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쿠알라룸푸르와 나트랑에서의 한 달 살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한 달쯤 쉬었다 유럽으로 한달살이 하러 갈 생각이었으나 계획을 바꾸어 배낭여행을 먼저 하기로 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중앙아시아 배낭여행과 중국실크로드 배낭여행 일정이 여행카페 공지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4월 중순 출발하려고 했던 프라하 한 달 살기를 7월로 미루고 4.16~5.18, 33일간의 중앙아시아 배낭여행과 6.14~7.3, 20일간의 중국실크로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한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해외 한 달 살기에 익숙해져 있다가 배낭여행을 하게 되니 생동감이 있어 좋긴 하였지만 쉴 새 없이 이리저리 이동하는 바쁜 일정이어서 몸도 피곤하고 여행기를 쓸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두 달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면서 휴식도 취하고 그동안 밀린 여행기도 써보려 한다.
유럽 한 달 살기 첫 번째로 프라하를 택한 것은 과거 유럽여행의 기억 때문이다. 2019년 동유럽 6개국, 서유럽 6개국을 여행했었는데 다시 와서 한 달 살기 해보고 싶다고 느낀 도시가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였다. 시내를 잠시 둘러보면서 “여기 참 좋다”라는 끌림이 있었다. 중세 유럽의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서유럽도시에 비해 뭔가 소박한 맛이 있고 물가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를 한 달 살기 명소로 추천하는 유튜브 영상이 많은 것을 보면 여행자들의 시각이 비슷한 듯하다.
4월 중앙아시아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프라하행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7월은 휴가철이어서 항공권과 숙소비가 비싼 편이다. 항공권은 저렴한 경유항공권을 구입하고 숙소는 에이비엔비로 주요 관광지를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을 예약했다. 공동욕실과 주방을 사용하는 불편한 숙소이지만 한 달 180만 원으로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숙소는 한달살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한 달 동안 내가 살아보려 하는 컨셉에 맞는 장소를 골라야 하며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나의 한달살이 컨셉은 여행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이다. 도심으로의 접근이 쉬어야 하고 도서관이나 카페등 글쓰기 좋은 장소가 가까워야 하며 운동할 수 있는 공원 그리고 식당과 마트가 인근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한참을 뒤져서 프라하 중앙역 부근의 호스텔을 선택했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는 주인이나 여러 여행객이 함께 살아가는 숙소가 유리하다. 여럿이 쓰는 민박이나 호스텔은 가격도 저렴하지만 욕실과 주방을 함께 쓰면서 집주인, 여행객들과 소통하게 되어 이런저런 추억거리가 생긴다. 또한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살다 보면 나 홀로 한달살이의 외로움도 덜 수 있다. 공동주방과 식탁에 모여 떠드는 젊은 여행자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럽지 않고 정겹게 들리며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젊어서일까? 잘 모르겠으나 조용하고 깨끗한 고립된 방보다는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좀 소란스러운 민박이나 호스텔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유럽의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특히 동유럽국가들의 물가 상승률이 가팔라서 몇 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만 해도 동유럽 국가는 물가가 싸서 여행하기 좋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행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숙소비와 외식비는 서울보다 더 비싼 것 같다. 서울 물가가 세계에서도 상위권인데 서울보다 비싸다고 느껴지는 정도라면 이곳 프라하의 외식비가 얼마나 비싼지 체감할 수 있다.
