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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05. 2025

은퇴자들의 쉼터, 라오스 비엔티안 한달살이.


해마다 7~8개국에서 한달살이를 하려다 보니 계획을 꼼꼼히 세워야 한다. 기본 고려사항은 한국의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고 한국의 여름철은 시원한 나라에서 지내는 것이다. 한 달만 살고 귀국하고 또 나가고 하는 것은 항공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한번 나갈 때 주변 2~3개 국가에서 한달살이를 계획한다. 작년 겨울에는 따뜻한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에서 한달살이 했고 올 겨울은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3국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로 했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따뜻한 동남아시아 국가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내년 겨울부터는 아프리카나 중동국가로 가야 할 판이다.  

   

이번겨울 3개월간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에서 한달살이를 결정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해당지역에 대해 살펴봤다. 캄보디아 프놈펜과 인도네시아 발리는 역사유적과 자연풍광 관련 내용이 많은데 라오스 비엔티안은 유흥에 대한 내용이 많다. 베트남, 캄보디아는 세계적인 휴양지나 역사유적이 있어서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지만 라오스는 변변한 휴양지나 역사유적이 없어서 유흥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모든 동남아 국가가 골프, 마사지, 유흥으로 관광객을 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비엔티안에는 밤문화나 유흥 관련 내용이 유독 많으며 특히 남성 은퇴자들을 유혹하는 내용이 많다.     


라오스 관련 유튜브에는 동남아 다른 나라와 달리 5060 심지어 70대 남자들이 은퇴 후 라오스에서 살아가는 영상이 많이 나온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달살이 하는 한국인이 많으며 한국교민이 숙소를 운영하고 한국인 은퇴자들이 장기체류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경우도 많다. 왜 라오스에 유독 한국 은퇴자들이 많이 있을까 궁금했다.     

작년 말 치앙마이에서 한달살이 했다. 이때 만난 60대 캐나다 퇴직자로부터 은퇴 후 치앙마이에 와서 살고 있는 캐나다인들 얘기를 들었다. 캐나다의 추위를 피해 겨울한철 치앙마이에 와서 지내고 봄이 되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으며 일부는 아예 정착하고 노후를 치앙마이에서 보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곳에 온 캐나다 남성 은퇴자들은 월 500불 정도로 가정부를 고용해서 가정부 겸 여자 친구로 삼고 있으며 자기도 가정부 겸 여자 친구가 있다고 은근 자랑 했다. 치앙마이의 서양인들이 많이 가는 레스토랑에는 현지 여성들이 애들까지 데려와서 서양인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태국은 이혼율이 높아서 애들을 데리고 혼자 사는 빈곤한 여자들이 많으며 이들이 생계를 위해 서양인들의 시중을 들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 국가 중 유독 태국에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은 과거 태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공산국가여서 서양인들이 들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동남아 모든 국가가 민주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도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차츰 태국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듯하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라오스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가장 가난한 국가이고 물가가 저렴하며 현지인이 외국인들에게 덜 오염되어 순박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의 베이비부머가 본격 은퇴하면서 라오스에 장기체류 하면서 겨울한철 또는 그 이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가정부 겸 여자 친구를 두고 외로움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캐나다인들이 태국에서 가정부 겸 여자 친구의 보살핌을 받으며 노후를 보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엄연한 현상이며 그 숫자는 차츰 증가할 듯하다.     


인천에서 라오스행 비행기를 타면서 보니 한국의 5060이 매우 많다. 어느 여행지를 가던 5060 여성이 많은데 유독 라오스행은 5060 남성이 많고 여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골프여행 겸 유흥을 즐기러 온 5060 남성들이 대다수 이겠지만 나처럼 한달살이나 그 이상 장기체류 하려는 은퇴자들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숙소는 비엔티안에서 꽤 좋은 레지던스 호텔이다. 최신 고층건물에 멋진 수영장과 헬스장까지 있지만 유럽 숙소비의 절반가격도 안된다. 호텔 1충에 카페가 있어서 매일 카페에 내려와 노트북 작업을 한다. 글 쓰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한나절을 보낸다.      


비엔티안에서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많이 보고 있다. 다른 곳에서 한달살이 할 때도 뉴스와 유튜브를 많이 봤지만 2024년 12월과 2025년 1월은 그 어느 곳에서 보다도 뉴스와 유튜브를 많이 본다. 게엄으로 시작된 한국의 정치상황은 스릴러드라마 보다 더 긴장된다. 매일매일 내일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까 조마조마하고 잠을 설치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새로운 뉴스는 없는지 검색하고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흔들흔들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와중에 무안 제주항공 사고도 발생했다. 과거 항공 관련 일을 했던 경험자로서 몹시 안타깝고 슬픔에 젖는다.      

