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기를 받으며 걷기
발리는 제주도처럼 화산폭발과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의 3배쯤 되며 3천 미터가 넘는 아궁산이 섬 중앙부에 위치한다. 제주도처럼 산 정상부터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면서 바다가 나타난다. 바닷가는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고 내륙에는 숲이 우거져있다. 경사가 완만한 곳은 숲을 개간하여 논을 만들고 마을과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우붓은 산의 급경사가 끝나고 경사가 완만해지는 시작점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이다.
11~3월 5개월간의 우기에는 매달 300밀리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한다. 산 정상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많은 빗물은 하천을 만들어 실핏줄처럼 구석구석 흐르며 흐르는 물은 오랜 세월 땅을 깊게 파내려 가 곳곳에 수십 미터가 넘는 깊은 계곡을 만든다. 계곡의 좌우측 경사면은 나무들이 밀림처럼 빽빽이 우거져있다. 계곡 곳곳에는 폭포가 있고 폭포아래에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어서 밀림 속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전망대만 만들어 놓으면 1급 관광지가 될만한 환상적인 풍경이 곳곳에 널려있다. 서귀포 천지연 폭포정도의 풍광 좋은 곳이 관광지는커녕 집뒤 쓰레기 투척장으로 쓰일 정도이다.
우붓은 이러한 깊은 계곡과 산지에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산간도시이며 예술, 댄스, 민예품 등 발리를 대표하는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과거 왕궁이 위치하고 유명한 몽키포레스트가 위치하여 볼거리도 많다. 도시 전역과 산간지역 곳곳에 힌두교 사원이 세워져 있고 일반 가정에도 힌두교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좀 사는 집은 대문부터 종교적이며 집마당에 조그마한 탑과 제단이 설치되어 집인지 사원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사원과 제단은 어느 곳과도 다른 특이한 양식이며 높은 습도 때문인지 파란 이끼로 뒤덮여있어 영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제단은 물론 거리 곳곳에는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에 꽃과 음식을 담아 신께 행운을 빌고 있는 신끼 넘치는 도시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인해 우붓은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날것의 자연과 신비로운 기운을 찾아 전 세계에서 예술가들이 몰려온다. 물질문명과 현대 문명의 굴레에 지친 사람들이 장기 체류를 하면서 힐링하고 영험한 기운을 받는다.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발리에 머물면서 회화, 음악, 조각, 춤 등 발리의 문화를 배우기도 하고 곳곳에 서려있는 신비한 기운을 받으며 자신의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프놈펜 한달살이을 마치고 25. 2.12일 발리 우붓에 왔으며 왕궁과 몽키포레트스의 중간정도에 위치하는 중심지에 숙소를 정했다. 여기는 원숭이들이 숙소 지붕에 뛰어다닐 정도로 원숭이 천지이다. 도착 다음날 한달살이의 루틴인 식사, 노트북 작업 그리고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하기 위해 주변을 탐색했다. 주변에 식당과 마트가 많아서 식사는 문제없고 숙소 바로 앞에 스타벅스가 있어서 노트북 작업도 문제가 없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스타벅스에는 노트북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명당자리는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명당자리를 꿰차고 작업 중이다.
운동은 걷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지난달 프놈펜에서 매일 하던 수영과 헬스를 할 수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열심히 걷기로 했다. 집주인에게 묻고 구글지도를 뒤져서 15000보 정도 걸을 수 있는 몇 군데 코스를 정했다.
