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doworld Jan 27. 2023

(에세이) 쓰는 밤

당신이 스쳐지나 온 많은 밤들 중에.

쓰는 밤.



 나에게는 말하는 낮과 쓰는 밤이 있다.



쇼핑호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다른 어떤 직업 보다도 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날이 많다. 낮엔 일로라도 혹은 그 이상으로라도 내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는 시간들이 많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내 생각이 정돈되지 않은 채, 조금 덜 생각하고 조금 더 직관적인 말하게 되는 낮. 그럴 때면 과하게 솔직했던 건 아닐까, 내 감정이 너무 과장됐던 말을 했던 게 아닐까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게 된다. 그리고는 쓰는 밤이 되면 굳이 '말'이란 시간을 글로 빗대어 볼 때 퇴고라는 과정을 겪게된다. 그럼 말의 무게감에 대해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일을 할 때면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말하기가 여간 더욱더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듣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더 솔직해져 보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고 나에겐  조용히 들여다보게 되는 오롯이 내 시간인, 침전하는 쓰는 밤이 있다.


 나는 어떤 기억의 장면들을 사진처럼 기억해 내는 습관이 있다. 사진처럼 순간이 캡처되며 더불어 그때 공기 같은 것들이 사진 안에 담기는 기억법. 내 쓰는 밤은 조금은 푸르고, 조금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것처럼 포근하다. 그래서인지 쓰는 밤은 왠지 더 솔직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 시간은 나 자신에게 더욱더 솔직해지는 때기도 하다. 한 가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질문해도 답해주는 사람이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지나치게 솔직해지는 내가 있다. 두 시간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노라면 조금 더 솔직한 쪽은, 이성과 감성이 마주하는 시간. 오직 ‘나’만이 존재하게 되는 쓰는 밤이라는 시간이 있다.


 이런 밤에 스스로에게 지금 잘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달리는 중이라 대답할 것 같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면서  혼자 치열하긴 한데, 그렇다고 나만 보고 달리고 있냐고 물으면 그럴 수 있을까 되묻게 되는 밤이다. 같은 쇼핑호스트라는 직업을 앞서 가졌던 친구는 2년 동안 치열하게 회사생활을 하다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 그 친구가 전화로 "도연아, 나 이제 밤 11시에 라면 먹을 수 있다"라고 하던데. 그게 왜 그리 애잔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친구는 넌 정말 너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지금 그러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달리는 중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아니던데, 진짜 잘 달리려면 결승선만 봐야 하던데. 옆이 가려진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나는 나에게 너는 정말 잘 달릴 수 있겠냐고 , 그럴 수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밤이다. 그럼에도 그러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빅터플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