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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31. 2024

퇴직 후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1)

도시생활 즐기기


24.1.16일 새벽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나오니 새벽 3시이다. 혹시 택시가 없으면 어떠나 하는 걱정과는 달리 그 시간에도 많은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기하는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4시, 간단히 짐을 풀고 서둘러 잠을 청했다.


몇 시간 잔 후 첫날 일과를 시작했다. 해외살이 세 번째이다 보니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것이 익숙하다. 도착 이삼일 내에 주변환경을 파악하고 환경에 따른 나의 루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에어비엔비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 사이트의 정보를 활용하여 나의 루틴에 적합한 장소를 선정했지만 현장을 둘러보고 주변환경을 고려한 루틴을 재설정해야 한다. 기본적인 루틴은 식사, 운동, 글쓰기이며 틈틈이 관광을 곁들이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컨셉은 도시중앙에 살면서 도시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삿포로에서는 도시 외곽 민박집에서 살면서 일본인 주인과 함께 생활하는 현지체험을 컨셉으로 하였고 치앙마이에서는 현지인 주거지역에 살면서 저렴한 물가와 마사지를 즐기는 한가한 해외살이였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는 도시생활을 즐기는 컨셉으로 도심 중심가에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는 서울의 을지로 롯데호텔에 버금가는 중심지에 위치하고 백화점이 딸린 4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다. 건물 내에 수영장과 식당가가 있어서 도시생활을 즐기는 숙소로 훌륭했다. 숙소는 원룸 형태이지만 20평 수준으로 거실과 화장실이 넓고 주방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월 140만 원으로 위치와 시설대비 만족스러웠다.


숙소 주변을 돌아보니 식사에 필요한 음식점과 마트가 5분 거리에 넘치도록 많았고 숙소에 커다란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어서 운동하기에 좋았다. 신호등 걱정 없는 공중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쌍둥이 빌딩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걷기에도 좋았다. 41층에 위치한 숙소의 전망이 좋아서 집에서 글쓰기에 좋았고 숙소 수영장 탁자에서 컴 작업이 가능하여 나의 루틴에 필요한 환경에 부족함이 없었다.


주변환경 파악 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식사, 운동, 글쓰기, 관광 관련 루틴을 만들었다. 어딜 가나 식사가 가장 중요하다. 조식과 점심은 주로 집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식당에서 하므로 식품구입을 위한 마트와 맛집들이 가까워야 한다. 건물지하 마트에는 한달살이에 필요한 모든 식품이 구비되어 있으며 라면, 김치, 떡볶이등 한국식품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의 70% 수준으로 저렴했다. 말레이시아는 회교국가여서 술값이 매우 비싸다. 마트에서 파는 맥주와 와인 가격이 한국보다 50% 정도 비싸고 식당에서도 한국보다 50% 정도 비싸다. 술이 없는 식사는 한국보다 조금 저렴하지만 술을 곁들인 식사는 한국보다 비싸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말레이시아 생활비가 한국보다 더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나 나는 술을 자주 마시지 않아 한국보다 저렴한 생활비로 살 수 있었다.

국내외 한달살이 네 번째여서 아침식사 메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식단은 비슷할 것이다. 복잡한 요리과정이 필요 없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계란, 빵, 감자, 과일, 우유, 주스, 요구르트 중 서너 가지를 먹는다. 한국에서는 아침식사를 대부분 누룽지로 하기 때문에 해외살이 나갈 때도 누룽지를 가져간다. 누룽지는 물에 5분만 끓이면 되기 때문에 계란 삶기보다 더 간단하며 해외에서 술마신뒤 해장으로도 좋고 김치와 함께 먹으면 한식에 대한 갈증도 해소시켜 준다.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마트에서 김치를 살 수 있고 심지어 유럽에서도 김치를 살 수 있다고 하니 해외살이 떠날 때 누룽지만 가져가면 훌륭한 비상식량이 될 수 있다. 누룽지는 가볍고 휴대하기 쉽고 보관도 쉬워서 해외살이 비상식량으로 최고이다.


점심은 간단히 해결한다. 집에 있을 때는 냉장고 털이를 하고 밖에 있을 때는 카페나 길거리 음식으로 요기만 한다. 저녁은 집 주변 맛집을 찾는다. 숙소 주변에는 제법 유명한 맛집이 많이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큰 규모인 잘란알로 야시장이 5분 거리에 있어서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부근에 백화점 식당가가 있어서 고급스러운 식사도 가능했다.   

운동은 낮에 한 시간 정도 수영하고 해진후 트윈타워까지 왕복하여 만보를 걸었다. 도로 위에 스카이워크가 설치되어 있고 건물들이 육교로 연결되어 있어서 숙소에서 쌍둥이빌딩까지 2Km를 신호등 한번 거치지 않고 비 맞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걷는 도중 백화점과 쇼핑센터 두 곳을 관통하여 구경거리도 쏠쏠하다. 나는 매일 저녁 쌍둥이빌딩 앞 공원에 가서 공원을 두세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왔으며 도중 저녁식사를 하고 마트에 들러 다음날 아침거리를 샀다.