우붓에는 시내에서 바로 연결되는 트래킹 코스가 두 개 있다. 북쪽의 고지대로 올라가는 길이며 경로상은 산을 개간한 계단식 논이 500미터 정도의 폭으로 이어져 있다. 논들의 양쪽 끝으로는 깊은 계곡이 파여 있으며 계곡 아래에는 물이 거칠게 흐르고 계곡 경사면에는 울창한 열대우림이 들어차있다. 열대우림은 활엽수로 나뭇잎이 커서 공간이 꽉 차있다. 한국의 무성한 숲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논길 주변으로는 아름드리 야자수들이 핸드볼 공 만한 야자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들판에는 막 추수가 끝난 논 이제 벼가 자라는 논 모내기를 하고 있는 곳 등 한국의 농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연중 30도를 오르내리는 온도인지라 농사를 위한 별도의 시기가 없다. 한국의 모습에 익숙한 나로서는 생소한 광경이다. 논에 서있는 벼는 유난히 파랑파랑하며 익은 벼도 파란색이며 고개를 숙이지 않고 뻣뻣하다. 논들에는 농부들이 키우는 오리며 철새 텃새들이 우글거리며 사람을 피하지도 않는다.
논 사이로 난 길 옆에는 곳곳에 식당, 카페, 민박 그리고 나무와 볏집을 이용한 전통적인 방갈로들이 들어서 있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날것의 자연에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여러 불편을 무릅쓰고 이런 곳에 들어와 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거나 수킬로를 걸어서 나들이를 해야 하고 모기와 야생벌레들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 열악한 곳에도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머물고 있다는 것이 생경하다.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인데도 화실, 공방, 세공품점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인사동 골목처럼 화실이 많고 화가와 기술자들이 직접 작업하고 있으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곳도 종종 보인다. 화실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발리의 야생과 힌두교가 결합된 영적인 그림이 많아서 구경만 하고 있어도 마음이 경건해진다.
계곡 경사면의 울창한 열대우림중에도 특별히 아름답고 멋있는 곳에는 호화스러운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리조트는 울창한 열대우림의 기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멀리서 리조트를 보는 것만도 멋들어지며 리조트 내에서 자연을 보는 것은 탄성을 자아내는 장관의 모습이다. 리조트마다 밀림 속에 또는 밀림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야외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다. 물속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환상 그 자체이다.
우붓 시내를 걷는 것도 재미있다. 도로 폭이 좁고 인도가 없어서 걷는 것이 불편은 하지만 길가의 모습은 어떤 도시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함이 눈을 즐겁게 한다. 도로변은 2층이하로만 되어있어 하늘이 시원하게 보이고 건물들보다 더 높은 나무들이 건물들을 감싸고 있어서 도시전체가 파랑파랑하다. 몇 집 걸러 힌두교 사원이나 제단이 나타나고 파란 이끼가 끼어있는 탑들은 작은 앙코르와트를 보듯이 신비롭다. 길가에 있는 상가건물 뒤는 바로 논이나 숲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건물이 커다란 식물원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가 건물들은 소박한 전통가옥들이며 식당, 카페, 기념품점 등이 소박한 모습으로 오밀조밀 이어져있다. 대부분의 상점, 레스토랑은 벽이 없이 틔여져 있어서 손님과 행인이 연결되어 있다. 지나가는 행인이 식사하고 있는 손님과 눈인사하면서 맛있냐고 물어보면 엄지 척 하면서 응답한다. 친근하고 평화롭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행인들도 볼만하다. 유럽에 가면 도로에 백인이 대부분이고 동남아에 가면 아시아인이 대부분이다. 우붓은 관광객만 따지면 백인이 많지만 현지인과 합해서 보면 반반쯤 되는 것 같다. 더운 곳이라서 관광객들의 옷차림이 시원시원하다. 해변보다는 덜 하지만 거의 해변 수준이다.한국 여성도 많이 보이는데 옷차림이 한국에서와 다르게 과감하다. 외국에 나오면 마음이 편해져서 일 것이다. 아름다운 거리풍경에 더하여 시원시원한 차림의 관광객들을 보는 것은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나는 매일 이 길을 걷고 있다. 왕복 10킬로 15,000보를 걷다 보면 신비로운 도시의 모습에 경건해진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길주변의 이국적인 모습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논이 쭉 이어지는 모습에는 어린 시절 논길을 걷던 추억이 되살아 나고 논 주변의 이국적이고 특이한 풍경은 걷고 또 걸어도 눈을 즐겁게 한다. 우붓의 자연과 시내를 걷는 것은 운동만이 아닌 힐링이고 즐거움이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