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몸으로 하는 것, 몸이 익혀야 진짜 아는 것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무게 중심을 앞에 두셔야 한다니까요!”
“그러다가 넘어지면 어떡해요?”
“넘어져야 늡니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회원님은 이 정도로 안 넘어집니다.”
이번 강사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보통 이 정도면 포기하거나 적당히 ‘기초 턴’만 알려주는데 망했다. 이 강사는 오히려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매년 겨울마다 오고, 강습을 몇 번이나 받아도 스키는 정말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눈 덮인 산을 굳이, 그것도 아찔할 만큼 위험해 보이는 탈것에 돈을 주고 올라가서, 무릎이며 발목, 아니 거의 모든 관절을 담보로 걸고 미끄러져 내려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배웠으니 할 수 있다고, 운동하는 사람이니 잘할 거라는 지인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고작 초-중급코스에 한번 갔다가 산 중턱에서 스키 패트롤의 도움을 받아 내려온 적도 있다. “잘 못 타면 초급에서 더 연습하고 오세요”라는 조금은 굴욕적인 말과 함께.
도저히 속도를 못 내겠다는 내게, 강사는 어떻게 하면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속도가 느려지냐고 되받아쳤다. “이렇게 만들려고 중량 쳐가며 한 스쿼트만 50만 개가 넘는다”라며 뿌듯한 표정을 짓자 “이러다가는 최상급 코스에서 내려와도 반나절은 걸리겠다"라며 비아냥댔다. 너무 얄미웠지만, 그럼에도 그의 스키 코칭은 신통방통했다. 그 덕에 한 번 내려올 때마다 ‘이번에도 살았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부담스러울 만큼 열정이 불타는 그의 얼굴 위로 ‘코치로서의 내 모습’이 오버 랩 됐다. 회원들은 도대체 헬스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중량을 올려야 근육이 성장한다는 내 말에 “무게 늘리면 근육통도 심해지는 데 선생님은 안 괴로워요?” 했었다. 헬스 나름의 재미와 무게를 늘려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럴 때마다 참 답답하고 속상했다. 지금 그도 그럴 거라는 생각에 동병상련의 감정이 생겼다. 그제야 약간은 동종업계의 의리로, 그렇지만 적극적이게 스키 배우기를 시작했다. 이래서 사람은 직접 겪어 봐야 아나 보다.
그러나 적극적인 마음을 먹자마자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역시 스키는 내 취향이 아니긴 했다. 그날 몇 번이나 넘어지고, 날아간 장비를 찾으러 다녔는지 모르겠다. 넘어지는 횟수가 늘어가자 몸이 익힐 때까지는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슬슬 짜증이 났다. 넘어질 때마다 ‘아, 그냥 대충하고 그만둘까?’ 했지만 이번에도 못 배우면 다음 겨울까진 못 탈 것이고, 잘못하면 내년엔 더 많이 넘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오기로 버텼다.
몇 번을 더 탔을까, 정말로 ‘어느 순간’ 기초 턴을 성공할 수 있었다. 한쪽 다리로 무게를 지탱하며 중심을 낮추고, 다리를 모으며 일어서는 동작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깔끔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스키의 묘미를 알아갔던 것 같다. 딱 한 번의 깔끔한 턴 이후에도 까불다가 종종 넘어지긴 했지만, 함박눈 본 강아지처럼 슬로프를 미끄러져 다녔다. 차츰 성공 횟수도 늘어갔다. 자꾸 넘어지면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점점 배운 대로 된다는 걸 알게 되고서야 실력과 상관없이 스키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넘어지는 게 두려웠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었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어차피 ‘답정너’였다. 스키에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했고, 헬스에선 근육통이 오더라도 자꾸 중량을 단계별로 계속 올려야 했다. 그런데 나 역시 슬로프 한가운데서 넘어지기 전까진 잊고 있었다. 역시 운동은 머리와 마음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내가 해 본 운동뿐 아니라 모든 운동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꾸 넘어지고, 실수하고, 당장에 변하지 않아도 몸이 깨닫기만 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했다가 요요가 왔다고 해도, 내가 뺐었던 체중까지는 금방 내려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때까지만 버티자. 버티고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짠!’ 하는 날이 온다. 그때가 되면 겨울만 기다리는 나처럼 될지도 모른다. 버티다 힘들면 ‘기간을 정해 놓고’ 좀 쉬어도 괜찮고, 운동 빈도나 강도를 대폭 줄여버려도 좋다. 나도 헬스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트레이너임에도 1달씩 쉴 때가 있고, 스키는 1년에 한 번 뿐이니까 이번엔 잘해보자며 겨우 버텼다. 다행히 몸이 기억해준 덕에 그것들이 조금씩 쌓여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운동은 몸이 하는 일이라 머리와 마음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 지금 좀 못해도, 넘어져도 괜찮다.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진짜로 몸이 ‘나, 이거 알아’ 할 때까지 포기하지만 말자.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하자. 몸은 지금도 늙고 있다.