숙소 인근에 비엔티안 종합 버스정류장이 있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카페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다가 늦은 점심 후 가끔은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막 출발하는 아무 버스나 타고 시내를 돌아본다. 무작정 가다가 흥미가 느껴지는 장소가 있으면 내려서 둘러보기도 하고 운동삼아 한두 시간 걷기도 한다. 비안티 안 시내는 구경거리가 별로 없다.  화려하게 치장된 사원이 가끔 나타나지만 태국 베트남에서 보던 사원에 비해 규모, 역사성, 예술성이 뒤져서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현대식 빌딩이 몇 개 보이지만 대부분 지역이 한국의 칠팔십 년대 수준이어서 도시관광거리도 별로 없다. 볼 것도 할 것도 별로 없는 이곳에서 한 달씩 살기가 지루하지만 추운 서울을 떠나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비엔티안 한달살이가 만족스럽다. 야시장에서 분주한 서민들의 생활을 구경하는 재미와 저렴한 가격에 정성스럼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동남아 어디를 가던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비엔티안에도 한국관광객이 아주 많다. 여행객이 많은 여행자거리는 물론이고 시내 곳곳에서 한국어 간판을 볼 수 있다. 한국인이 마사지를 즐겨서인지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마사지 샾도 곳곳에 눈에 띈다.  몇 곳에서 마사지를 해봤더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시설이 좋고 깨끗한 반면 마사지의 질이 떨어지고 현지인 대상 샾은 시설은 별로이나 가격이 더 저렴하고 마사지의 질은 더 좋았다. 깔끔하게 해 놓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곳과 시설은 별로지만 현지인 단골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의 차이인 듯하다. 라오스는 마사지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 비 올 때 노 젓는다는 생각으로 1일 1 마사지하고 있다.    

 

숙소는 1주에 두 번 방청소와 침구교체를 해준다. 여성 두 명이 와서 청소와 정리를 해주는데 여러 번 마주치고 팁도 몇 번 주다 보니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2주 정도 지난 후 정성스럽게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녁 사주겠다고 하니 좋다고 한다. 두 여성에게 저녁을 먹자고 한 것은 감사 표시이기도 하지만 혼자 식사하기 적적해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싶었고 라오스 전통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영어 단어를 몇 개 알아들어서 영어와 번역앱으로 대화하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두 여성은 모두 30대 이고 싱글맘이었다. 호텔에서 청소하는 여성중 대부분이 싱글맘이고 봉급은 20만 원 정도란다.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가 이혼율이 높은데 라오스는 특히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미혼모도 많고 10대 20대 여성 중에도 싱글맘이 많다. 게다가 이혼하면 남자는 나 몰라라 하고 여자가 애들을 키워야 해서 여자들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특별히 좋은 식당이 아니었는데도 평소에 먹지 못한 고급음식이라면서 맛있게 먹는다. 세 명이 식사에 맥주까지 마셨어도 50 만끽(35000원) 정도인데도 현지인에게는 고급음식인 모양이다. 이후 내방 청소하는 날은 내가 저녁 사주기로 해서 1주일에 두 번씩 맛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여성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대화중 내가 라오스에 와서 마사지를 자주 한다고 했더니 여성이 마사지 가격이 얼마냐고 묻는다. 한 시간에 만원 정도라고 했더니 자기도 마사지 할 줄 안다면서 자기가 그 가격에 내 방에 와서 마사지해주겠다고 한다. 하루 일이만 원 추가수입이 절실한 모양이다. 나로서도 싫지 않은 제안이다. 마사지 가게는 침구가 청결하지 못해 약간 찝찝했는데 깨끗한 내 방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라오스 한달살이 전반부 2주간은 적적함을 참으며 지냈으나 2주를 지나면서 내 생활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매주 두세 번 현지인이 안내하는 맛집에서 식사하고 매주 대여섯 번 내 방에서 정성스러운 출장 마사지받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호사스러운 생활에도 한 달 생활비가 100만 원 남짓(숙소비 제외)이라는 게 안 믿길 정도이다. 작년 치앙마이에서 만난 캐나다 은퇴자가 10년째 치앙마이에 와서 겨울은 보내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 친구는 내가 지금 2주간 누리는 호사를 10년간 해마다 서너 달씩 누려왔던 것이다.  최근 한국 은퇴자들이 겨울에 라오스에 와서 장기체류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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