현지인들이 가는 동네 식당에서도 저렴한 식사가 15000~20000원 정도이다. 메뉴판 가격은 좀 더 저렴하지만 물값이 이삼천 원 추가되므로 계산할 때 보면 최하 15000원쯤 된다. 1만 원 이하로 한 끼 때울 수 있는 것은 길거리에서 파는 케밥정도이다. 나는 금년초부터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을 여행해 왔다. 이 국가들은 외식비가 매우 저렴하여 한 끼에 삼사천 원 짜리도 먹을만하며 한국의 삼겹살 식사 값이면 양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한동안 저렴한 외식물가에 익숙해 있다가 프라하의 비싼 외식가격 때문에 식사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다행인 것은 마트물가는 서울보다 저렴하다. 아침 식사를 위해 구입하는 빵, 과일, 햄, 우유등과 혼술을 위한 맥주, 와인, 치즈, 땅콩등은 매우 저렴하다. 냉장고에 과일, 음료수, 맥주, 와인을 잔뜩 넣어두고 아침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감사할 일은 외국인이라도 65세 이상은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이다. 한국은 지하철만 무료인대 프라하에서는 지하철, 버스, 트램 모두 무료이다. 직원이 표검사 할 때 여권만 보여주면 된다. 나는 운동삼아 걸어 다니는 것을 선호하지만 지공거사 기념으로 트램과 지하철 모든 노선을 타고 다니면서 프라하 곳곳의 경치를 감상했다. 체코가 아직은 노령화가 되지 않아서 65세 이상에게 통 큰 혜택을 주고 있지만 몇 년만 지나면 한국처럼 대중교통 무료 폐지론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해외 한달살이를 하게 되면 첫 주는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과 주변관광으로 시간이 잘 가지만 2주째가 되면서부터 무료해진다. 한가해지는 2주째부터 글을 쓰면서 무료함을 달래는데 프라하는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무료하지가 않다. 그냥 거리를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동안 한달살이 했던 아시아 도시들은 주요 관광지를 보고 나면 더 이상 흥미가 없어졌다. 시내를 걷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서 굳이 시내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프라하는 특별하다. 도시 전체가 구경거리이다. 카를교, 프라하성, 시계탑이 아니더라도 가지런히 서있는 파스텔 색깔의 아름다운 중세 건축물만 보고 있어도 눈이 즐거우며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다 보면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흥분을 느낀다. 도시 아무 곳이나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며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강가를 걸을 때면 강변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해진후의 프라하는 가슴을 뛰게 한다. 도시 전체가 은은한 불빛으로 감싸지며 고색창연한 중세도시의 모습이 몽환적으로 바뀌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프라하의 특별함도 차츰 무뎌지겠지만 한달살이 기간 동안은 유지될 것 같다. 프라하에 와서 무료해지면 지난 두 번의 배낭여행과 관련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프라하를 떠날 때까지 무료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배낭여행 글을 쓸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글 쓰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무료할 때 나를 긴장시키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지 재미있어서 쓰는 건 아니다. 다른 즐거운 일이 있으면 글 쓰려고 앉아있기 어렵다. 아시아 국가 도시들은 1주일이 지나면 관광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려서 열심히 글을 썼지만 이곳 프라하는 1주일이 지나도 밖을 쏘다니는 게 즐거우니 글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프라하에서 첫 주를 보내면서 루틴을 만들었다. 도착 다음날부터 도보로 화약탑, 시계탑, 카를교, 프라하성, 국립박물관, 스트라호프 수도원, 비셰흐라드 등 주요 관광지와 여러 아름다운 공원을 둘러봤다. 하루 2만 보 이상씩 3일을 걸으니 프라하에서 유명한 명소는 대충 훑어볼 수 있었다. 공짜 지하철, 트램으로 구석구석까지 돌아보고 나니 4일째부터는 간데 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4일째부터 관광이 아닌 하루의 루틴대로 생활을 시작했다.
7시에 일어나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빵, 과일, 우유, 햄, 요플레로 식사를 한 후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간다. 9시쯤 카페에 도착한 후 음료 한잔을 시키고 노트북과 더불어 시간을 보낸다. 오후 2시쯤이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 후 마트에 들러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식사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온다. 3~4시경 숙소로 돌아오면 쉬었다가 햇살이 누그러지는 8시쯤이 되면 구시가지로 산책을 나간다. 프라하 야경명소를 코스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두 시간 15000보 정도 걸은 후 10시쯤 귀가하며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 달간 매일 15000보 정도 걸으면 프라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며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이제 루틴대로의 프라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삿포로, 치앙마이, 쿠알라룸푸르, 나트랑에서의 루틴과 유사하다. 모든 도시에서의 한달살이가 며칠간의 관광을 마치면 식사, 노트북작업, 운동이 주된 활동이다. 프라하는 다른 곳에 비해 식사비가 조금 비싼 대신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멋진 거리를 매일밤 걷는 즐거움이 특별하다.
숙소는 한국의 30평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이다. 욕실, 주방, 거실이 있고 방이 3개이다. 각방마다 여행객을 받기 때문에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한다. 나는 한 달을 머무르지만 대개의 여행객은 3~4일 머무르고 떠난다. 자주 여행객이 바뀌므로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이다. 3040 젊은 커플 또는 2030 젊은 여성 두 명이 오며 남자끼리 오는 경우는 없다. 여행객마다 음식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는데 사람들의 기호식품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여성 2명은 집에서도 히잡을 둘둘 말고 돌아다니고 영국에서 온 여성 2명은 거의 수영복 차림으로 지낸다. 문화의 차이를 지켜보는 것 역시 프라하에서의 즐거움이다.
벌써 1주일이 지났다. 남은 기간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기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