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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Nov 28. 2023

퇴직 후 나 홀로 일본 한달살이(2)

삿포로에서 만난 일본인


삿포로 주변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일버스투어는 오전 9시쯤 출발해서 오후 7시쯤 돌아온다. 점심 포함하여 85000원 수준이다. 첫 버스여행은 삿포로 주변 농장과 포도주 농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관광객 35명 중 혼자 온 사람이 3명이었고 점심은 혼자온 3명이 함께 했다. 교토 중학교 여교사인 60세의 미찌꼬와 미국에서 온 33세의 로렌 그리고 나였다. 점심 이후 3명은 일행이 되었고 여행 후 이자카야에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은 샤코탄 반도를 함께 여행했으며 3일째는 미찌꼬상과 둘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삿포로 인근의 시코쯔토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현지인과 일행이 되어 현지인이 안내하는 여행을 3일간 하게 되니 일본 관광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까지 알 수 있는 알차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미찌꼬는 착하고 순박하지만 의외의 면이 있는 일본 여자였다. 직업이 교사여서 인지 규정된 것에서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무리 불편해도 자세를 똑바로 했고 공중질서를 병적으로 지키려 했다. 민폐라 생각하여 남에게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못했다. 미찌꼬는 교토에서 삿포로에 여행 온 이유가 의외였다. 좋아하는 가수가 삿포로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것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가수의 공연이 열리면 어디던지 찾아간다고 했다. 일본 중년여인들이 욘사마에 푹 빠져 서울에 찾아온다고 하더니 그 것과 유사했다. 일본 여자들은 평소 조신하게 처신하지만 어떤 대상에 빠짐으로써 내면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았다. 


공연은 오후 6시에 시작이지만 미찌꼬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8시부터 야구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햇빛 가릴곳도 없는 야구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0시간을 앉아 있는다고 한다. 어린애도 아니고 60세 중년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미찌꼬는 나와 함께 공연을 보길 원했으나 땡빛에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거절했다. 함께 여행할 때는 정말 온순하고 순박한 여자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미찌꼬는 식사할 때면 비싼 최고급 식당에서 하기를 원했고 시코쯔키 호수에서는 십 분에 5만 원 하는 모터보트를 타자고 했다. 내가 너 부자냐? 고 물었더니 70세 넘으면 여행하기 힘드니 그나마 건강한 60대에 여행하면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려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해외를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날이 10년도 안 남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참을 필요는 없다. 내 가용자산과 연금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라면 가장 고급스러운 여행을 하려고 한다. 이번 삿포로 숙소가 민박이어서 한 달 100만 원이었지만 다음부터는 150~200만 원 수준의 숙소를 얻을 생각이다. 150만 원이면 동남아에서는 호텔급 수준의 숙소를 얻을 수 있고 동유럽은 제법 깔끔한 숙소가 가능하다. 서유럽과 미주지역은 200만 원 정도 소요될 것이다. 

나 홀로 여행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 함께 동행하는 의외의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게 나 홀로 여행의 묘미이다. 혼자라고 외로울 것이라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특히 민박은 주인과 함께 살게 되므로 주인과 친해지면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며 함께 현지인의 생활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나는 민박 첫날 와인 두병을 사서 70대인 주인 부부와 마셨다. 주인부부가 모두 와인을 좋아하고 영어가 가능해서 일어,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다. 세상인심이 대개 비슷하다. 내가 먼저 술을 사고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도 호의를 보이기 마련이다. 이후 주인부부는 나에게 매우 친절히 대했으며 자신들이 먹던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여주인 마사코상은 하루일과가 아주 바빴다. 방 4개를 운영하는 에어비엔비 업무로 하루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민박집을 드나드는 손님들 방청소와 침구교체로 일이 많았다. 가끔 손님이 없어 한가해지면 집 주변이나 근교에 있는 온천을 갔다. 마사코상은 온천을 갈 때면 나에게 함께 갈 것인지 물었고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마사코상을 따라갔다. 

일본은 어디 가나 좋은 온천이 많다. 시내에 있는 온천도 온천수가 좋지만 교외 온천은 대개 노천온천이 함께 있어 낭만적이다. 마사코상을 따라간 사코쯔토야 호수 공원에 있는 토마리 온천은 압권이었다. 실내 욕탕에서 문으로 연결된 노천온천은 10미터도 안 되는 바로 앞이 한국의 충주호 만한 커다란 칼데라 호수이다. 호수물에 닿을 듯이 가까운 노천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다가 몸이 더워지면 탕 밖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받으며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남자들만의 나체 해수욕장에 와 있는 듯한 특이한 경험이었다. 알몸으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앉아 있다 보니 저절로 명상이 되면서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마사코상이 차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이곳까지 온천하러 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앞에 펼 져지는 칼데라 호수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발가 벋고 앉아있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서양 나체해변에 가면 노인들만 있다던데 나이가 들면 나체로 앉아있는 자유스러움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어서 인지 모르겠다. 옥스퍼드 대학교에는 노교수들이 발가 벋고 휴식하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오픈된 공간에 벌거벗고 앉아 있는 것은 몸과 마음에 자유를 주어 창의력이 발휘되는 효과가 있어서 일 것이다.


