."

영택이가 내 술잔을 뺏어 들었다. 

"왜?"

"내일 만나기로 했다며? 계속 마시면 너 못 일어나. 지금도 너 혀 꼬였어. 술병 나서 만나러 갈래?"

나를 챙겨주는 듯,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닌 걸 알고 있다. 영택이 성격에 이건 분명 비싼 양주가 아까워서였다. 


친구 녀석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승질까지 내가며 주접을 떨었는데 그럴수록 난 못난이와 만날 결심이 섰다. 친구 녀석들의 주접을 통해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녀석들 중 누구도 '인정'할 수없단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 이해할 순 없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어쩌면 그게 내 취향이고 관심이니까 말이다. 덕분에 나는 한결 마음 편히 못난이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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