매일 한 시간 정도의 수영과 만보를 걸으면서 건강을 유지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매일 아파트 뒷산을 한두 시간 걸었다. 한국의 산야는 계절마다 변하여 항상 새로운 모습이다. 봄에는 꽃이 여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걷는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러나 서울 도심을 걷는 것은 피곤하다. 이동을 위해 할 수 없이 걸을 뿐 운동으로 걷지는 않는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에서 도심지를 걷는 것은 즐거웠다. 마치 서울에서 남산을 걷는 것처럼 걷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신호등에 막힘이 없이 2Km를 왕복할 수 있는 좋은 길과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관통하면서 눈이 즐겁고 한국과는 다른 이국적인 거리를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쿠알라룸푸의 도심 중앙을 사람이 몰리는 야간에 걸으면서 도시의 살아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의 명동처럼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아마추어 가수들의 버스킹으로 떠들썩한 번화가를 걷는 즐거움은 도심에서의 한달살이를 행복하게 해 준 핵심이었다.  


글작업은 가급적 수영장에 있는 테이블에서 했다. 방에서의 글작업은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반면 재미가 없다. 내가 전문 작가라면 글에 집중할 수 있는 방 안에서 글 쓰는 게 좋겠지만 나는 여행을 즐기는 것이 먼저이고 글은 부차적이다. 해외에서 즐길거리를 찾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별 즐거움이 없을 때 글을 쓰며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다. 숙소 15층에 있는 야외수영장은 축구장 반만 한 크기에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조경되어 있다. 나는 수영장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놓고 수영복 차림으로 글작업을 했다.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글 작업을 하노라면 묘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서양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으로, 말레이시아 여인들은 히잡을 쓴 평상복 차림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화의 차이가 격하게 느껴진다. 글작업을 하다가 더위를 느끼면 나도 물에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물싸움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놀다가 다시 나와 노트북을 켰다. 수영장에서의 글작업은 나의 루틴인 글쓰기와 운동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었다. 지금까지 글 쓰면서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즐거움이다. 나는 말레이시아를 떠나는 날까지 한 달 내내 매일 대여섯 시간씩 이 즐거움을 만끽했다.


매일 식사, 운동, 글쓰기 루틴대로 하루를 보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주변관광을 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참조하여 쿠알라룸푸르 핵심 관광지 십여 개를 선정하고 기회가 될 때 다녀왔다. 관광은 혼자 다닐 수도 있으나 혼자는 무료하기도 하고 사진 찍기도 불편해서 가급적 동행이 있을 때 다녔다. 제주도, 삿포로, 치앙마이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아는 사람 없는 생지에서도 여행 동행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연유로던 여행 동행인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측한 대로 여행 동행인이 생겼다. 지인이 딸과 손녀와 함께 쿠알라룸푸에 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요즘 겨울방학이면 엄마들이 자녀를 데리고 동남아 국가에 한두 달씩 해외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조카며느리도 겨울 방학기간 동안 애 둘을 데리고 치앙마이에 체류 중이다. 말레이시아는 영어사용 국가라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겨울방학중 공부를 위해 엄마와 함께 많이 와 있다. 많은 한국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있는 ‘몽키아라’ 지역에는 한국학생을 위한 영어유치원과 영어학원이 여럿 있다고 한다. 원장도 한국인 학생도 한국인이며 강사만 외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의 영어학원과 별 차이가 없으나 외국이니까 좀 다르긴 할 것 같다.


여기서 만난 지인도 손주의 영어공부를 위해 딸과 함께 와있었다. 방학 한두 달간 영어유치원이나 영어학원 다닌다고 영어가 늘지는 않겠지만 애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엄마는 애 덕분에 따뜻한 동남아국가에서 한두 달 살아보면서 이국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며 할머니는 손주 봐준다는 이유로 함께 와서 외국생활을 즐길 수 있다. 아빠는 오랜만에 애와 엄마 없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 일석사조이다. 가족 3명이 해외살이의 즐거움도 누리면서 비용도 많이 들지 않으니 겨울방학기간 동안 동남아 체류하는 엄마와 자녀들이 차츰 늘어갈 듯하다.


외국에서 지인을 만나면 한국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반갑게 느껴진다. 서울에서는 서로 인사만 하는 정도였지만 이곳에서 만나니 동포애가 곁들여져 몹시 반갑다. 국내에서는 함께 놀 친구나 이웃이 주변에 많이 있지만 해외에 나가면 함께 얘기할 사람마저도 귀하다. 여행 중 만난 한국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서 마음을 놓기가 불안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이라면 신뢰가 간다. 그러니 조그마한 인연만 있더라도 해외에서 만나면 금방 친해지기 마련이다.  


이곳에서 만난 지인은 언어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돌아다니기가 조심스러웠는데 내가 연락하니 몹시 반가워한다. 할머니와 엄마가 유치원생 딸 데리고 해외에 나와 있다 보니 뭔가 불안했는데 67세의 할배지만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끔 지인 가족들과 시내 관광을 하고 때로는 함께 식사하면서 외국에서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 지인의 다섯 살 손녀는 참 착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애들을 별로 이뻐하지 않는 편이지만 지인의 손녀는 참 예뼜다. 내 손녀가 생겨서 남의 손녀도 이뻐 보이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인 손녀는 나에게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잘 따랐다. 내가 할아버지 호칭을 들어본 게 처음이라서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싫지는 않다. 내손녀는 백일을 지나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손녀가 걸어 다닐만하면 내가 데리고 다니고 더 크면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해외에 데리고 나가 유치원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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