마사코상은 60세 퇴직 후 혼자 말레이지아에 가서 3년간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중년부인이 퇴직했다고 남편을 두고 3년이나 홀로 외국에 나가 영어공부를 했다는게 놀라왔다. 마사코 상은 60넘어 늦게나마 영어공부를 한 덕분에 에어비엔비를 운영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서양손남들과 소통하면서 노후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면 영어와 일어를 섞어가며 수다를 떨었다. 수다의 많은 부분이 남편 요시다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퇴직한 남편이 하루 세끼 집에서 먹고 있으면 부인에게 대접받지 못한다. 요시다 상은 매우 성실한 분이지만 가사는 그다지 돕지 않는 듯했다. 부인은 그런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어디인지도 모른다느니, 내가 바쁜데도 밥 달라고 한다는 등 남편을 몹시 못마땅해했다. 한국 퇴직부부와 거의 유사하다. 씁쓸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너무 많이 닮았다. 일본이 겪은 문제점을 시차를 두며 한국이 따라간다. 살아가는 방식은 경제에 크게 좌우된다. 우리보다 앞서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겪은 일본을 시차를 두고 닮아가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노령화, 저출산, 부동산, 해외여행, 외노자, 국제결혼등 많은 사회 현상이 일본의 뒤를 이어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의 경우 일본도 우리처럼 자녀 교육시키고 집 한 채 마련하고 융자금 갚다 보면 노후를 위한 별도의 저축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마사코상 부부도 살고 있는 집 외에는 돈이 거의 없고 오로지 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변의 퇴직부부가 자기와 비슷하다고 했다. 주인 부부는 5억 원 주준인 집이 전재산이며 연금 30만 엔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60대 자산 평균이 4억쯤 된다고 하니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수준인 듯하다. 주인 부부는 민박으로 조금 경제적으로 도움 받고 있으나 저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주인부부는 삿포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행정직으로 30년 이상 일했다고 한다. 맞벌이 이기 때문에 일본인 평균이상의 수입이 있었을 것이나 5억짜리 집 외에 재산이 없다는 것을 보면 일본인의 노후가 한국보다 나을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축을 못했냐고 물었더니 자녀교육 시키고 집과 차 융자금 갚아 나가다 보면 저축할 돈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자기는 젊었을때 돈 아끼지 않고 취미생활을 즐겼고 퇴직후 3년간 해외에서 공부하여 돈을 모우지 못했다고 했다. 허긴 한국의 중산층인 나도 그랬다. 애들 교육시키고 융자받아 집사고 융자금 갚아 나가다 보면 퇴직하게 된다. 운이 좋아 집값이 오르면 자산이 증가하지만 집값이 안 오르면 꽝이다. 일본은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면 노후 일인당 15만 엔 부부합산 30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고 한다.  노후생활은 한국보다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등 유럽 선진국들도 중산층은 노후에 집하나와 연금으로 살아간다고 하니 집 한채와 최소 생활비 수준의 연금이 중산층 노후생활의 국제 표준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금만으로는 노후생활이 어려운 게 문제이며 이마저도 이삼십 년 뒤면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일본은 남편 퇴직 후 황혼이혼이나 졸혼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일본인은 대부분이 퇴직 후 일인당 15만 엔 정도의 연금으로 생활하게 되는데 두 명이 한집에서 30만 엔으로 사는 것은 괜찮지만 집을 반씩 나누고 한 명이 15만 엔으로 사는 것은 힘든 일이어서 따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도 경제력만 된다면 따로 살고 싶지만 경제력 때문에 함께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의 황혼이혼이나 졸혼은 10% 이내의 부자들이나 가능한 매우 드문 일이며 서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참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삿포로에서 나 홀로 해외 한달살이를 해보니 앞으로 해외살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국내이던 해외이던 내 루틴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달 중 절반인 15일은 여행, 관광, 주변 트래킹을 하고 나머지 15일은 숙소나 주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숙소에 머물때는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시청하고  숙소 주변 공원에서 매일 만보이상 걷는다. 조식과 점심은 전날 마트에서 구입한 빵, 우유, 과일, 계란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레스토랑에서 영양을 고려한 근사한 식사를 한다. 자고 먹는 것이 해결되면 외롭지 않도록 무엇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나 홀로 여행하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얘기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최선은 현지인을 사귀는 것이고 차선은 여행자를 만나서 일행이 되는 것이다. 지난 3월 제주살이 때는 펜션주인과 친해져서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고 이번 삿포로에서는 민박집주인, 여행객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전혀 외롭지 않았다. 특히 일본인인 미찌꼬와 3일간 함께 여행을 하고 이후 SNS 통해 안부를 전하는 친구가 되어 일본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서 살게 되더라도 말동무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해외살이는 태국의 치앙마이, 베트남의 나트랑,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 이며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수년간의 한달살이를 지속할 예정이다. 일본에서의 한달살이를 통해 나 홀로 해외 한달살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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